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끝자락에서…”

<출애굽기 6:1> 
– 믿음의 기업(21) –

우리가 살고 있는 필리핀은 한국에 비해서 모든 것들이 빨리 빨리 진행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차를 구입하려고 하는 우리 집사님들이 계신데, 이번 주 차를 계약하면 다음 주에는 나온다고 해서 계약금 걸고 싸인(sign)했더니, 한 달 걸리기도 했고, 중고차 사려고 다니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차가 있어서 ‘이 차 내가 사겠다, 은행에서 돈 찾아 오겠다’ 해서 돈 찾아서 갔더니, 다른 사람이 사갔다고 말하지 않나…. 또 처음 오셔서 정착하시는 분들이 꼭 경험하시는 인터넷 설치는 얼마나 느립니까? 2주, 3주 기다려도 안 와서 연락해 보면 ‘설치해 주러 우리 집에 왔었는데 사람 없어서 그냥 돌아갔다고 2주 뒤에 설치해 주겠다고…’ 뭐 이런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한국이야 오늘 신청하면 하루 만에 설치까지 해 줘서 사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개인적으로는 필리핀에 와서 생활하니깐 감사를 많이 훈련하는 거 같습니다. 특히 모든 면에서 가장 발달한 한국이라는 모국(母國)에 살다가 여러 면에서 불편하고 뒤쳐진 나라에서 살다보니 도리어 한국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가 더 커지는 거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고아처럼 자라다 보니깐 지금의 삶이 감사한 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너무 가난하고, 너무 배고프고, 너무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삶을 이렇게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한 겁니다. 만약 제가 어려서 너무 풍요롭게 생활했었으면 이런 감사를 몰랐을 겁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련과 어려움은 감사의 씨앗’과 같은 겁니다. 그 시련을 통과하면서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특별히 그런 기간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된다면 그는 더욱 더 감사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의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화가 난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학대하게 되었고, 모세는 5:22절, 23절에서 하나님 앞에 ‘왜 이런 일을 통해 더 큰 어려움을 받게 하고, 이 어려운 중에 왜 하나님은 잠잠하시냐’고 불평하고 있는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6:1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모세에게 민족의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비전을 주셨고,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의 불똥이 튀게 된 겁니다. 모세가 하는 일이 선한 일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련과 고난이 오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시련이 오기 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 주실 수는 없으셨을까요? 사람은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때로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그 위기의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든지 보호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는 시련을 막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그냥 그 고난을 허용하셨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의 그 순간의 아픔과 어려움만을 보기 때문에 모세가 5장22절,23절에서 불평하듯이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필리핀에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는 일은 분명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비전이었고,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여 기간 동안 승승장구하고, 평안하고 형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어쩌면 수십 번도 더 ‘내가 여기 왜 와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기도하면 ‘내 뜻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지, 사명이지…’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시련이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모든 시련들과 어려움들을 다 피해가도록, 아무 걱정도 없이, 어려움도 없이, 염려도 없이… 그렇게 지내게 하시지 만은 않았습니다.

모세는 말씀에 순종했는데 시련이 오니깐 하나님께 서운했고, 그래서 불평했던 겁니다. 그런데 6:1절에서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때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허용하시는지 그 힌트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는 겁니다. 누가 하나님의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관심이 어디에 있냐면, 모세라는 사람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겁니다.

만약, 모세가 40년만에 애굽에 가서 동족에게 ‘이제 출애굽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요청하니깐 바로 왕이 ‘예~ 그렇게 하세요’하고 200만명의 노예들을 다 풀어주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 거 같습니까?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을 겁니다. 그리고 출애굽 하면서도 아무 긴장감도 없고, ‘이게 뭔 일이랴?’하면서 짐 싸들고 애굽을 떠나갔을 겁니다.
과연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얼마나 갖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믿는 마음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그러나 시련과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감사의 마음이 더 커지고, 믿음이 더 커집니다. 큰 어려움이 있을수록 사람은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뤄졌을 때, 간절한 마음만큼 감사한 마음도 더 커지고, 그 때 믿음의 크기도 더 커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민족을 이끌 모세가 이 사실을 알아야 했고, 그런 믿음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모세에게 그것을 보여주신다는 겁니다.

때로 우리가 시련의 끝자락에 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 내 몰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련의 끝자락, 절망의 벼랑 끝에서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시편91:12절 말씀에
“그들이(천사들)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하셨고, 이사야서 48:10절, 11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지금 시련의 끝자락, 절망의 벼랑 끝에 계십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거기서 나를 붙들어 영광을 받으실 차례이십니다!

Tags: No tags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