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7:1~9>
얼마 전 세부에 오셔서 이곳에서 새롭게 김치사업을 준비하고 계신 60세 되신 여성 성도님이 계세요. 어제 처음으로 우리 성도님의 전도로 우리교회에 출석하셨는데, 예배 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대화를 잠시 나눴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요식업을 했었는데, 제가 잘 하는 분야니깐 이곳에서 요청이 있어서 김치사업 해 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겠어요. 날도 너무 덮고, 재료문제도 그렇고, 언어도 그렇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요’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 같은 경우는 늘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늘 믿음으로 반응하려고 하다 보니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게 바로 믿음의 생각과 믿음의 행동으로 즉각 반응하게 됩니다.
그 성도님께 그런 말씀을 듣고, 제가 그 성도님께
‘이곳에서 사업이 쉽지 않고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에서 쉽게 무엇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려워서 하지 못하면 그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니깐, 내가 이곳에서 제대로 하기만 하면 그건 나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왔습니다. 이것도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나요. 하나는 ‘교회 다니는데, 예수 믿는데 이건 뭔가? 믿어도 아무 소용없네’ 하면서 시험에 빠져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왜 이런 고난이 왔을까?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는 것일까? 이 고난 뒤에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 고난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137편은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살아가고 있었을 때의 어떤 상황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포로생활의 70년이 다 차가는 바벨론 포로생활의 말기에 이 시편을 기록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정복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욕했었습니다. 그들이 모욕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3절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정복자들은 유대인들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너희가 믿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노래(찬양)을 한번 불러봐라’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그 분을 믿기 때문에 부르라고 한 게 아닙니다. 본문 중에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정복자들이 자기들의 유흥을 위해 유대인들에게 찬양 좀 불러보라는 거였습니다. 이 얼마나 유대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모독이겠습니까?
그들은 정복자였고, 유대인들은 전쟁포로였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의 한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힘과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복자들이 하라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해요? 1절과 2절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정복자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놨습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강가에 앉아 예루살렘 방향을 바라보며 그들은 울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결단을 합니다. 4~6절입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주님의 성전이 있었던 그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포로생활 속에 비참한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런 고난 중이라 할 지라도 나는 주님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7~9절 말씀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야곱의 형제였던 에서는 어찌보면 이스라엘의 형제와 같은 나라였는데, 그 ‘에서’ 즉 에돔 사람들이 와서 약탈을 일삼고, 저주를 퍼부었던 사건을 떠올리고,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정복했던 바벨론에 대해 하나님께서 벌해 주실 것을 청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은 수십년의 기간 동안 계속 큰 고통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 그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고 결단을 하고, 주님께서 회복해 주실 그 날, 그 구원의 날을 소망하며 강변에서 울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오고, 그 고난 중에 오히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시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고난은 그 사람에게 더 빠른 회복의 은혜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