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그리고 새로운 역사”

<에스라 2:1~70>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었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 보니깐 월세가 적게 드는 방을 찾아 수도권 여기저기로 이사를 여러 차례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된 친구도 별로 없고, 어디가 고향이다 할 만큼 깊이 정든 곳도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오래 산 곳이 세부에 개척하기 전 10년간 살았던 의정부였습니다. 그래서 의정부에 여러 추억들이 있습니다. 마을들을 다니며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성도들과 함께 맛 집도 다니고, 가끔 동료 목사님들하고 등산도 하고,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동네 옆에 있는 작은 개울에 가서 송사리를 잡던 추억들이 의정부라는 도시에서 갖고 있는 저의 기억들입니다.

어느 새 저에게 의정부라는 곳이 너무 편안하고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던 때에 하나님께서 제게 개척에 대한 비전을 주셨고, 그것도 한국도 아닌 필리핀 세부라는 곳으로 정해지게 되었을 때, 많은 갈등과 고민들을 갖게 되었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오래 살아서 정들었던 도시를 떠나야 했고, 중년의 나이에 안정적인 환경을 벗어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멀리 떨어져 어쩌면 타국에서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고, 경제적인 부분과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은 영적인 모험을 저는 시작해야 했던 겁니다.

오늘 에스라서 2장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과 숫자가 70절에 걸쳐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비록 포로생활이었지만 70년간 살았던 땅을 떠나야 했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먼저 2절을 보시면,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귀환자의 명단에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스룹바벨은 유다 자손으로 유대인들을 이끌고 돌아온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아는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인데, 대제사장이었습니다. 2절에 먼저 기록된 사람들은 백성들의 지도자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3절부터 67절까지는 유다로 다시 돌아온 각 가문의 수령들과 귀환자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제사장 가문과 성전의 일을 담당해야 할 레위지파 사람들도 있습니다. 백성들과 레위인 그리고 남녀종들까지 약 5만 명 가량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68절과 69절을 보시면,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어떤 유대의 족장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위해 힘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1절을 보시면,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이 구절에서 ‘70년 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전쟁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에스라 2장에 등장하는 약 5만 명의 귀환자들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의 자손들이라는 말입니다. 70년 전에 포로로 잡혀왔던 자들 중에 상당수는 이미 늙어 죽었고, 살아있다고 해도 4개월여에 걸친 그 험난한 귀환 길을 함께 가기에는 건강이 따라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과연 그 자손들이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부모님의 나라 유대 땅으로 다시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하는 겁니다.

68절에서 어떤 족장들이 큰 예물을 성전재건헌금으로 드리는 장면을 보면,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고생을 했겠지만, 에스더처럼 왕비에 오른 사람도 있고, 사업을 하거나 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당대 최강대국 페르시아의 선진화된 환경에서 공부하고 성장하고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었을 겁니다. 10년간 한 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살다가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곳에서 태어나 그 땅에서 자라고 공부하고 사업하던 사람들이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폐허와 불모지가 되어있는 선조들의 땅 유대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요즘 말로하면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하고 시민권 있는 미래가 창창한 사람들이 네팔 오지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거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갈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1장5절에서 “그 마음에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라는 겁니다. 성령의 감동에 순종한 것인데, 이 순종에는 헌신과 희생이 따라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종했고, 헌신했고, 희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세월 무너져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여러분이 순종할 때, 거기에는 어떤 헌신과 희생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그 헌신과 희생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그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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