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기도를 올려라”

<전도서 5:2~3> 

어제는 종교와 기독교 신앙의 차이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렸었는데, 오늘은 종교와 기독교 신앙에서의 기도의 차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교는 어떤 종교적 형식과 의식이 많다고 했고, 그것을 통해서 종교적 책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삶의 변화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삶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겁니다.

기도 역시도 같은 흐름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대개 <기도문>이란 게 있습니다. 천주교 같은 경우는 얼마나 기도문이 많은지 모릅니다. 성모께 바치는 기도, 묵주기도…를 비롯해서 수십 개의 기도문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불교 같은 경우도 염불이라는 게 있죠? 그래서 나미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반복하면서 새벽, 낮, 저녁으로 나누어서 염불을 하기도 하고, 백일기도, 천일기도와 같은 것을 통해 반복적으로 염불을 하는 겁니다. 공덕을 쌓는 겁니다.

이슬람교의 무슬림들은 시간에 맞춰 하루 다섯 번씩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그들의 성전인 메카를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기도를 합니다. 그 때 하는 기도는 항상 똑같습니다. ‘개경 장(Opening Chapter)’라는 7개의 구절을 암송하는 건데, 그 구절 중 7절 같은 경우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반대하며 적으로 삼고 있는 의미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테러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에도 종교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겁니다.

이런 종교들에 반해 기독교 신앙에서의 기도는 정해진 기도문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삶의 변화를 기도하고, 우리 마음의 여러 가지 소원을 주님 앞에 간구하는 겁니다. 정해진 기도 시간도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 안에서의 기도가 기타 종교에서 하는 종교적 기도로 변질되어 갈 때가 있다는 겁니다.

전도서 5:2절 말씀을 보시면,
“너는 하나님 앞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급한 마음으로 이 말 저 말 함부로 하는 모습입니다. 기도를 적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의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기도 시간은 우리가 하루 중에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기도 시간이 많다면 주님과 그만큼 더 친밀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도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또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하는 기도는 시간만 아까울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7절에서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천주교와 무슬림의 기도문이나, 불교의 염불과 같이 어떤 주문을 외우는 듯한 기도는 주님께서 듣지 않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종교적 또는 형식적 기도를 안 들으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방언’이란 은사를 경험하게도 됩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믿음이 좋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적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 방언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구체적으로 우리 말로 기도하는 것은 안 들으신다 거나 또는 구체적으로 하는 기도만 들으시고 방언 기도는 안 들으신다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방언이 은사라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얼마든지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고, 저 역시도 여러 가지 방언의 유익이 있기 때문에 새벽에 방언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14절, 15절에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 사도 역시 방언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영으로 기도하기에 내가 그 방언의 구체적 뜻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에 영적 집중력을 잃게 되면 내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도 모르고,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다 그 기도시간을 다 보낼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하는 기도를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의 깊은 것들도 때로는 부끄러운 것들과 아픔들까지 하나님 앞에 아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 집중력을 잃으면 헛된 말만 중언부언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럴 때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의 소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아뢰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 마음에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하지만 때때로 우리 마음의 깊은 소원을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마음에 맺어지는 열매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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