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1~36>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과 비극의 날이었습니다. 대륙에 대한 제국야욕이 있었던 일본이 한반도를 발판삼아 대륙으로 뻗어가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의 모든 통제권을 빼앗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한일합방, 한일합병, 한일병합’이란 표현을 우리가 많이 듣고 자라왔는데, 가장 올바르게 표현하는 단어는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가적 치욕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일제는 강제적으로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고 공포했고, 우리 대한제국은 망했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며 희생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기에 결국 우리나라의 독립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싸우던 분들 중에서는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끝까지 투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복음화율 1.3% 밖에 되지 않던 우리민족이었지만, 임시정부의 행정부 요인 10명 중에 6명(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외무총장 박용만, 군무총장 노백린, 학무총장 김규식, 노동국총판 안창호)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당시 크리스천들의 나라 사랑과 희생의 정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의병정신선양회] 오일환 회장은 “이 같은 지도자들의 역할은 기독교정신에서 발원하는 초과의무의 행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임에도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알았던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라가 망했을 때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살길을 찾아 살던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우리 민족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고, 그들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초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유다 왕국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BC 605년에 1차, BC 597년에 2차 그리고 BC 586년 3차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1차 침공 때부터 유다인들을 포로로 끌고 갔었고, 3차 때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거의 유대인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은 유다 왕국이 더 이상 재기하지 못하도록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렸었고, 그들의 영적, 정신적 중심인 솔로몬 성전마저 완벽하게 파괴했고, 왕궁과 예루살렘 성내에 있었던 모든 집들을 불태워버렸습니다.
물론 BC537년 70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5만 명의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1차 귀환한 백성들은 총독인 스룹바벨과 함께 일단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 이후 약 70여년 뒤에 느헤미야와 함께 백성들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됩니다.
느헤미야 7:4절 말씀을 보시면,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이 때는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했을 때의 예루살렘성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과거 찬란했던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치하에서 예루살렘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던 해발 800m의 산위에 있었던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한 때 이스라엘은 찬란한 영광을 누리던 때가 있었고, 예루살렘 성은 그 이스라엘의 중심 수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1차 귀환한 백성들이 그 성안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긴 했지만, 백성들이 그 성안에 머물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귀환했지만 그 이후로도 약 100년 가까이 그 성은 버려지듯이 그렇게 황폐한 상태로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황폐한 땅에 누가 남아있고 싶었겠습니까? 더더구나 성벽까지 완전히 무너져 있었을 때는 그 성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완공한 이후 예루살렘을 다시 활력 넘치는 도시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머물러야 오래전 파괴된 집들을 다시 보수하고, 길을 닦고, 사람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황폐한 예루살렘성에 남아 있길 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제사장들을 비롯한 백성의 지도자들, 귀족들이 모범을 보이며 먼저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서 1/10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9/10는 성 밖의 유다와 베냐민 여러 지역의 성읍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1절의 경우는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성에 남게 된 경우라면, 2절의 경우는 기꺼이 황폐한 예루살렘 성에 남기를 바라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예루살렘에 머무는 이들은 성 밖에 거주하는 이들보다 더 많은 희생과 수고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그 예루살렘, 민족의 구심점이 될 그 예루살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희생하고, 수고하려 자원한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를 암시하고 있는 명칭입니다. 그런데 기꺼이 자원함으로 수고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이 땅에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자원함으로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백성들이 복을 빌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33절에서 말씀하신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자원함으로 새벽이슬처럼 헌신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모든 것을 더하시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들을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