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은 기도”

<마태복음 6:5~6> 
– 다니엘 하루3번 기도(새벽⑥) –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던 가수 유승준 씨를 잘 아실 겁니다. 그 기간 중에 거의 모든 음악방송에서 계속해서 Top을 차지할 정도로 남녀노소 온 국민이 좋아한 남성 댄스 가수였습니다. 춤과 노래와 같은 가수로서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얼굴도 잘생긴데다가 근육질의 몸을 유지하고, 성실하고, 착하고, 건강하고, 안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 당시는 기독교인들이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었는데, 교회오빠 이미지가 다분한 크리스천 청년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당시의 그를 비유하기를 “유재석의 대중적인 이미지 + 권상우의 건강한 이미지 + 송중기의 건전한 이미지”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청년 유승준이라 불렀습니다.

그랬던 그가 2002년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때, 대한민국 법무부는 그를 입국거부자 명단에 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입국 거부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 시민권 취득해서 병역을 기피한 사람이 이 사람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국민들이 특히 이 사람을 향해서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위선적 태도’ 때문인 것입니다. TV인터뷰에서도 군대를 당연히 가겠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시민권 얻고 군대를 면제 받으니 국민을 속역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형제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친구에게 군대를 합법적으로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고민과 갈등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했던 겁니다.

이렇게 위선은 세상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용서 받기가 힘든 죄가 되고, 누리던 모든 복을 한 순간에 잃게 만들 수도 있는 큰 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그렇게 ‘위선적’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기도가 위선적이 될 수 있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드려지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인지를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5절을 보시면,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기서 ‘외식하는 자’는 헬라어로 ‘호이 휘포크리타이(οί ύποκριταί)’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가면을 쓰다, 위선적 태도를 취하다, …인 체하다’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흉내를 내는 사람, 배우’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영화 ‘밀양’에 보시면,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교회에서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을 정말 리얼하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겁니다. 진짜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기도하는 연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1세기 유대 땅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가면을 쓴 기도’라는 겁니다. 목적이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다. 나 이렇게 경건한 사람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아봐 달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건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할수록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원래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점점 더 위선적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척 하는 겁니다. 저도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지만, 방언 기도하는 건 좋은데,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내가 무슨 간절함으로 무슨 기도하지도 모를 때는 안하니 만 못합니다. 자칫 위선적인 기도가 될까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조용히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시 집중력을 찾아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6절 말씀에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서는
“너희는 이렇게 하여라. 하나님 앞에서 연극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라.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 자리에 있어라. 그러면 초점이 너희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그 분의 은혜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기도회 모임 같은 곳에서 기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훈련도 필요하고,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부르짖었던 것과 같은 그런 합심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도와 균형(balance)을 맞춰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초점을 그 분께 맞춰야 하는 겁니다. 그 혼자만의 시간에는 그 누구도 나를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입니다. 가면을 벗은 기도자가 되는 겁니다. 그 때 그 분의 은혜가 내안에, 내가 있는 공간 안에 가득하게 임하시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위선적인 기도자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가면을 벗은 하나님 앞의 순수한 기도자의 모습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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