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1~5
저는 대여섯살의 나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은 저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거부하신 겁니다. 물론, 부모님이 살아오시면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제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분 사이가 어려워졌고, 저는 그런 깨어진 가정, 버림 받은 자녀로서 성장기 내내 외롭게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제게 지독한 가난을 물려주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장해 가면서 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갖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한참 먹을 나이에 먹을 것이 없어 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악취가 나고, 더럽고, 좁고, 쓰레기장 같은 그런 집에서 늘 살았었습니다. 학기마다 내는 등록금은 제게 늘 걱정거리였습니다. 가난은 제게 늘 입고 다니는 옷과 같은 거였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너무나 창피하고, 때로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운 것이었고, 인생을 비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제겐 너무나 암울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어찌 감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의 저의 모습을 볼 때, 저는 하나 하나 제 삶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엄청 사치하며 풍요롭게 사는 것처럼 보여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큰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베푸신 은혜가 ‘한량없이’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다 감사한 겁니다. 이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놀라와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족할 뿐입니다.
지금 내 삶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이후에 주실 은혜의 크기가 더 크게 느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평안하고 아무 걱정도 없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실 때 그것이 그 사람에게 과연 얼마나 크게 느껴질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시편103편 1절과 2절 말씀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짧은 구절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고 있을까요?
그 이유를 2절 하반절에 보시면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그는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겁니다.
-(3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3절)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절)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4절)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5절)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 앞에 저질렀던 또는 실수하여 범죄했던 크고 작은 모든 죄들을 용서해 주셨던 겁니다. 우리가 작은 실수 하나만 하더라도 세상은 우리를 조롱하고, 손가락질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 필리핀만 해도 약값이 너무 많이 들고, 약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 고쳐지지 않아 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겁니다.
또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 파멸의 구덩이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던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겁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마음의 소원을 만족하게 들어주시고, 독수리와 같은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은혜를 늘 마음에 새겨두니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받게 될 경우에, 그 은혜로 인해 그 분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큰 겁니다.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의 내용은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날마다 감사하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오늘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하루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