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선한 손의 도움

시편 123:1~4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오늘 본문인 [시편 123편] 역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시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또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주변 대적들로부터 극심한 방해 공작이 있었던 상황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멸망부터 성벽 재건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 BC.586 : 예루살렘 멸망
  • BC.538 : 1차 포로 귀환(스룹바벨)
  • BC.536 : 성전 재건 시작, 중단
  • BC.520 : 성전 재건 재시작
  • BC.515 : 성전 재건, 낙성식
  • BC.458 : 2차 포로 귀환(에스라)
  • BC. ? : 성벽 재건 시작, 방해
  • BC. ? : 성벽 재건 중단
  • BC.445 : 3차 포로 귀환(느헤미야)
  • BC.444 : 성벽 재건, 낙성식

BC.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남유다 왕국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파괴했었고, 그들의 영적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마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들과 남유다 왕국의 백성들도 모두 바벨론 포로로 끌고 갔었기 때문에 70년 동안 예루살렘은 폐허 상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기적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1~3차에 걸쳐 귀환시키셨고, 귀환한 사람들은 성전을 건축하려 했고, 성벽을 건축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대적들의 극렬한 방해로 성전 건축도 16년 동안 중단되었었고, 성벽 역시 오랫동안 재건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는 그런 과정 속에 기록된 시편인 것입니다.

시편 123편 1절을 보시면,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뿐이었던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비유를 들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노예나 종들은 자신들의 주권이 없었습니다.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쉴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주인의 허락과 호의가 있을 때, 종들도 쉬거나,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잘 수 있었던 겁니다. 시인은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과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며, 은혜 베풀어 주시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성전을 건축하며, 성벽을 건축할 때 대적들의 극렬한 방해와 공격과 모함 등은 유대인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한 멸시가 넘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다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 베푸시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던 것입니다.

4절도 [쉬운 성경]의 번역으로 보시면,
“우리가 거만한 자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조롱을 참아냈으며, 교만한 자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멸시를 견뎌 냈습니다”

거만하고 교만한 자들은 힘과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기 때문에, 거만하고 교만하고, 사람을 무시하고,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런 조롱과 멸시를 견뎌내며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세상적으로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은 눈에 보이는 힘, 외적인 권력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더 교만하고 거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만, 오늘 본문의 시인과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에 관한 기사인 에스라서와 성벽 재건에 관한 기사인 느헤미야서에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란 표현들이 여러차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2장 8절에서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18절에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에스라 8장 18절에서도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라고 되어 있고,

22절에선
“…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게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선을 베푸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고난의 현장에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재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