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시험을 이기는 기도”

<마태복음 26:36~46> 

 

 

요즘 우리나라 청년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교 서론에서 자주 했었는데, 역사 이래 지금까지 최고의 부자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Sr., 1839~1937)’역시 일찍이 사업을 시작했던 청년 사업가였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록펠러는 클리블랜드에서 농산물 상점에서 일하다가 자신이 직접 농산물 중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859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당시 스무살의 록펠러는 그 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스물네 살에 석유 사업에 손을 대게 됩니다. 그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록펠러는 광산업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는데, 친구의 말을 믿고 광산 하나를 인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석탄은 나오지 않고 쓸모없는 돌덩어리만 계속 나오는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20대 청년 사업가였던 록펠러의 재정은 바닥을 치게 되고, 인부들의 일당도 계속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난 인부들은 월급을 달라 요구하며 젊은 사장 록펠러를 탄광에 밀어 넣고 가둬버립니다. 돈을 줄 때까지 안 꺼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밖에 있는 인부들에게 울면서 하소연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 괴로워 탄광 속에 갇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믿었던 하나님 앞에 캄캄하고 쾌쾌한 폐광에 엎드려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동안 잘못 살아온 삶을 회개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하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쓰러져 있는 자신에게 한 커다란 손이 다가오더니 그를 붙들고 일으켜 세우더랍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다가 꿈에서 깨보니 자신은 여전히 차가운 폐광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일으켜 세우던 커다란 손의 기운을 계속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런 음성이 선명하게 들리더랍니다.

 

“네가 갈 곳에 이미 이르렀느니라.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네가 있는 곳을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그 전에 느낄 수 없었던 큰 확신에 찬 목소리로 탄광 밖에 있었던 화난 인부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록펠러의 진심을 믿어 준 몇몇의 광부가 록펠러를 다시 한 번 믿어주기로 하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그 탄광에서는 석탄이 아닌, 석유가 분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했고, 그 이후 록펠러는 석유사업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독일에서 가장 존경 받는 군 지휘자 중에 하나인 ‘헬무트 몰트케(Helmuth Karl B. G. von Moltke, 1800~1891)’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 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청년이 실패했을 때,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진정한 성공과 실패로 나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왜 위기가 없겠습니까? 한 두 해를 사는 것도 아닌, 수십 년 또는 100년 가까이를 살아야 하는 인생 속에 왜 위기와 고난과 시련과 시험이 없겠습니까?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시련과 시험이 없겠습니까?

 

야고보서 1:12절 말씀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과 같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는 시험을 잘 견디어 내는 사람에게는 그 시험이 변하여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영적 무기를 주셨고, 그 모든 시험, 어떤 종류의 시험이라 할지라도 기도가 그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가 시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1. 기도가 깨어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겟세마네의 기도’라고 알려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 전날 저녁에 예수님은 밤을 새며 통곡하며 부르짖으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당장 내일 아침이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일이 앞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는 엄청난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이 앞에 있거나, 시험이 왔을 때 깨어있지 않으면 그 시험의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깨어 있으면 피할 수 있는 겁니다. 깨어 있으면 눈치를 채고 대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것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깨어 있어야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라는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게 됩니다.

 

38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지금 예수님은 내일 아침이 되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직감하고 계셨던 예수님은 그 엄청난 시련과 시험 앞에 깨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마음이 지금 얼마나 죽을 지경인지, 앞으로 닥칠 이 시험이 얼마나 괴로운 것일지를 암시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하시고, 예수님은 조금 더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시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그 상황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기도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40절 보시면,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1시간 뒤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그들을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41절을 보시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들이 깨어 있는 것은 곧 기도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17절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만큼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자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절을 보시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먹이를 찾아 두루 다니는 사자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가젤이나 얼룩말 같은 초식동물을 사냥하러 갈 때, 멀리에서부터 ‘나는 사자다!’하면서 소란 떨며 사냥하러 가겠습니까? 수풀 사이에 조용히 숨어 기다리며 살금살금 다가가서 한 눈 팔고 있거나, 혹시라도 졸고 있는 초식동물이 있으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적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한 눈을 팔거나, 혹여 라도 영적으로 졸고 있거나 자고 있으면 삼킬 자를 두루 찾던 마귀의 타겟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잘 나오고, 신앙생활 잘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시험거리가 생기는 겁니다. 함께 잘 지내던 사람하고 관계가 안 좋아질 수도 있고, 그렇게 좋아하던 교회나 목회자에 대해서 자꾸 실망스럽거나 섭섭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 겁니다. 또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과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주님을 점점 멀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은 그 때 영적인 위기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하라는 싸인을 주시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새 힘을 얻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련과 시험을 이겨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 시험에 빠져가는 겁니다. 마음이 답답해지고, 우울해지고, 낙심이 되고, 세부도 싫고, 교회도 싫고, 그냥 사는 것도 싫고, 애들도 싫고,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망스럽고 밉기까지 합니다. 그리곤 이 땅을 떠날 생각부터 계획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가정에서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 교회 공동체에 기도의 사람들이 깨어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우리를 향한 사명도 감당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로 깨어 있으시길 바랍니다.

 

2. 기도는 주의 뜻을 이룬다

여러분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고 생각하고,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고, 기도하지 않고 행동하면… 그건 내 뜻대로 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뜻이 아닌 주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39절 말씀을 보시면,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하나님의 신성을 갖고 계셨던 성자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참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욕구와 의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배가 고플 수 있고, 피곤할 수 있고, 화가 날 수도 있고, 힘든 일은 안 하고 싶은 감정까지 사람하고 똑같이 느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 ‘어차피 난 죽어도 살 건데, 난 상관없어’하면서 십자가를 향해 나가셨던 게 아닙니다. 인간과 거의 똑같은 고통과 두려움과 절망적인 마음이 죽음 앞에서 동일하게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22장 44절에 보면, 누가복음의 저자였던 의사인 누가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의 관점으로 볼 때, 그 밤에 예수님께서 감당해야 할 그 고통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그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땀이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9절에 보면, 참사람이었던 예수님께서도 어떻게든 그 십자가만은 피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가 주의 뜻을 이루고, 기도하는 사람이 주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거의 대부분의 시험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고집하다가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아담과 하와에게 고통이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선악과에 손을 대면서부터 아니었습니까?

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 불화가 시작되었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들을 주실 것을 기다려야 했는데, 아들을 낳겠다는 마음에 섣불리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이면서부터 도리어 가정에 심각한 불화가 시작된 거 아니겠습니까?

왜 성군 다윗의 아들들 사이에 칼이 떠나지 않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까? 다윗이 평안하고 번성했을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범죄로 인해 그 죄의 댓가를 처절하리만큼 치러야 했던 거 아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유다 왕국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그들이 주의 법을 버리고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행했기 때문 아닙니까?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 원어에서는 ‘죄’라는 말을 ‘ἁμαρτία(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는데, 그 과녁에서, 그 뜻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게 된 것인데,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것은 시험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우리 마음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는 모든 시험들이 시작된 것입니다.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가 주의 뜻을 분별하게 되고, 주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런 삶이 시험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도가 큰 역사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같은 기도를 드리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중간 중간 오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 시험을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려운 시험 앞에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분들은 어떻게 그 시험을 이겨내시려 하십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42절을 보시면,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기도를 세 번을 드리셨다고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새 한 숨도 안 주무시고 기도하셨던 예수님께서는 그 밤에 배신자 가룟 유다의 손에 팔려서 결국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고, 6시간 뒤 숨지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사건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위대한 구원사역을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때로 우리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시련과 시험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그 시험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내 의지와 내 마음으로도 도저히 견뎌내기 어렵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투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때까지 전쟁이란 걸 해 본 적도 없었고, 전쟁을 위한 변변한 무기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침략과 약탈을 일삼던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겁니다. 꼼짝없이 이스라엘은 아말렉 군대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산 위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그 능력이 모세의 손에 흐르게 하셨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는 한 그 하나님의 능력은 계속 흘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진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높이 든 기도의 손끝을 타고, 여러분의 기도가 흘러가고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시험도 이기고, 시련도 극복하고, 황무지에게 기적을 일구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내년 3월 첫 주 7주년 감사예배를 드릴 때까지 더욱 기도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부터 ‘12시간 파수꾼 기도회’가 두 주간 진행될 것이고, 그 이후부터는 7주년 전까지 ‘120일 기도의 파수꾼’을 통해, 120일 동안 매일 이 성전에서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올려 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들어 올린 기도의 손끝으로 놀라운 능력이 흐르게 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 기업을 위한 기도, 이 도시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에 놀라운 기적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로 모든 시험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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