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계를 달게 여기라”

<잠언23:12~14>
– 아름다운 삶의 지혜(11) –

한국에서 수많은 어학연수생들이 필리핀을 찾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6~8주 정도 되는 단기연수생이 많고, 영어 캠프를 왔다가 장기생으로 전환하고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아무래도 그런 유학생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런 친구들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보면 필리핀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을 종종 얘기합니다. “선생님의 발음이 안 좋다,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르더라, 문법이 약하다, 설명을 잘 못하겠으면 현지어를 섞어서 말한다…” 등의 불만사항들을 듣게 됩니다.

그 친구들이 얘기하는 불만사항들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필리핀은 1898년부터 1946년까지 약 50년 동안 미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 때 미국으로부터 영어와 교육시스템을 가져왔습니다. 그 전에 약 350년 동안에는 스페인 식민지였기도 합니다. 때문에 스페인어와 영어 그리고 필리핀 현지어가 마구잡이로 섞여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한국에서 어학연수 온 친구들이 필리핀 선생님들에 대한 티칭에 불만을 갖고 있는 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생님들이 적어도 우리보다 영어를 더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영어권 문화에 더 익숙하다는 겁니다. 분명 배울 게 많이 있는 겁니다. 선생님들에 대해 불평만하는 친구들은 이곳에서 머무는 두 달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라 할지라도 결코 얻어 갈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발음이 미국 사람 같지는 않더라도 뭔가 배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학생은 꽤 놀라운 학습에 대한 성과를 얻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 – 열한 번째’는 “훈계를 달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나보다 앞선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말해 줄 때 그것을 달게 듣는 사람은 분명 보이지 않는 어떤 성장이 시작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간만 낭비하며 있게 될 겁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훈계에 착심(着心)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착심’의 한자어를 보시면 ‘붙을 착(着)’자에 ‘마음 심(心)’자로 쓰고 있습니다. 어디에 마음을 붙이고 있으라는 겁니까? ‘훈계에 착심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무슨 말을 해 주는데,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 지금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아니면 딴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할 때 보면 어떤 분들은 스폰지같이 말씀을 흡수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제가 아무리 강단에서 힘을 다해 설교를 해도 전혀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지혜에 마음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지혜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어도 그 말씀에 ‘착심(着心)’치 않는 사람은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적으로 앞으로 쭉 전진하고 있는데,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듣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의 어학연수생들과 같이 선생님의 실력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자신의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 때문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자기 손해인 겁니다. 분명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내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강단에 누가 있든, 내 앞에 누가 있든… 분명 배울 게 있는 겁니다. 때로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서도 우리가 배울 게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르침이든, 그것이 권면이든, 때로는 훈계이든… 그것을 달게 여길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자녀에 대한 훈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13~14절 말씀을 보시면,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death : 죽음)에서 구원하리라”

채찍이란 표현이 있지만, 우리식으로 하자면 ‘회초리’일 것입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그것에 대한 바른 훈계가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도 훈계를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자녀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합니다. 훈계가 있는 자녀가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귀하고 귀한 자녀를 회초리로 내려치려고 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아프더라도 가르치고 훈계할 때, 그 아이가 한 신앙인으로서, 한 사회인으로, 한 인격체로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인 것입니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훈계를 달게 여기는 자녀들이 성장해 가는 겁니다. 마음속으로 판단만 하고, 반항적인 마음이 있는 자녀들은 결코 성장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서 우리를 훈계하시고, 우리보다 연장자와 선배 또는 부모님, 목회자로부터의 어떤 훈계가 있을 수 있고,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우리는 배움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훈계를 달게 여기는 이들은 더욱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Tags: No tags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