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은혜가 임하는가?”

<시편 123:1~4> 

 

 

필리핀에 오기 전까지 저희 집에서 애완견 시추 한 마리를 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추는 얼마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같은 층에 저희 집 외에도 몇 가구가 더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복도를 걸으면 우리 집 강아지는 그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이 우리 집 식구인지, 남의 집 식구인지를 알아봅니다. 또 우리 집에서도 우리 집 막내아들은 서열상 가장 낮다는 걸 알아서인지 아빠, 엄마, 큰 딸이 복도를 걷는 소리가 들리면 현관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긁으며 반가워 어쩔 줄 모릅니다. 하지만 서열 꼴찌인 아들이 들어오면 현관 앞까지 달려갔다가 휙 하고 돌아옵니다.

또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켜서인지 강아지가 주인들이 먹는 식탁이라든지, 밥상에는 달려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식사할 때 강아지는 꼭 밥상 아래 앉아서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주인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우리 집은 강아지 성인병 걸린다고 사료 외에는 아무것도 안 주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만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을 보면 그 원칙이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상 밑으로 부스러기 하나씩 떨어뜨려 주는 겁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 앞에 와서 엎드렸는데,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 청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5장 27절을 보시면,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방인 여자는 자신을 비천한 개에 비유하면서까지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자 그의 딸이 낫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존심 상해서 그냥 기분 나빠하며 되돌아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아이를 향한 절박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여인은 결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은 그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수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23편의 저자는 하늘에 계신 주님을 향해 눈을 들어 주님께 나아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저자는 자신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주님을 향하고 있는지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 종의 개념 자체를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겠지만, 고대 사회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종에게는 어떤 선택권도, 어떤 권리도 없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허락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종에게 어떤 일에 대한 간절함이 있을 때, 종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의 허락과 은혜만을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123편의 저자는 마태복음 15장에서 자신을 개로 비유했던 가나안 여인과 같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이 은혜 베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길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3절과 4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지금 여호와의 종들인 저자와 이스라엘 공동체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절 하반절에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고, 4절에서는 “안일한 자(거만한 자)의 조소(조롱)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거만한 자들과 교만한 자들 앞에 자신들은 너무나도 무능력하고 힘이 없는 것입니다. 대적할 힘이 없는 겁니다. 산산이 깨지고 부서지고 낮아지고 수치와 조롱 속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호와의 종들인 그들은 주인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또 구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태도와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19절에 보시면,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은 바로 그런 가난한 심령을 위해, 절박하게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이들을 위해서 쌓아 두신 은혜가 있고, 주님께 피하는 자를 위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6절에서도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렇게 간절하고 절박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이들을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지금의 여러 가지 시련 속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내 실력과 능력이 부족해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내 힘으로 불가능한 일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에게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생업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여러분의 꿈과 비전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이 믿음과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는 이들이 은혜의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는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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