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시편135:1~4> 

필리핀이 제조업과 같은 2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3차 산업에 속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합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롯데리아’와 같은 필리핀의 토종 패스트푸드점이 ‘졸리비’인데요, 이곳의 대표적인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전국 곳곳에 사람이 분비는 요지에는 어디에나 졸리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졸리비에 취직하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이제 졸리비도 경쟁력이 심해서 대학정도는 나와야 취직해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나 안 받아준다는 겁니다.
이런 현실은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겁니다. 한국도 요즘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고학력자들이 많아지다 보니깐, 이력서 보고 그 중에서 가장 괜찮은 지원자를 회사에서는 선택하게 될 겁니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해서 CCM가수로 헌신하신 박종호씨가 부른 <그래도>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네가 나를 떠나가도 그래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으며
네가 나를 버려도 그래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며
네가 지은 죄 많으나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하리라
네가 천하고 미련하나 그래도 나는 너를 받으리라
네가 천하고 미련하나 나는 너를 받으리라
언제 들어도 은혜가 되는 찬양입니다. 세상에서는 ‘실력이 되고, 능력이 되고, 자격을 갖추어야’ 받아줍니다. 그래서 모두 그 자격을 갖추려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모습이 부족해도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도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자격 미달이라 할 지라도 ‘그래도’ 우리를 받아주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135편의 1절을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마지막절인 21절의 끝을 ‘할렐루야’로 마치는 대표적인 ‘할렐루야 시편’ 중에 하나입니다.
‘할렐루야’의 뜻 자체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처럼, 시인은 우리가 하나님을 마땅히 찬양해야 함을 이 시를 통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인 1절에서는 ‘찬송하라’는 말을 그 짧은 구절에서 ‘할렐루야’를 포함해서 3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 할렐루야
–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3절도 마찬가지로 두 번에 걸쳐 선포하고 있습니다.
– 여호와를 찬송하라
–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그런데 그렇게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찬양의 이유가 뭐예요?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답다’는 겁니다. 시인이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그 이름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뭐예요?

그 이유를 알려주기 위해서 4절의 첫 단어가 ‘For(왜냐하면)’이란 말이 붙습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 분은 선하시고, 그 이름이 아름다우시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요즘 삼성, 현대 이런 대기업에 취업을 한다는 것은 수십대 일 또는 100대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고 합니다. 워낙 학력과 스펙이 좋고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지원을 하는데, 전혀 그런 자격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뽑아준다면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자기를 뽑아준 회사를 위해 얼마나 감사하며, 충성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실수가 많고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아주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주의 영광을 위한 일꾼까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어떤 객관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린만큼은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해도 부족한 겁니다.

주님은 ‘그래도’ 날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그래도’ 나를 받아주십니다.
주님은 ‘그래도’ 나를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은 ‘그래도’ 내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은 ‘그래도’ 나를 축복하십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그래도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Tags: No tags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