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매일 것인가?”

<창세기 14:17~24> 

한국에서 필리핀에 와서 살다보니 여러 가지 새로운 문화적인 차이도 많고, 한국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들도 좀 있는 거 같습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많이 쓰는 표현 중에 하나가 있는데, 자신의 고용주를 ‘보스(Boss)’라고 부르는 겁니다. ‘보스’라는 말을 한국에서는 깡패영화 때문인지 그런지 깡패 두목 정도로 많이 이해하고 있는데, 영어권에서는 ‘실권을 쥐고 있는 우두머리’를 가리킬 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처음 상가 건물을 얻어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건물 관리인들이나 필리핀 관공서 직원들이 와서 뭔가를 문의할 때, 저에게 ‘당신이 이 교회의 보스입니까?’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겁니다. 얼마나 그 표현이 싫던지, 지금은 저를 ‘pastor(목사)’로 부르지만, 초창기만 해도 ‘보스’라는 표현을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사람들은 보스의 말이라면 마치 종처럼 꼼짝 못하고 따릅니다. 약 400년 정도를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신분계급사회 분위기가 필리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보스가 아닌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시키면 돈을 주기 전에는 절대 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보스의 말에는 종처럼 순종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필리핀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돈을 받느냐, 어디에서 돈이 나오느냐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간혹 어떤 불신자들은 “교회에 너무 빠지지 마라 거기서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 게 안 나오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은 돈이 나오는 곳 또는 돈을 주는 사람에게 매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매인다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돈이든, 그 대상이 사람이든, 그것의 종(노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God)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경계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는 아브라함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연합군을 쳐부수고 롯과 소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빼앗겼던 재물을 다시 찾아 돌아올 때 있었던 특별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올 때, 그의 승리의 개선을 맞아줬던 특별한 두 사람이 등장 합니다.

한 사람은 18절에 보시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그 살렘의 왕이었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말씀에서는 멜기세덱을 신비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3절에 보시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고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제사장 제도와 십일조 제도는 아브라함의 먼 후손인 모세를 통해 성문화되었던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이란 신비한 제사장을 만나 그에게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이 멜기세덱이 신적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를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는 겁니다.

멜기세덱과의 만남 이후에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소돔 백성들은 자기에게 돌려보내고 되찾은 재물들은 당신이 가져라’고 말하는 겁니다.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 입장에서도 당연히 그런 보상을 받아 마땅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태도가 특별합니다. 22절, 23절에서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은 소돔 왕의 파격적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겁니다. 그 이유가 아브라함이 성공하고 부자가 된 이유가 소돔 왕이 준 재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라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던 겁니다. 그래서 소돔 왕에게 속한 실오라기 하나라도 갖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소돔 왕은 악하고 큰 죄인이었고, 그런 사람을 통해 아브라함이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교회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집사님이고, 나중에 장로님도 되신 분이신대 세부에 소문이 이렇게 나 있는 겁니다. ‘광명교회 다니는 그 아무개 장로 있잖아? 세부 악질 사기꾼 아무개 그 사람이 밀어줘서 성공한 거래잖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다면, 그것이 은혜가 되겠습니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 성도는 늘 그 사기꾼과 엮어서 사람들이 생각할 겁니다.

아브라함은 22절에서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은 하나님 여호와께”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께 매여 있기를 원했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고 싶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매여 있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온전한 복을 사모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복주시고 복 주실 것을 믿으시는 오늘 하루를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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