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시는 아버지”

<신명기 31:30~32:14> 

저는 부모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제가 아마도 대여섯 살의 나이 쯤 되었을 때에 부모님은 서로 헤어지게 되셨고, 우리 가족은 조금 일찍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보고 자란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제가 부모가 되어서 자녀들을 양육할 때 내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확신이 안 설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성장기 때 저의 불행한 가정환경에 대해서 부모님께 원망의 마음을 갖고 살았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 부모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성장해서 성인이 되어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늘 부모님을 원망만 하던 제가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된 성경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스바냐 3:17절 말씀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은 제가 부모님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준 말씀입니다. 또 제가 부모가 되어 이 말씀을 볼 때 그 부모님의 마음이 더 깊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를 닮은 아이들이 태어나 잠들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는 말씀과 같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아, 우리 부모님도 여러 가지 상황들로 가정이 깨어지는 아픔이 있으셨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났을 때 이렇게 나를 사랑하셨겠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이후로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보통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인해서 어릴 때 헤어진 부모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된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외하고 인간 사이에서 가장 큰 사랑은 부모의 자식 사랑일 겁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기 전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일깨우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시며 공의로우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했습니다(32:4).

5절, 6절을 보시면,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를 베푸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간의 세월 동안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삐뚤어진 세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7절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그리고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여러 민족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기업’으로 삼으셨다는 겁니다(9절).

그리고 10절부터 1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기업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어떻게 돌보시고 양육하시고 훈련하셨는지를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을 받았습니다. 마치 눈꺼풀이 가장 민감한 눈동자를 지키듯이 그렇게 그들을 광야에서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수리가 그 새끼를 어떻게 돌보고 훈련하는 지에 대한 비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튼 독수리는 그 새끼에게 하늘을 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날개를 갖고 있다고 해서 다 하늘을 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날개는 무거운 몸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강한 힘과 근육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자기 보금자리에서 큰 날개를 펄럭이면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날기 위해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땅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는 새끼 독수리가 힘이 빠질 때면 독수리는 큰 날개를 펴서 떨어지는 새끼를 받아 다시 둥지로 돌아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끼 독수리는 점점 더 강한 날개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했지만, 그 일을 통해서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만한 강한 날개를 얻게 된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 광야와 같은 시련이 있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는 이전 보다 더 강한 날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위태위태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하늘의 제왕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시련의 한 가운데 있는 오늘 나의 삶에도 여전히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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