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2:1~2>
신앙생활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아내를 만나 교제하게 되었고, 지금의 장모님께도 인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장모님이 워낙 기도를 많이 하시고, 기도에 생명을 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다보니 장모님께서 산에 가서 밤새 기도하러 가실 때, 자연스럽게 저희 커플도 산기도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정말 많은 은혜들을 주셨습니다.
20~30년 전에는 ‘산기도’라는 것이 거의 영성훈련이요, 영적 운동과 같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깊은 밤중에 산에 올라가서 밤을 새며 기도하기도 했었습니다. 거기서 많은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고, 삶이 변화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산기도에 열심을 내는 성도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나는 40일 산기도 했다, 천일 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자랑하는 경우를 본적이 있습니다. 산기도가 변화의 통로가 아니라, 교만의 통로가 되어 버린 겁니다.
모세도, 예수님도 산에서 기도하셨고, 우리 부모님 세대도 산에 올라가서 밤을 새며 기도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오해가 있습니다. 모세와 예수님과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산에서 기도하셨던 것은 밤새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싶으신데 마땅히 기도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동굴의 기도”라고 했는데, 그것은 오늘 본문인 시편142편의 시제가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산기도’와 같이 ‘동굴기도’ 역시 다윗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다윗은 질투심에 불이 붙은 사울을 피해 이 광야, 저 광야를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과 그의 신하들의 추격은 치밀했습니다. 다윗의 은신처가 언제 어떻게 발각될지 몰랐습니다. 때문에 다윗에게 있어 비좁고 캄캄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동굴은 좋은 은신처였습니다. 왜냐하면 추격자들이 동굴 입구까지는 들어오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동굴로 피한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 밖에 없었던 겁니다. 불도 없고 빛도 없이, 여기저기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중간 중간 박쥐 날아드는 소리도 들리는 그 동굴에서 20대의 젊은 청년 다윗은 깊은 인생의 절망을 경험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희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청년 다윗은 그 동굴에서 그냥 웁니다. 처음에는 흐느껴 울다가 나중에는 그것이 통곡으로 바뀝니다. 그 통곡이 기도로 바뀌게 되었고, 그렇게 <동굴의 기도>가 시작되었던 겁니다. 다윗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들을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다윗이 올렸던 동굴의 기도가 어떻게 드려졌습니까? ‘소리 내어, 부르짖고, 소리 내어, 간구’했던 겁니다. 다윗은 힘을 다하여 부르짖었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부르짖으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절을 보시면,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다윗에게 닥친 환난은 ‘원통한 일’이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는데, 까닭 없이 다윗은 모든 것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겁니다. 차라리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다면 마땅히 죄를 받는다 생각하고 그 고통을 감내하였을 겁니다. 또 다윗의 ‘우환’ 곧 다윗의 인생 속에 뜻하지 않게 일어난 ‘걱정과 근심거리’였던 겁니다.
사울 왕과 온 나라 백성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골리앗을 때려눕히고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 하루아침에 그 모든 영광과 영화를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부르짖으며 기도했던 겁니다. 2절에서 ‘토로하다’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어서 말하다’는 뜻입니다. 또 ‘진술하다’는 뜻은 법정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모든 일이나 상황을 자세히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토로하며, 진술했던 겁니다. 왕과 백성들이 민족의 영웅 다윗에게 모두 등을 돌려 원수가 되었지만, 다윗은 하나님만은 여전히 자신의 편이심을 믿었던 겁니다.
동굴에는 다윗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쏟아 놓은 겁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동굴에 갇힌 것처럼, 그 동굴 밖으로는 한 발짝도 못 나가고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어서 하나님께 소리 내어 부르짖고, 간구하고, 원통함을 토로하고, 우환을 진술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굴은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동굴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은밀한 아픔들까지도 다 내어놓을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동굴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동굴에서 나를 만나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