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존중하라”

어제 7월23일부터 8월31일까지는 특별저녁기도회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나눈 말씀 내용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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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8~17> “여호와를 존중하라”
Breakthrough 40일 특별저녁기도회(1)

사무엘하 10장에 보면,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위에 올랐을 때의 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 왕은 암몬 왕 나하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조문사절단을 꾸려서 암몬으로 보내게 됩니다. 과거 암몬 왕 나하스가 다윗에게 어떤 호의를 베풀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 역시도 과거의 은혜와 호의를 잊지 않고 신하들을 보내 조의를 표하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암몬 왕의 신하들은 다윗의 순수함을 다른 눈으로 봤습니다. 당시 주변 여러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대한 나라의 왕인 다윗이 기회를 엿보다가 암몬을 치고 들어올 것 같다고 하눈 왕에게 얘기를 한 겁니다.

결국 암몬 왕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깍고 그들의 의복을 중동볼기까지 잘라 수치와 모욕을 주어 돌려보내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과 암몬은 수만 명이 희생되는 큰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한 나라의 대표로 파견된 사신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준 것은 곧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을 모욕 한 것과 같은 겁니다. 역대하 19장과 20장을 보면, 결국 이스라엘은 암몬을 치고, 암몬 왕을 죽이고, 암몬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2:30절 말씀을 보시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존중한다’는 것은 ‘귀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그 분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그 분의 일을 멸시하는 사람은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나눈 말씀이었던 열왕기하 4:1~7절까지의 내용에는 두 아들은 있으나 가난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오늘 본문에는 부유하나 자식이 없는 수넴 지역의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8절을 보시면,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엘리사가 여러 지역을 다니며 사역을 할 때 종종 들리던 지역이 수넴이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한 부유한 한 여인이 간곡히 엘리사를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엘리사가 그 마을에 들를 때마다 음식을 대접하던 여인이었습니다.

9절, 10절을 보시면,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그런데 그 여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남편과 상의해서 엘리사를 위해서 작은 방을 하나 준비하고, 침대와 책상과 의자와 촛대까지 준비해서 엘리사의 사역을 돕기로 합니다.

이 여인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 엘리사 선지자를 도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단지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엘리사를 도왔던 겁니다. 인간적인 어떤 친분 때문에 엘리사를 도왔던 게 아닙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엘리사와 그의 사역을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여호와를 존중하고, 그 분의 일을 존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여호와의 거룩한 선지자이고, 그 분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여인은 여호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분의 일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엘리사를 도왔던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결국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그 여인처럼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돈이 많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없으면 절대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여인의 세심한 배려에 크게 감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아마도 엘리사는 왕과 사령관과 같은 고위층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저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엘리사는 어떻게든 그 여인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그 여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그 남편은 매우 늙어서 자식을 낳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엘리야는 1년 뒤에 그 여인이 아들을 안게 되리라는 예언을 말하게 됩니다. 여인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엘리사의 말을 농담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7절에 보면 그 여인은 1년 뒤에 엘리사의 말대로 아들을 낳게 됩니다.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이 여인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은 이 여인에게 그것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강한 믿음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대해서 늘 말씀하시기 때문에 믿음이 기적을 만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강한 믿음을 강조하기 보다는 다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여인이 기적을 경험한 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이 여인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까? 이 여인이 무엇을 했습니까?

이 여인은 아들을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은 너무 꿈과 같은 거였기에 그녀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이미 마음에서 접고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자신에게 주신 물질을 갖고 엘리사 선지자를 잘 섬겼습니다.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유가 9절에서 “이 사람은(엘리사)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일 줄을 내가 아노니”라는 것 때문입니다. 엘리사 라는 사람을 섬긴 게 아니라, 그녀는 그 엘리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엘리사를 통해 일하시는 그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여인의 섬김을 통한 수혜자는 엘리사였지만, 그 여인은 엘리사가 아닌 여호와와 여호와의 일을 존중하고 그 일을 위해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교회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교회의 일과 봉사를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여호와를 존중(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존중하는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일들을 행하셨습니까? 그녀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들, 그러나 너무 말도 안 되는 꿈이었기에 이미 포기해버렸었던 꿈을 다시 이뤄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절 말씀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며,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세상일은 귀하게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과의 약속은 귀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약속은 소홀히 생각하고, 교회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갖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어떤 일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얼마나 모순적인 마음입니까?

Breakthrough 40일을 통해 저는 우리 인생의 한계를 돌파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이 40일 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서 어떤 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른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바른 마음을 갖게 될 때, 여호와를 존중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했던 일들도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진정한 Breakthrough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요, 평신도 설교자로 쓰임 받았던 ‘드와이트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큰일에는 헌신하려 하지만, 작은 일에 헌신하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아무리 작아 보이는 일 이라할 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섬긴다면 주님은 그의 인생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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