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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뼈, 하나님의 큰 군대”

<에스겔 37:1~14>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8) –

 

 

 

19세기 말 미국의 뉴욕과 브로드웨이 거리 사진을 보고 계신데, 120~130년 전 모습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건물들이 크고 거리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19세기 구한말 우리 한국의 모습은 차이가 큽니다. 남대문 성벽에 올라가 있는 작은 아이들이 보이고, 빼곡하게 줄지어있는 초가집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머리와 얼굴과 옷이 보기에도 많이 지저분해 보입니다. 어른들이라고해서 크게 다르지 않구요.

 

 

구한말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님들이 남긴 기록들이 있는데 캐나다의 의료선교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은 “서울은 내가 본 도시 중 가장 더럽고 보잘 것 없다. 거리의 더러움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의료 선교사인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은 “사람들이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숨을 쉬며 지나가기가 무척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거리마다 오물과 쓰레기로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영국출신의 미국 선교사인 ‘조지 길모어(George W. Gilmore, 1857~)’도 “세계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지구상에서 이 정도로 더러운 나라는 처음이다.”라고 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은 이미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런 문명에 살던 분들이 선교하겠다고 조선 땅에 왔지만 그 조선의 미래가 막막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되고 깨끗하고 편리한 한국에서 살던 분들이 요즘 필리핀에 오면 느끼는 것하고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라가 앞으로 발전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미국 감리회 선교사인 ‘아펜셀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선교사님은 부활절에 제물포항으로 입국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무덤의 빗장을 산산이 부수고 부활한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1884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미국에서 파송 받은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막상 조선 땅에 도착해보니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기도문에는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보기에도 우리 조선은 정말 희망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들의 기도와 믿음과 같이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어 영적인 면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오늘날의 이 축복 속에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살라

오늘 본문에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임한 특별한 환상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에스겔 선지자를 이끌어 어떤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그 골짜기에는 뼈가 가득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골짜기를 두루 둘러보게 하셨는데, 그 골짜기에는 뼈가 심히 많았고, 사람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그 뼈들의 상태는 아주 말라있는 상태였습니다.

 

3절을 보시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는데, 에스겔은 그 대답을 주님께 돌립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 ‘인자야(Son of man : 사람의 아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보고, 아무리 가능성을 타진 해봐도 이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시니 에스겔 선지자 입장에서는 난처한 겁니다. 어차피 안 될 걸 왜 물어보시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겁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말 못하게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 아들은 어릴적부터 종종 심한 발작증세가 나타났는데, 땅에 꼬꾸라져 뒹굴며,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그러다 보니 자기 혀를 깨물어 피를 흘리기도 하고,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는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겁니다. 그 마음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갔으나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 계신 중이었고, 그 제자들이 있어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쳐 달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시자

 

그 아이의 아버지는 마가복음 9:22절(쉬운성경)에서

“할 수만 있다면,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9:23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과 내 계산과 내 판단으로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지만, 계산이 안 나오는 일과 상황에 대해서는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들은 내가 계산한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한 말 조선 땅에 도착한 선교사님들의 마음에 조선의 미래가 보였겠습니까? 얼마나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조선 사람들의 의식은 도저히 깨어날 거 같지 않았고, 관리들은 부패해 있었고, 백성들은 무지했고, 나라는 일본제국에 반쯤 빼앗긴 상태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조금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던 나라였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마가복음 9:23절 말씀과 같은 구절들을 선교사님들은 믿었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으로 조선의 밝은 미래를 그리며 사역했던 겁니다.

 

✓ 또 마태복음 19:26절에서도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의 생각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나는 공부 머리가 없나봐. 나는 뭘 해먹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생각입니다.

천재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네 살이 되어서야 말을 시작했고, 학업 성적도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 다닌 지 3개월 만에 중퇴했습니다. 하지만 에디슨이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했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더니 근현대사 인류 문명의 큰 업적을 남겼던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정말 공부 쪽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꼭 공부만이 여러분의 살 길은 아닙니다. 어떤 학생들은 일찌감치 기술을 익혀 4년제 대학 나온 친구보다 훨씬 돈도 더 잘 벌고, 멋지게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부에 와서 정착해 보려고 이것저것에 대한 가능성과 사업성 등을 조사해 볼 것입니다. 정착하기에 만만치 않은 여러 가지 상황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과 실패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계산만 하다 끝나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도전해 보는 겁니다. 계산만하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성공할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계속해서 도전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의 가능성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분명 죽은 지 오래되어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어보듯이 우리에게도 물어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너의 가정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 너의 인생이 다시 재기할 수 있겠느냐? 너의 자녀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겠느냐? 너의 기업이 다시 번성할 수 있겠느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능성이 아닌,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 마른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는 걸 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4절을 보시면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그 뼈들에게 귀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겁니다. 어떤 말씀 이예요?

 

5절을 보시면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죽은 지 오래 된 그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의 조국인 남유다 왕국이 당시 최초의 세계대제국을 이룬 바벨론에 의해 짓밟혀 국권을 상실한 이후에 활동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른 뼈 환상은 그런 상황 속에서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 종과 노예가 되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점점 더 강성해 가고, 유다 백성들에게 임한 이 환란의 끝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유다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겁니다. 시간이 점점 더 오래 가니 마치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전혀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유다 백성들은 그런 소망조차도 갖지 않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시간이 오래토록 지나 소망조차 갖지 못하게 된 마른 뼈와 같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어서 ‘이건 내게 아닌가보다…’하면서, 그냥 포기하게 된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그것들을 향해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해 보십시오. 그것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보십시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좀 철학적으로 들리겠지만, ‘하나님은 곧 말씀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3절을 보시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그로 말미암아’의 ‘그’가 누굽니까? 1절에서의 ‘말씀’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 말씀을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이 창조의 능력이고, 말씀은 생명입니다.

어느 방송사에서 ‘말의 위력’에 관한 실험영상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몇 가지 실험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30개의 단어카드를 나눠줬습니다. 그런데 한 그룹은 노인과 관련된 단어 카드만을 받았고, 한 그룹은 젊은이와 관련된 단어카드를 받았습니다. 실험자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노인과 관련된 단어 카드만을 받은 사람은 몸동작이 노인과 같이 느려졌고, 반면에 젊은이와 관련된 단어카드를 받은 사람들은 젊은이와 같이 걸음을 더 빨리 걷고 활기찬 행동을 했습니다.

말에 이렇게 대단한 위력이 있는 겁니다. 단어 카드 하나만을 갖고도 이렇게 사람을 느리게도 만들고, 활기차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생명의 말, 하나님의 말씀, 믿음의 말을 할 때는 어떤 일들이 나타나겠습니까?

 

잠언 18:21절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죽고 사는 것도 혀의 힘에 달렸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도 말의 힘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생명의 말을 하게 될 때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내겠습니까?

에스겔이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할 때 그 뼈들이 다시 살아나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변에 마른 뼈와 같이 소망 없는 것들을 향해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십시오. 생명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지금 상황이 나쁘고, 지금 상황이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할 지라도 그 마른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생명의 말씀, 믿음의 말을 선포하실 때 놀라운 일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성령이 살리신다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 상황이 변하지 않자 모든 소망의 끈을 놓게 됩니다. 하지만 마른 뼈와 같은 그들을 향해 에스겔이 대언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저도 세부에서 목회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처럼 그들을 향해 믿음의 말을 선포하는 겁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집사님은 깨끗한 부자가 되어서 나누어주고 베풀어 주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 잘 고쳐지지 않는 질병으로 고통 하는 이들을 향해서 ‘성도님은 곧 치료되어 이전보다 더 건강해 질 것입니다.’ / 미래가 막막하고 앞길이 막힌 이들을 향해서도 ‘우리 형제님의 새로운 길이 열린 것입니다.’ …

에스겔이 대언 했더니 그 뼈들이 살아나 극히 큰 군대가 되었던 것처럼, 저는 변함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일어나 재기해서 이 세부 땅에서 믿음의 큰 군대를 이루게 될 것을 믿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 내내 나오는 ‘생기’라는 것은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 성령을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없고 실패한 인생 가운데 부어 주셔서 그들이 살아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마른 뼈처럼 소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명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죽어가는 가정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실패한 인생을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내게서 성령의 능력이 떠나가면 나는 한 덩어리의 진흙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한 덩어리 진흙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성령이 능력이 임할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나고 회복되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살리고, 자녀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이 사회와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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