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변화되지 않으면…”

 

<사도행전 8:9~25> 

– Acts(25) –

 

제가 처음 인터넷을 접할 때에 인터넷포털사이트 및 검색엔진은 야후(Yahoo.com)라는 사이트가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뭘 검색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할 때 대부분이 야후를 통해서 했습니다. 이렇게 야후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1월 당시 야후의 주가는 주당 475달러였습니다.

그런데 1년 8개월 뒤인 2001년 9월에 야후의 주가는 폭락을 했는데, 주당 475달라 였던 것이 주당 8달러로 떨어진 겁니다.

그리고 전성기 때 야후의 기업 가치는 약 147조원에 달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마존이나, 애플 정도의 가치였던 겁니다. 그런데 세계최고의 회사가 하루아침에 5조원대로 기업가치가 하락한 겁니다.

야후가 이렇게 몰락하게 된 데에는 1998년 구글이라는 혁신적인 검색엔진이 등장하게 된 겁니다. 저 역시도 인터넷을 할 때는 항상 구글에서 부터 시작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가볍고 빠른 구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구글은 세계 검색량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브랜드 가치는 132조원으로 세계 1~3위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를 개척해 세계 최고의 기업이었던 야후가 왜 이렇게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IT업계의 생태계에 맞춰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회사였고, 쉐보레로 유명한 GM(General Motors)은 역사가 100년이 넘는 자동차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회사가 2009년 파산보호신청을 했었습니다. ‘매리 바라(Marry T. Barra, 1961~)’라는 여성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자동차 회사의 생산라인에서 일하기 시작했었는데, 그녀는 2014년 이 회사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에 오르게 됩니다. GM은 파산보호신청을 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서는 GM이 골치 아픈 천덕꾸러기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매리 바라가 이 회사의 회장에 올라 2년 만에 회사를 다시 회생시켜 다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올려놨습니다.

 

2016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메리 바라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새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 2018 필리핀 코스타 폐회예배에서 청소년사역을 하는 김보성 목사님을 통해서 한 소년에 관한 간증을 들었는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가 되었는지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하던 소년이 가정형편 때문에 축구를 포기하고 완전히 삐뚤어졌었는데, 우연히 참가한 교회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삶이 완전히 변화되어 지금은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전도사님이 되었다는 겁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고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불량하고 불행한 삶을 이어갔을 겁니다. 그러나 그 소년이 변화되어 자기처럼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 청소년 사역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키워가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그것은 한 개인의 인생도,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몰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거 같습니까? 나의 이 모습이 정말 하나님께서 바라고 바라시던 모습인 거 같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는 나의 이 모습 때문에 나는 몰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 거짓은 수명이 짧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한 분인 빌립 집사님은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 북쪽의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복음과 함께 놀라운 기적들도 나타났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고, 많은 병자들이 치유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여기서 시몬이 어떤 종류의 마법 혹은 마술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그 지역에서 마술을 통해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James Randi, 1928~)’라는 분이 계세요. 이 분이 젊은 시절부터 마술사로 활동했는데 이 분이 ‘100만 달러 초능력 챌린지($1million Paranormal Challenge)’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초능력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그가 진짜 초능력자라면 그 사람에게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겁니다.

정작 본인도 마술사이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초능력과 마술이 다 들통이 날 수도 있는 그런 챌린지를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초능력이 있다고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100만 달러를 받아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이런 챌린지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이 젊었을 때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중에 주술사들이 중환자들을 치료해준다면서 말도 안 되는 트릭으로 환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그러는 와중에 환자들은 도리어 치료받을 수 있는 시간을 놓쳐 병이 더 중해져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부와 명예를 얻는 이들의 가짜 행위들을 드러내려고 이 챌린지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술을 행하던 시몬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일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 마술과 주술을 통해 신비한 능력을 행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함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트릭(trick)이라는 겁니다.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왜 이런 트릭을 계속 쓰고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물질과 명예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에 보시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시몬이 그런 속임수를 통해서 얼마나 큰 영광을 얻었고, 그 영광에는 많은 부도 따라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떤 신적 능력(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의 특징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 그렇게 감춰질 거 같지만,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거짓은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빛만 살짝 비춰져도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던 것들은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짓의 수명은 짧습니다. 오래 가지 않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부모님을 속일 수 있어요. 목사님을 속이고, 선생님들을 속일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지금 당장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거짓은 유통기한이 짧습니다. 그것이 드러날 때는 더 큰 수치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 얻었던 순간의 이익보다 더 크고 많은 것들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잠언 12:19절 말씀에서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거짓은 오래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은 영원하지만 거짓은 잠시 동안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드러날 거짓에 유혹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37절 말씀에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거짓말도 하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그 습관은 나를 점점 더 악하게 만들 뿐입니다. 거짓은 마귀를 따르는 겁니다. 마귀가 시키는 겁니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겁니다.

마술사 시몬이 있었던 사마리아에 빌립 집사님이 들어가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마리아 성에 큰 영적 부흥이 일어난 겁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도 받게 됩니다. 도시 전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놀라운 것은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절의 주지스님이 예수 믿은 거 하고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몬이 믿었던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2:19절 말씀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시몬이 믿었다는 것은 지식적인 동의를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적 동의를 넘어, 마음의 변화, 생각의 변화, 태도와 행동의 변화와 같은 전 인격적인 것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13절 말씀 하반절에 나오는 내용처럼 빌립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에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시몬이 열심히 빌립을 따랐던 것은 복음에 관심이 이었던 것이 아니라, 빌립에게서 그런 능력 혹은 테크닉을 배우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 것에 관심 있는 한 그는 진정한 변화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 나오면서 신앙생활 하는 거 같지만, 여전히 돈과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 성공과 같이 겉으로 보여 지는 어떤 기적과 같은 것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절대 변화되지 않을 겁니다. 때문에 거짓과 같은 잘못된 습관들도 안 고쳐지는 겁니다.

 

2. 영적인 변화를 받으라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 땅에서 일어난 놀라운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도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당시로는 대단히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동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과 같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놀라웠던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냅니다.

 

15절, 16절을 보시면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한 일은 예수님을 믿기로 한 사람들을 위해 성령 받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시몬의 경우와 같이 예수님을 지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야고보서 2:19절 말씀과 같이 귀신들도 지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동의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은 영적변화가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사마리아 지역의 성도들을 만나 보니 그들에게 성령이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지적 동의만 갖고는 결코 삶이 변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겁니다. 머리로, 지식적으로 몰라서 죄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 알지만 마음이 안 움직이니깐 자꾸 죄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에 2018 필리핀 코스타에 참석한 우리 학생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 중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지식적으로 어려서부터 부모님께로부터, 목사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않으면 그건 그냥 지식적인 것에만 머무는 겁니다. 머리에만 머물고 가슴까지는, 마음까지는 안 내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 코스타처럼 종종 이런 시간들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주일 예배만 오시지 마시고, 특별 기도회를 하면 거기에도 한 번 참석해 보세요. 어느 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성령을 부으시고, 삶을 변화시켜 주실지 모르는 겁니다. 요즘은 다니엘 기도회가 매일 밤마다 진행 중에 있는데 11월 21일까지 저녁마다 한 번 도전해 보십시오. 영적 변화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안수했더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와 같이 방언과 같은 영적 표징들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영적인 체험들이 필요합니다. 방언기도와 같은 영적 체험도 좋습니다. 기도했는데 어떤 응답을 경험하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경험하거나,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기적처럼 일어나는 일들도 경험해야 합니다. 찬양할 때 눈물도 나고, 기도할 때 방언도 터지고,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비전이 임하기도 하는 그런 특별한 영적인 체험들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시몬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18절, 19절을 보시면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마술사 시몬은 여전히 세속적인 가치와 생각들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적으로만 믿었던 겁니다. 영적인 변화들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돈을 주고 그런 능력 행함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과 시몬이 똑같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12절, 13절).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다(17절)는 내용은 있지만, 시몬이 성령을 받았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몬이 여전히 세속적 가치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뭐겠어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 받은 사람에게 방언이 임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의 표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령이 누구세요? ‘성령 하나님’이시지요? 그렇다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안에 가득하시면 우리는 그 성령에 의해 지배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서 내 안에 계셔서 내게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인간적인 욕심과 정욕이 가득하면 무엇이 나를 움직이겠습니까? 육체적인 욕심이 나를 움직이는 겁니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 안에 가득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고, 이끌림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육이 아닌 영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방언만 하고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찌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시몬이 예수 믿는 듯 했지만 그는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예수와 교회와 신앙은 단지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 도구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는데 영적인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변화 없이, 성령을 받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진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3. 너의 악함을 회개하라

 

오늘 본문 20절, 21절 말씀을 보시면,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베드로는 시몬이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 들어왔으면서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세속적인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하나님과 물질 간의 서열이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게 되면 여러분 안에서는 늘 하나님과 물질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날 것입니다. 시몬은 성령을 받지 않았고 그러니 여전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말 속에는 ‘시몬아 네가 왜 변화되지 않느냐? 그렇게 변화되지 않으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돈과 함께 너는 망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23절에서는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의 마음에는 성령이 아닌 ‘악독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불의에 매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시몬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그는 그 자신 안에 있는 악한 마귀의 음성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과연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마귀의 음성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분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자녀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전히 성령이 아닌 나의 욕심과 정욕과 마귀의 음성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베드로는 시몬에게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몬이 악하고 범죄했으면 그 자리에서 그를 벌하시든, 심판하시든, 죽이시든… 즉결 심판하실 수도 있지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가 돌이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죄로 그 분을 진노케 했습니까? 벌써 벌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말씀을 통해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악함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더러움과 악함과 욕심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으면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던 사도 베드로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이 말씀이 두렵게 느껴져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변증의 대가이며,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루이스(C. S. Lewis, 1898~1963)는 우리의 인생을 계란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계란과 같다. 그리고 당신은 그냥 계속 평범하고 상하지 않는 계란으로 있을 수는 없다. 부화하거나…, 상할 수 밖에…”

 

계란이 부화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다는 것은 겉모양은 계란의 모습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을 지라도 그 속은 상하거나 썩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점점 썩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힘들더라도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부화한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악함을 버리는 것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는 변화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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