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신앙생활 어떻게 할 것인가?”

<마태복음 4:23> 

 

 

 

우리 대한민국의 서울은 인구수로 보자면 세계에서 열여덟 번째로 큰 대도시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5천2백만 명 중에서 약 1/5에 가까운 천만 명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아무 죄 없는 일천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1939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정권의 수장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유태인 600만 명을 포함해 장애인, 집시와 같은 사람들 약 1천만 명 이상을 학살했습니다.

히틀러가 그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것은 당시 독일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반유대주의 정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국으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독일 인구의 3퍼센트에 불과한 유태인들은 독일 경제의 40퍼센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을 자신들의 삶은 점점 더 비참해지고 있었는데 유태인들은 독일의 경제를 지배하며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독일인들의 유태인들의 향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인종주의 이론을 내세워 우수한 독일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면 열등한 유대인과 피가 섞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유태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더 나아가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하는 유태인 대학살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한 인간의 잘못된 사상 하나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그런 비상식적이고, 비뚤어진 가치로 인해 대한민국의 서울 인구 정도 되는 엄청난 인구를 끔찍하게 학살했던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인요한 교수(John Linton, 1959~)’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의사 중 한 분이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요한 교수의 진외조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는 1895년 미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선교활동을 펼쳤고, 인교수의 아버지인 윌리암 린튼(William Linton)은 유진벨 선교사의 사위였습니다. 그래서 인교수의 친가와 외가라 할 수 있는 린튼 가문과 벨 가문의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한남대, 대전대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기관과 병원들을 세워 고통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자손 4대에 걸쳐 여전히 돕고 있습니다.

인 교수는 전라도 순천에서 나고 자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롭게 쓰는 미국인입니다. 자신은 어릴 적 아랫목에 앉아서 집안 어르신들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었는데, 한 TV 프로에 나와서 그 핵심을 한 문장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사람이 그러면 못써”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이 앞뒤구분 못하는 짐승과 가축과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 한 마디 안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도덕률이 다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4대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상식적이고 비뚤어진 사상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끔찍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건강하고 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을 통해 죽어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역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신앙과 종교는 또 다른 무서운 재앙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르고 건강한 신앙생활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한 가정이 살고,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말씀 배워 가르치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로 하셨던 세 가지 사역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은 3년 반이라는 공생애 기간 동안에 세 가지 사역에 집중하셨는데,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셨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사역을 하셨고, 병들어 고통 중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 주시는 사역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인 ‘교육(Teaching)’과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전도(Preaching)’ 그리고 병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고치시는 ‘치유(Healing)’ 사역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이 세 가지 사역에 집중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것이고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들이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사역이기도 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 역시 신앙생활에 있어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중요하게 여기고, 이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배운 것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르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결코 믿음이란 것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만 믿음이 생기고, 또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몇 년 다녔다’, ‘모태신앙이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 … 와 같은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왔다갔다 한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다녔느냐? 어떻게 신앙생활 했느냐?’하는 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냥 부모님 따라서, 아내 따라서, 친구 따라서… 설렁설렁 10년을 다녀보십시오. 절대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성경 한번 제대로 정독해 보지도 않고, 성경공부에 한 번 참여해 보지도 않고, 신앙서적 종류는 읽어본 적도 없고, 새벽기도회든 금요기도회든 무슨 부흥회든…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이 교회를 다닌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10년을 다녀도 믿음이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늘 영적인 변두리에만 머무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여러분은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군중과 무리가 되지 말고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우리교회 어린이가 그 때 그 말을 듣고는 ‘신앙생활과 학교생활과 무엇이든 군중과 무리가 되지 말고 주인공이 되자’라는 결단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랑 같이 예배 올 때면 일부러 맨 앞에 나와 앉는다는 겁니다. 어린 애가 이런 적극적인 자세로 산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어제는 그 엄마 집사님하고 우연히 연락할 일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꽤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인데 이번에 시험 성적표를 받았는데 성적이 꽤 높고, 상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부에 온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훈련을 하면, 여러분이 공부를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무엇을 하든 변두리 인생이 아니라 요즘 말로 ‘인싸(insider)’ 또는 ‘핵인싸’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세가 몸에 배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을 보시면,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심한 디모데는 바울 사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듣고 배운 바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6절, 7절 말씀을 보시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지난 주간에 유대인들이 어떻게 해서 세계 모든 민족과 종족 중에 가장 탁월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쉐마 교육법’이란 것이었습니다. 그 교육법이 나오게 된 신명기 6장 6절과 7절 말씀을 보면, 내가 배우게 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는데 집에 앉아있을 때에든지, 길을 걸어갈 때에든지, 잠자리에 누울 때에든지, 아침에 일어날 때에든지… 언제든지 이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울 때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내가 배운 바를 가르칠 때 나는 또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배우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면 나의 영적 성장판은 멈춰버린 것입니다. 저를 따라하십시오.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하자!”

 

2. 본이 되어 전도하라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강조하셨던 사역은 어디를 가시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 말씀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놓으시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단순합니까? 세상의 천만금을 주고도 구원을 받을 수는 없지만, 누구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0장 14절 말씀을 보시면,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누구든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이 단순하고도 쉬운 구원의 방법이 있는데, 믿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으며, 들어본 적이 없는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으며, 누구도 그에게 그 예수의 이름을 말해준 적이 없었는데 전도해 준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 이름을 들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주어야만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들을 수 있고, 그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부르게 되며,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은 주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복음을 전하셨던 것을 본받아 우리도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을 보시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의 때는 없습니다. 어제 우리 청소년부 토요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나누고 2부 순서로 찬양과 악기와 영상과 미디어 및 방송 파트로 나눠서 팀별로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본당과 비전홀과 소그룹실 등등 여기저기 흩어져서 우리 학생들이 웃고 깔깔거리며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못 보던 여학생 친구 두 명이 뒤늦게 교회에 온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을 걸었더니, 그 중 한 친구는 우리 학생을 가리키며 ‘쟤가 3월 1일 날 저를 전도대상자로 불렀어요’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옆에 있었던 다른 여학생에게 물었더니 ‘저는 아직 아무에게도 초청받지 않았어요’라고 하는 겁니다. 제 발로 교회까지 온 친구데 아직 아무도 그 친구를 초청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직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전도해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초청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마음으로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십시오. 여러분이 목사님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든지 어려운 말들 써가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교회에 초청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교회에 와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이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이라도 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말로 전도를 하지만 그 전에 우리의 삶이 먼저 크리스천으로서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온전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몸으로 전도하고, 삶으로 전도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부족한 게 많고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불신자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십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정직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화평하고, 성결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씩 하다보면 우리는 조금씩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본이 되어 전도하십시다.

 

3. 치유 받고 치유하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중요한 세 번째 사역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병든 영혼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을 보시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대표적인 예언이기도 한 이 구절에서 메시야의 중요한 사역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포로된 자, 갇힌 자’는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표적인 메시야 예연 장인 이사야서 53장 4절에 의하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고’는 질병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슬픔’은 우리의 내면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과 아픔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적인 모든 문제들, 정신적인 문제들, 상처들,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 무기력과 비관적인 마음들까지도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종종 제 얘기를 드리지만,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제 스토리를 듣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저도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멋졌고, 남달랐고, 탁월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있는 여러분들보다 훨씬 못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자신감도 없고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내면을 갖고 있었던 성장기를 보냈었습니다. 대여섯 살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리 가정은 깨졌고, 저는 고아처럼 버려졌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싸 가 본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늘 배를 곪았고 학교 수돗물에 입을 대고 배를 채워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학교 숙제를 한 번도 해 간적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성적은 엉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저는 늘 못나고 바보 같아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그리고 친구 하나 없는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게 학교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성장기를 보내면서 제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갔고, 저는 비관적이고, 충동적이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건강하지 않은 좀 비뚤어진 인격이 되어 갔습니다. 저는 그렇게 마음이 병든 아이였습니다. 저는 부모님한테 버림받았고, 친구들한테 버림받았고, 사회로부터도 버림받았던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 같은 사람에게 주목하지 않았고, 관심 가져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망 없는 성장기를 보내던 열아홉 살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저를 만나주셨고, 저의 상한 마음을 고쳐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상처, 사회로부터 받은 모든 상처들이 하나씩 하나씩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지금 목회자가 되어서 누군가의 인생을 돕는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심하게 병들어 있었던 제 인생을 고치셔서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치유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고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상처가 있다면 그것 역시 주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그 일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의 영과 혼과 육체를 고쳐 주실 것입니다.

 

시편 147편 2절과 3절에서

“여호와께서…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실 것입니다. 그렇게 치유 받은 분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실 것이고, 그들은 아파하고 있는 누군가를 치유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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