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할 때에”

<마태복음 6:16~18> 
– 다니엘 하루3번 기도(새벽⑫) –

지난 해 9월 말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한 정당의 당 대표가 “ㅇㅇㅇ국회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 국회의장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하며 단식에 돌입했다가 단식6일만에 중단하고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기사화 되었습니다. 보통 정치인들이 이런 단식을 통해서 종종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CBS 뉴스에서 당시 단식에 대한 기사를 다루면서 타이틀을 “ㅇㅇㅇ단식, 왜 감동보다 조롱이 쏟아졌을까?”라고 했었습니다. 그 당의 대표는 정말 목숨을 걸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단식했던 그 분의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던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불편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단식하면서 성경을 읽는 모습이 보도되었는데, 저렇게 국민들의 조롱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 분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 ‘금식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금식을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여러 날 금식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온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할 힘조차도 없어서, 그냥 계속 누워만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금식기도를 ‘몸으로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말로서 기도를 드릴 수 없기에 금식으로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리는 겁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보시면,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 사람들은 곧 경건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당시 유대인들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처음에는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종교행위로 변질되어버렸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잘못된 금식행위를 경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8:5절에서는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금식의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금식하는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구절에서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곡끼를 끊는 금식이라는 것 자체가 밥 굶는 것으로 끝나거나, 사람들에게 내가 금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무시한 종교적 의식일 뿐입니다. 금식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금식의 행위보다 금식을 통해서 그 마음이 하나님께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 왕은 범죄 했을 때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삼하12:15~17). 에스더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금식했습니다(에4:3,16).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사시기 전 40일 동안 금식하며 준비하셨었습니다(마4:2).

이처럼 금식은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순간들 또는 위기의 순간들에 행해졌었는데, 밥을 안 먹으면 육신의 힘이 빠지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 육신의 힘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집중하겠다는 믿음의 행위요,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어제부터 60일간 금식하며 [1.23-3.23 팀 능력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확장 이전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재정이 들고 우리 성도들은 힘이 부족합니다. 제 마음 속에도 여러 가지 걱정들이 올라올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프로젝트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해야한다’는 성령의 감동을 계속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라는 감동 역시 계속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금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리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금식 할 때에 가져야 할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18절을 보시면,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는 것을 나팔 불고 떠들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더 이상 우리 육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갚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영어번역에서는 “Your Father will reward you(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보상하실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은밀한 중에 내 마음의 아픔과 눈물과 간구를 보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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