<마가복음 5:1~9>
우리교회에는 특이하게도 필리핀에서 한국 사람은 되도록 안 만나고 살려고 했던 분이 여러분 계십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으시겠지만 필리핀에서 생활하시다가 한국 분들한테 상처를 받았거나 어떤 아픔들이 있으셨기에 그런 마음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 한 분은 얘기를 들어보니깐 그 이유 때문에 예전에는 한국 사람이 가는 식당이나, 카페 같은데도 안 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인교회는 오로지 한인들만 가득하니 말할 것도 없이 올 이유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아예 필리핀 영주권을 받아서 여기서 그냥 필리핀 사람으로 살려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본성이 참 착한 사람들인데 간혹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타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도 하고, 서로 도우면서 똘똘 뭉쳐서 살면 좋은데… 어떻게든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사기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도 합니다. 외국 생활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사람 때문에 한국사람 전체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한국 사람에 대해서 단단히 마음의 문을 닫고 사시는 분을 전도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웬만해서는 마음을 열지 않으시는 겁니다. 괜히 그랬다가 본인이 또 상처입고 아프실까봐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사시는 겁니다.
그랬던 우리 성도님들이 우리교회 오셔서 은혜 받으시고 변화 받아 지금은 우리교회에서 충성스럽게 주님의 교회를 섬기시고 성도들을 섬기시며 온가족이 행복하게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제가 그 분들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그 성도님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귀한 성도님들을 아직까지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단단하게 닫힌 마음의 문을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인 거라사 지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3절~5절을 보시면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이 귀신들린 사람은 으스스한 공동묘지 사이에서 살고 있었고, 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로 묶어놔도 그 쇠고랑을 깨뜨릴 정도로 초능력이 나타났고, 누구도 그를 제압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들렸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아닌 귀신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들판을 뛰어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돌로 자기의 몸을 자해했습니다.
이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가 그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삶을 보시면 이건 살아도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악하고 더러운 게 가득하니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자기의 몸을 돌로 찧어 자해를 하고 그러니 얼마나 아프고 괴롭고 두렵겠습니까? 순간순간 정신이 돌아와 보면 자기 몸이 여기저기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옷매무새며 머리카락이며 청결의 상태가 엉망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그 사람은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인생이 귀신의 지배 아래에서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회복되고 치료될 수 있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쇠사슬로 결박해놔도 그걸 깨뜨리고 괴물처럼 고성을 지르며 동네를 뛰어 다니는 모습을 그 누구도 제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고치고 치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의 이름을 물어보니 9절에서 그 귀신은 ‘군대’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많은 귀신이 사람을 사로잡고 그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시면,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망가진 한 인생이 예수님에 의해 치료 받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안 바뀔 거 같은 사람도 예수님께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변화될 거 같지 않은 남편도 예수님이 만나 주실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사업장도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인생도 재기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을 치료하시고, 구원하시고,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