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6: 1 – 12>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이 보낸 군병들에게 체포될 때,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중에 한 사람의 귀를 베어버리며 저항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라 말씀하시면서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26:5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그 권력을 믿고 권력을 휘두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정치적 권력의 희생물이 되기도 하고, 돈과 물질적인 힘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호령하던 사람이 그 돈 때문에 망하거나 큰 어려움 속에 빠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의 ‘우상’이며, 그는 그 우상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결국 그 우상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유다 왕국은 중동의 초승달지역의 작은 나라였습니다. 북쪽에서 일어난 앗시리아나 바벨로니아 같은 나라들은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남쪽의 유다 왕국을 침략하곤 했습니다. 마치 일본이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한반도를 밟고 가야 할 수 밖에 없듯이, 당시 강대국들이 아프리카라는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땅을 밟고 가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힘이 없었던 유다 왕국과 그 왕들은 북방의 강대국에 대항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강대국 애굽의 왕 바로를 의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후에 애굽 왕은 유다의 요시야 왕을 죽이고, 그 땅에 ‘여호야김‘이란 왕을 앉히게 됩니다. 그 때 바벨론 왕이 유다를 침공해 속국으로 삼습니다. 여호야김은 3년간 바벨론을 섬기다가 애굽에 대한 어떤 기대감 때문에 바벨론 왕을 배반하게 됩니다.
여호야김 왕 4년에 그들이 의지하던 애굽과 바벨론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바벨론의 승리였습니다. 애굽은 아프리카의 연합군(에티오피아, 리비아)과 함께 대군을 조직해 바벨론과 싸우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베론의 손을 들어줍니다.
10절 말씀에서
“그 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대적에게 원수 갚는 보복일이라 칼이 배부르게 삼키며 그들의 피를 넘치도록 마시리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북쪽 유브라데 강 가에서 희생제물을 받으실 것임이로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애굽)에게 원수 갚는 보복’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애굽이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표현을 쓰셨을까요? 유다 왕국은 하나님의 신부와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애굽의 의지합니다. 영적인 간응과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의지의 대상이며, 우상인 애굽을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것들, 내 마음을 움직이고, 나를 흔들고, 나를 주장하는 그 우상들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살지만,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을 벌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우상을 벌하시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훔친 그 우상을 주님께서 벌하실 날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혹시 우리 마음의 우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