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위선”

<전도서 5:1> 

우리 크리스천들이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지 종교생활에 머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종교생활과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잘 모르시는 분들은 ‘기독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천주교를 믿든, 힌두교를 믿든 잘만 믿으면 된다’라고 생각을 하십니다. 종교적 관점을 갖고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초점을 나에게 맞추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을 믿든, 예수님을 믿든 소원만 이루어지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나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 신앙은 모든 초점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추며 살아가는 겁니다. 즉, 삶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겁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다 보니 결국 그 사람의 삶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가치가 달라지고, 태도와 행동 그리고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착하게 살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종교적이 된다는 것은 이러저러한 종교의식을 통해서 자기 목적만 달성하면 되기 때문에 삶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이 종교적이 되기 시작하면 내면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있는데 종교적 형식들은 점점 많아지고, 겉으로는 매우 신앙이 좋은 사람처럼 포장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25절, 27절에서 지적하셨듯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라고 말씀하신바와 같은 겁니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을 향해 가장 진노하셨던 것이 ‘종교적 외식과 위선의 죄’였던 것입니다. 이런 위선의 죄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차라리 불신자가 더 소망이 있습니다. 로마서 말씀에서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하셨던 것처럼,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죄가 깨달아지면 회개라도 하겠지만, 종교적 위선의 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회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 의식과 행위들을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 ‘난 잘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전도서5:1절을 보시면,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종교적 위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럴 듯한 제물을 가져와서 드리고 있는데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그게 악인지도 모르기도 합니다.

이사야 1:10절, 11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전도서 5:1절의 말씀과 이사야1:10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단순히 듣는 것(listen)만을 말하겠습니까?

사무엘상15:22절에서 사무엘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 듣는 것은 곧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는 것은 그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 말씀 가지고 여러 사람 판단하는 잣대로 쓰여 질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육체를 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점점 더 겸손해 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겉모양이 아니라 내면이 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외식과 위선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그리고 사람 앞에 참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가장 위험한 영적 질병은 ‘종교적 위선’입니다. 믿음이 좋은 척, 자신은 늘 말씀으로 사는 척, 자신은 의로운 척… 하면서 여러 가지 종교적 껍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가장 변화되기 어려운 사람들은 종교적 위선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2천 년 전 대표적인 종교적 위선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겁니다. 우리는 날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비춰보며, 우리의 내면과 삶이 변화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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