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

<열왕기하 24:8~25:7>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28)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는 단군이 세운 고조선(B.C.2333)부터 시작됩니다. 고조선의 영토는 우리 한반도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꽤 넓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국명이 ‘조선’인데 후에 왕건이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세기 무렵부터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나라들이 일어났습니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영토 대부분을 차지한 대단히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때문에 지금의 북한 이북지역은 수천 년에 걸쳐서 우리 한민족이 살던 영토였습니다. 때문에 통일신라시대 이후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고, 지금의 북한 이북지역에는 600년 이상 조선인들이 계속 거주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백두산을 중심으로 당시 청나라와 조선간의 국경선 분쟁이 있었고, 청나라는 우리나라에 국경선을 확정하기 위한 절충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양국대표일행은 백두산에 ‘백두산 정계비’라는 것을 세운 겁니다. 이 비문에는 “동은 토문강, 서는 압록강”으로 국경을 정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새겼습니다. 백두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토문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청나라 땅이고, 동쪽 그러니깐 ‘북간도’는 조선 땅으로 확정한 겁니다.

그런데 1883년(고종20년)에 청나라 쪽에서 그 ‘토문강’은 ‘두만강’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북간도 지역이 청나라 땅이라고 우겼던 것입니다. 물론 조선은 그런 억지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선말(대한제국)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외교권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일제는 청나라와 ‘간도협약(1909년)’을 맺어 철도부설권을 획득하면서 간도지역을 청나라 땅이라고 불법적으로 인정해버렸습니다.

그리고 1931년에는 ‘백두산 정계비’도 은밀하게 철거해 버렸습니다. 지금도 북간도 지역인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한글을 사용하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수많은 우리 민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미 그 땅을 뺏긴 지 100년이 지나버렸기 때문에 국제법상 우리가 그 땅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미 뺏겨버린 땅인데, 우리가 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이 슬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면, 그것에서 경계를 얻었다면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그 역사를 통한 교훈을 무시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는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40일간 그 역사들을 살펴보고 있지만, 그들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고,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린도전서 10:11절에서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 깨우치고, 그들의 멸망의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어떤 충고를 하는데 그걸 잔소리로 듣고 듣기 싫어하기만 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듣기 부담스러운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분명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몰락의 역사를 내 인생 속에서 반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 왕국의 최후의 왕들인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왕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열여덟의 나이에 왕위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으로 보낸 시간은 3개월이 전부였습니다.

10절을 보시면,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과 수십만 명의 대군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열여덟 살의 여호야긴 왕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면,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여호야긴 왕은 그 싸움의 승산이 없음을 느끼고, 신속히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앞에 나아가 항복했습니다. 여호야긴은 아마도 어떤 선처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거나 하는 것으로 남유다의 자치정부를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사로잡습니다. 바벨론 왕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을 전리품으로 챙깁니다. 그리고 군대의 지도자를 비롯한 용사 1만명과 귀족들과 모든 기술자들(대장장이)을 사로잡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는 더 이상 독립하지 못하도록 비천한 자들만 남겨두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야긴 왕과 모든 왕족들과 귀족들과 그의 신하들과 아내들과 그의 어머니까지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게 됩니다. 왜 이런 비극이 반복되었습니까?

24:9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긴은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된지 100일도 안되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는 신세가 되고, 거의 평생을 바벨론의 옥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이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어 버린 겁니다.

17절을 보시면,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바벨론 왕은 야호야긴의 숙부(요시야 왕의 다른 아들) 맛다니야를 남유다의 꼭두각시 왕으로 앉혀놓습니다. 그가 요시야의 아들들 중에 가장 마지막에 왕(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주목받을 만한 게 없었던 무능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도 시드기야로 바꿔 부르게 합니다.

시드기야는 스물한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11년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된지 제9년 되었을 때에 바벨론 왕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예레미야 37:7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예레미야서를 참조해보면 시드기야는 아마도 애굽(이집트)에 도움을 요청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이 컸었던 거 같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깐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그 절박한 순간에도 시드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8:21절에 보시면,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지하다가 오히려 그 손에 그 상한 갈대가 찔려 들어간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러분에게 진정한 힘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일로 인해서 여러분이 더 크게 상심하고 상처 입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그런 애굽 왕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 왕이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고, 확신했으니깐 중동의 패권자인 바벨론을 배신할 생각을 했을 겁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대군을 몰고 예루살렘 성을 다시 포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1년 8개월간 그 성을 포위했는데, 성 안에는 양식이 떨어져 기근이 심각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시드기야 왕은 그의 신하들과 함께 야반도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벨론 군대가 그를 뒤쫓아 갔고, 호위무사들은 두려움에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왕은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25:7절입니다.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최후의 왕 시드기야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의 아들들은 시드기야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시드기야는 두 눈을 뽑혀 쇠사슬로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은 열왕기하 24:19절에서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그의 형제이며, 그보다 앞서 왕이었던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최후의 왕 여호야긴과 시드기야가 패망한 이유는 열왕기하 24:9절 그리고 19절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이 여호야김(엘리야김)의 행위를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 우리는 남유다 몰락기의 네 명의 왕들을 살펴봤습니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끝으로 한 때 찬란했던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이들을 향한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23:32)
–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23:37)
–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24:9)
–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24:19)

그리고 이 말씀들 뒤에 붙는 동일한 구절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세 아들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그리고 시드기야는 훌륭한 믿음의 아버지 요시야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던 다른 조상들을 그들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왕은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을 본받아 그도 악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호아하스는 애굽의 바로 왕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죽게 됩니다.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 왕은 바로 왕이 세운 꼭두각시 왕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애굽의 바로 왕을 섬기고, 후기에는 바벨론 왕을 섬기다가 결국 죽게 됩니다.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은 석달간 왕위에 앉아있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거의 평생을 옥에 갇혀 지내는 죄수가 됩니다. 그 뒤를 이은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꼭두각시 왕이었고, 그 역시 두 눈이 뽑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오늘 설교서론에서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성경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역사인데,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들 가운데 있었던 비참한 역사는 곧 우리 인생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역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기록되어야 하고, 역사를 배워야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그 역사를 마음에 새겨두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열왕기상하를 통해 교훈을 받고, 우리는 더 이상 몰락의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 개인의 몰락, 가정의 몰락, 사회의 몰락, 민족의 몰락… 우리가 깨어 있는다면 더 이상 이런 몰락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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