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자

시편 125:1~5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오늘 본문인 [시편 125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주변 이방 족속들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었을 때 기록한 시로 보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1차 귀환>은 BC 537년에 다윗의 후손으로 왕족인 ‘스룹바벨’이 유다의 총독이 되어 약 5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여 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 했는데,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은 16년간 중단이 되었었던 역사가 있었지만, 16년 뒤 다시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되어 4년 만에 완공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 <2차 귀환>은 BC 458년 제사장겸 학사였던 ‘에스라’가 이끌었고, <3차 귀환>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고위 관원이었던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귀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도 대적들의 엄청난 방해와 공격이 있었지만, 52일 만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공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과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미션(Mission)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대적들의 방해와 어려움이 없이 일이 그냥 술술 잘 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사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될 때 마음에 답답함과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 믿으면 잘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사업에도 성공하고, 돈도 잘 벌고, 중한 병에도 걸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장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행복하게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보통 교회 다니는 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현실 속에서는 많은 어려움들을 만나게 되면 그래서 혼란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수학 공식처럼 <1 + 1 = 2>이라는 답은 없습니다. 그런 단순한 답보다 더 크고 넓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는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비로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25편 1절, 2절을 보시면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예루살렘이란 성은 해발 800미터 고지 위에 건축된 산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변으로는 감람산을 비롯한 여러 산들과 봉우리들이 예루살렘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대적들로부터 큰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시인은 2절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지금 시인의 상황은 악인들이 활개를 치고, 권세를 잡고 있고, 모든 영광을 누리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 악인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그들과 손 잡지 않고, 바르고 의로운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권세든 백성들이 지지하지 않고 따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듯이 결국 잠시 보이는 그 악인의 권세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사자성어 중의 ‘유유상종(類類相從 : 같은 무리끼리 어울린다)’이란 말에 공감될 때가 많습니다. 또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과 같이 어떤 악한 사람의 생각과 말과 태도와 행동에 대해 누군가가 맞장구를 쳐주니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의인들이 악인들의 가치에 대해서 거부하고,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때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옳은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악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범죄하고, 악을 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 하반절에서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결국 이스라엘을 승리케 할 것, 의인을 승리케 할 것, 믿음의 사람들과 선한 길로 가는 자들을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범죄하지 않은 의인에게도 시련과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목사님, 왜 저는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요?”라고 한탄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그분에게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 바르게 잘 하고 있는데 그런 시련과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던 거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결국 믿음의 사람들이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재기하게 될 것이며, 승리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결국 이스라엘을 승리케 할 것, 의인을 승리케 할 것, 믿음의 사람들과 선한 길로 가는 자들을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지금의 시련과 고난 뒤에 주실 승리를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