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왕을 모실 때…”

<스갸라 9:9~17> 

저에게도 이미 장성한 딸과 아들이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좋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소망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가?’ 에 대한 얘기를 종종하게 되는데,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깐 당연히 ‘믿음’을 먼저 말할 거 같지만, 사실 저는 ‘성품이 좋아야 한다’라는 말을 첫 번째로 놓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생활 열심히 하니깐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위선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영적 교만 가운데 있는 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진짜 믿음이 좋은 것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과 같이, 그 믿음이 성품을 통해 열매를 맺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떤 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은 간단합니다. ‘그가 약자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그 사람의 성품을 시험하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If you want to test his character, give him power.)”는 말을 했습니다. 힘이 있다고 그 권력이라는 힘을 약자를 향해 함부로 휘두른다면 그의 인격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내가 언젠가 약자의 위치에 가게 될 때, 나를 함부로 대할 사람일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과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산다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예쁘고, 멋있고, 매력적이고, 강하고, 힘이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늙고 힘이 없는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그리스도)에 관한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뮤지컬 중에 ‘The Superstar Jesus Christ’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제목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슈퍼스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9절을 보시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메시야(그리스도)로 등장하시는 장면을 스가랴는 예언하고 있는데,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 사건을 앞둔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 세계의 택한 자들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지만, 그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의 머리에 왕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화려한 자주 빛 왕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방패와 무기를 든 호위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명마의 혈통을 이어 받은 멋진 백마를 타고 입성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아직 사람을 한 번도 태워보지 못해 뒤뚱거리는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겁니다.

9절에서 예수님께서 그런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이유를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겸손히 낮아지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낮아짐 즉 겸손한 사람이 약자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거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형편과 생각보다 자기의 생각과 상황이 더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 속에 수많은 폭군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강력한 권력으로 공의를 행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구원을 베풀었던 적이 있었던 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낮아지셔서 이 땅의 종의 형상을 입고 오셨고,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면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 가운데 이루셨던 것입니다.

11절, 12절을 보시면,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겸손의 왕께서 임하실 때, 오랫동안 구덩이에 갇혀 있었던 자들을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1차적으로는 유다의 바벨론 포로 해방을 의미합니다. 메시야의 구원을 소망을 품은 자들은 ‘요새(예루살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암흑 같던 인생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앞이 막막하고 캄캄하며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 있더라도, 겸손의 왕을 여러분의 마음에 모시고 계십시오.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구원하셔서, 영광스럽게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겸손의 왕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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