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이라”

<창세기 12:2~3> 

멕시코 바로 아래 붙어 있는 콰테말라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 4천 달러가 조금 넘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나라의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그 가난이 극심하겠습니까? 인구 2만 명이 사는 산악마을 ‘알모롱가’는 40년 전만해도 기독교인구는 0%에 가까웠고, 마을 사람들 중 상당수는 ‘마시몽’이라는 우상을 숭배했으며, 성인 남자들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으로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이 잦아서 이 작은 마을에 교도소만도 4개였지만 교도소를 늘려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모롱가는 지금 98%가 예수를 믿는 깨끗하고 은혜로운 도시로 변화되었습니다. 36곳의 술집 중에 33곳이 폐업을 했고, 늘 만원이던 교도소는 폐쇄돼 주민행사나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알코올 중독자도 거의 사라져 모든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이곳 사람들이 성실하게 재배한 농작물들은 타 지역에 비해 2~3배나 더 크고 수확이 좋아 주민들은 가난을 벗어났고, 미국의 농업 연구가들이 그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이 도시를 위해 목숨 걸고 기도하며 사역 중에 있는 ‘리스카흐체 마리아노(알모롱가 갈보리교회)’목사님이 있다고 합니다. 초기에 영적 전쟁으로 수많은 죽음의 고비도 넘겼지만, 결국 그 목사님 한 분으로 인해 인구 2만 명의 마을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던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불러내셔서 “너는 복이 될지라(I will bless you)”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히브리 원어에서 말씀하시는 문자적인 뜻은 “너는 복이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아브라함이 ‘복’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아브라함이 어떤 인물입니까?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을 받고,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한 사람입니다.

어제 말씀드렸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 ‘믿음’이란 게 무엇입니까? 그 전에 내가 믿고 의지하던(“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것들을 내려놓고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그 의지의 대상 믿음의 대상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된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것은 이제 그 의지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구절에서 “너는 복이 되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앞에 생략된 단어가 “(믿는) 너는 복이 되어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2절에 생략된 단어를 넣어서 다시 말하면, “내가 (믿는)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믿는) 네게 복을 주어 (믿는)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믿는) 너는 복이 될지라”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의 능력도, 배경도, 어떤 힘 있는 사람도, 재물도… 그 어떤 것도 의지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 사람이 ‘너는 복이라’는 말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복’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 복(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고, 그 복을 저주하거나 거부하거나 멀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하시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제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이 이제 복의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알콜중독과 폭력과 우상숭배로 쪄들고 가난에 허덕이던 과테말라의 산악마을 알모롱가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들고 들어간 한 목사님을 통해 마을 전체가 변화되고 복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그 마을의 복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복음이 들어간 민족과 나라마다 경제적인 복을 겸해서 받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3억 명의 인구 중 약 2억 명의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며,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경제대국 중국은 엄청난 종교적 박해 속에서도 약 1억 명의 믿는 자가 있습니다. 지난 2천 년간 기독교 문화 속에 있었던 유럽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진국 대열에 있고, 아프리카 대륙도 기독교 비율이 높은 남아프리카 나라들이 대부분 이슬람인 북아프리카 나라들보다 경제적으로 부강합니다.

이것이 비단 물질적인 복만을 말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는 가정이 변하고, 인생이 구원받고, 도시가 변화되고, 나라와 민족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필리핀 세부의 한인 복음화 율은 약 3%에서 많아야 5%밖에 되지 않습니다. 영적 황무지와 같습니다. 때문에 이곳의 교민사회는 녹녹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 성도 한 사람이 ‘복’이 되는 겁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이 있는 곳이 변화될 겁니다. 복을 받을 겁니다. 저에게도 이 믿음이 있습니다. 저 때문에 우리 교회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이 도시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언젠가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세부에 어학연수가 주 목적이 아니라, 세부에 ‘영적 유학, 신앙 유학’을 오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회복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고, 꿈을 꾸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받기 위해 이 땅에 자녀들 손에 손을 잡고 믿음의 유학을 오게 될 영적 부흥의 땅이요, 축복의 땅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갖고 있는 당신에게 주님께서 “너는 복이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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