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음”

<열왕기하 5:1~14>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29)

 

 

인터넷 동영상 컨텐츠 제작업체인 셀레브(sellev)에서 만든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이어령 교수(1934~)와의 인터뷰 영상이 있습니다. 지난 3월에 제가 설교시간에 이 부분에 있는 내용 중 일부를 간단히 설명해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오늘은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3분 정도 되는 그 인터뷰 영상을 먼저 보시고 말씀을 나누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20년간 이화여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고, 한 때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한 한국의 지성 중의 지성이라 할 만한 분이십니다.

1934년 생으로 지금 8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깊고 농밀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연륜이기도 하겠지만 이 분이 지금 암투병 중이시고 또 10여 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셨는데 그 이후 이 분의 사상과 정신적인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분까지 더해지면서 더 깊고 농밀한 지혜를 깨닫게 되신 것 같습니다.

이 교수께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인간의 한계 앞에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딸 이민아 씨는 대학 때 전과목 A학점을 받으며 3년 만에 영문학과 불문학 복수전공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간 수재였습니다. 미국에서 영문학 석사를 하고, 전공을 법학으로 바꿔 변호사, 검사가 됐던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딸이 갑상선 암으로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고, 그녀의 둘째 아들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로 ADHA(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증상이 심해 딸은 매일 밤 울며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딸에게 닥치는 시련들 앞에 자신은 육신의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인간의 한계를 더욱 깊이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6년 딸 이민아 씨에게 망막이 분리돼 곧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전화를 받고, 딸이 ADHA 아들을 위해 가서 살고 있었던 하와이로 이 교수님 부부는 급히 달려갔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아끼는 사랑하는 딸에게 닥친 일들 앞에 아버지로서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딸이 가자는 대로 간 작고 초라한 하와이 원주민들의 교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성동아 인터뷰 기사(2010.5.18.)에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기적을 당신의 딸 민아에게서 거두어 가지 마십사고 기도했습니다.”

‘제게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이 있으니 민아가 앞을 보게 해주신다면,

‘그 능력을 당신께서 이루고자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다’고 믿지도 않는 낯선 하나님에게 약속을 하고 만 겁니다.

그 후에 딸은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 귀국해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망막분리 즉 영상이 맺히는 스크린이 찢어져 나갔다는 건데 그게 다시 멀쩡해졌다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리고 이 교수는 어린아이와도 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건데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그 해 7월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지금 뭔가 이루었다. 어떤 큰 성공을 거뒀다. 부유하다. 강건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하지 않으시고, 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채울 것이 있고, 그에게 해 줄 일이 있고, 그를 새롭게 할 일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할 영적 자세 중에 하나가 ‘가난한 마음’인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절박한 자에게, 간절한 자에게 갑절의 은혜가 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 고장 난 인생

오늘 본문에는 지금의 시리아 땅인 아람 왕의 한 군대장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을 보시면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군대장관이라고 하면 한 나라의 군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을 말합니다. 또 당시 아람은 이스라엘 동북쪽에서 세력을 점점 확장해 가던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역시 당시 아람에게는 꼼짝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냐면, 그는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왕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였고, 큰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그를 모든 나라 앞에서 왕 다음으로 큰 지위를 주었던 것입니다. 1절 하반절에 보니깐 그는 자신의 조국인 아람을 위기로부터 구원했던 민족의 영웅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큰 용사’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나병(문둥병, 한센병)은 감염성이 있었고, 변변한 약도 없었고,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격리, 소외되어 살아가야 했습니다. 증상이 시작되면서 신경계, 기도, 피부, 눈에 육아종(염증)이 발생하고, 통각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발가락이 잘려나가고, 귀가 떨어져 나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이 몹쓸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근현대에 와서도 정권을 뒤엎으려고 하는 쿠데타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러니 고대 사회에서는 군대장관의 지위와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정말 그는 ‘크고 존귀한 자’였던 것입니다. 부족한 게 없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소유할 수가 있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말이 있듯이 군대장관의 그 권세가 대단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서론에서 잠시 말씀드렸던 이어령 교수님에게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그 분의 따님도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 1, 2등을 다투던 수재였고, 전과목 A학점의 대학생활, 미국 유학을 가서도, 변호사도 되고, 검사도 되고… 되고 싶은 건 다 되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낼 수 있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자신도 이미 약관의 나이에 대한민국 사상계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종교는 인간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메커니즘 혹은 문화일 뿐”이라고 말하며, 기독교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하는 정말 두려울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랑스럽고 예뻤던 딸이 암으로 투병을 하고, 손주까지 ADHD 진단을 받아 딸은 일까지 그만두고 하와이로 이주해 아들을 돌보고 있던 중에 망막이 다 떨어져 나가 치료가 불가능하고 결국 시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까지 받은 상태에 이 교수님은 자신의 지식도, 명성도 고통 속에 있었던 딸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는 인간의 한계에 부딪쳤다고 합니다.

제가 심방을 다니다 보면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는 거 같습니다. 남편도 돈을 잘 벌어오고, 자신도 큰 문제가 없는데 자녀에게 문제가 있는 가정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자녀도 너무 예쁘고 착하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재정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는데 남편이 속을 썩이는 가정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가정은 가족 간에 화목이 가득한데,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시련 속에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가족도 좋고, 재정적인 부분도 좋고 다 좋은데 자신의 감정이 항상 문제가 되는 분도 계십니다.

이처럼 우린 인생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뭔가 부족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문제의 정도가 심각해 내 인생이 고장 난 인생이요,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 67절에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멈추지 않고 고속으로 달리는 차에서는 주변의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선 차에서 내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멀리 눈을 들어 보면, 고속으로 달리던 차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멈추어 세웁니다. 그리고 그 전에 못 보고, 못 느끼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나아만 장군에게 나병이 없었다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람의 군대장관으로 잔인한 전쟁기계로 평생을 살다가 그렇게 죽었을 것입니다. 나병은 그의 고장난 인생의 브레이크와 같은 장치였습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카센터를 찾게 되고, 우리 사람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을 찾게 되고, 우리 인생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의 솔루션

일전에 아람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많은 탈취물들과 포로들을 끌고 왔었는데 나아만 장군은 그 때 끌고 온 어린 소녀 하나를 자기 아내에게 몸종으로 붙여줬습니다.

 

3절을 보시면,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몸종으로 일하던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는 그의 주인이 나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에 가면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데 주인이 그 선지자 앞에 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그의 여주인에게 말해 줍니다. 아마도 어린 소녀는 엘리사 선지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에 대해서 자기가 들었던 내용을 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 듣고 나아만은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아람 왕에게 허락을 받고 금과 은과 같은 많은 사례금을 갖고 이스라엘 땅으로 갑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서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줄 것을 요청합니다.

 

7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와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오해하고 큰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리고 8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의 편지로 인해 염려와 두려움 속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아무 걱정 말라고 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본문의 주인공인 나아만 장군이 나오고, 그 장군의 주군인 아람 왕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정보를 준 어린 여종이 나오고, 이스라엘의 왕도 나오고, 엘리사 선지자도 나옵니다.

그런데 아람 왕과 나아만 장군과 이스라엘 왕은 부와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울 게 없는 위치에 있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아람 왕은 충성스런 신하를 잃을까봐, 나아만 장군은 나병에 대한 두려움, 이스라엘 왕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모든 것을 갖고 있었지만 구원에 대한 솔루션은 없었던 것입니다.

유명 연예인들 중에 ‘공황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이병헌 같은 배우는 라디오 방송에 출현했다가 갑자기 책상 밑으로 숨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약을 챙겨 다닌다고 합니다.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하고, 통증이 오기도 하고, 초조함과 심각한 불안 증세를 동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왜 연예인들에게 공황장애가 많이 발생할까요? 그들은 유명해졌고, 많은 부를 얻게 되었고, 어딜 가나 대접도 받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늘 불안한 겁니다. 그 인기가 계속될지, 방송국에서 자신을 계속 찾아 줄지, 혹 여라도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 낙오되지는 않을지… 여러 가지 심리적 불안감들이 쌓이다 보니 결국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겁니다.

아람 왕이나, 나아만 장군이나, 이스라엘의 왕이나 모두 대단한 권세와 부를 갖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은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통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비천한 여종과 엘리사 선지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많은 것을 가진 자들보다 평안함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솔루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솔루션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 예수]라는 찬양의 가사에 보면,

슬픈 마음 있는 자 몸과 영혼 병든 자

누구든지 부르시오 예수 이름 부르시오

그 이름을 믿는 자 그 이름을 부르는 자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구원 얻으리

 

어른들은 우리 자녀들, 학생들에게 ‘공부할 때가 제일 편안할 때라고 그러니 행복한 줄 알아라’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 아이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슬픔과 불안감에 떨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청년들은 취업과 진로 그리고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있고, 또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아도 자녀 부양에 대한 책임도 있고,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도 있을 수 있고, 재정적인 문제와 여러 가지 관계적인 어려움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의 문제들로 인해서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때마다 주님께 나아오시면 됩니다. 슬픈 마음이 있는 사람, 몸과 영혼이 병든 사람, 세상의 여러 가지 불안과 염려 속에 있는 사람… 주님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마다 구원하신다 하셨습니다.

 

3. 낮고 겸손한 마음

나아만 장군은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집 문에 서서 엘리사를 만나길 원한다고 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 때 선지자는 나와 보지도 않고, 엘리사의 사역을 돕는 사람 하나가 나오더니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는 말을 전하게 됩니다.

11절을 보시면,

나아만은 어디서건 그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장군이 말을 타고 가면 아람 왕 외에 모든 사람들은 땅에 엎드리거나, 머리를 숙였었습니다. 장군의 말 한 마디면 천 명의 군사, 만 명의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란 자가 나와 보지도 않고 일하는 사람 하나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면 병이 나을 거라는 성의도 없고, 무책임하기도 한 그런 말만 전해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아만의 생각에는 선지자라면 급히 뛰어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장군의 환부위에 손을 흔들면서 치유기도를 해 줄 것으로 예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과 다른 선지자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은혜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70세가 될 때까지도 무신론자로 살아왔던 것은 나름대로 이성적이고, 공부도 많이 했고, 책도 많이 봐서 ‘내 생각에는 신은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 시련과 고난이 왔고, 그로 인해 그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가난해졌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그 때부터 은혜가 그 분의 마음에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신 것 자체가 낮고 겸손한 마음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까지 나오셨다면 이제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으시기만 하면 내 삶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나서 아람으로 되돌아가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설득합니다. ‘장군님, 선지자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뭘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강에서 목욕 일곱 번만 하면 병이 낫는다는데 이걸 못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14절을 보시면,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나아만이 하나님 앞에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변화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그 전에는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자기의 생각만을 믿고 의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걸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겁니다. 그대로 순종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의 나병이 깨끗하게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9)’에 관한 얘기를 제가 가끔 해드리고 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겸손하지 않고 서는 완전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낮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가 온전해지지만,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늘 불완전할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겸손해야 그는 늘 새로운 것들로 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 ‘다 이루었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 ‘다 안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 ‘다 가졌다’라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향해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나아가십시오. 그의 인생은 날마다 새롭고,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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