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21~28>
[Audio말씀]
스펙토리(Spectory)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실 이 단어는 영어 사전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국식영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스펙(Spec)’이란 말이 생겼는데,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특별한 이력을 스펙이라 합니다. 요즘 워낙 학력들이 좋고 하다 보니 비슷한 학교를 나왔으면 거기에다가 토플이나 토익 같은 영어 점수, 어학연수, 봉사활동, 수상 경력이나 인턴 경험… 같은 것들이 있을 때 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초중고 시절부터 여기저기 뛰어 다니면서 자격증도 따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스펙을 쌓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 학생들에게 큰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스펙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도나도 학력도 좋고, 스펙도 다 좋은데 그런 친구들 채용해서 함께 일해 보니깐 그게 다가 아니더라는 겁니다. 스펙도 필요하지만 먼저는 사람이 괜찮아야 조직 안에서 잘 융화하고, 일도 융통성 있게 하고, 위기 대처 능력도 뛰어나고,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것도 좋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펙에다가 그의 인생 ‘스토리(story)’가 있느냐? 하는 것을 면접관들이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스펙과 스토리를 합해 ‘스펙토리(Spectory)’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다 스토리는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재밌는 스토리가 있는가 하면 별로 흥미롭지 않은 스토리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스토리는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역경 속에서도 그가 그 모든 난관을 뚫고 승리하고 성공했다는 그런 히스토리가 재밌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이순신(1545~1998)장군과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1809~1865)대통령은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분들일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속에서 우리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낸 위대한 장군입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우리나라의 정치1번가이면서, 대통령의 청와대가 있는 광화문 광장 맨 앞에 오십여 년 동안 굳게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종식하고 노예를 해방함으로 오늘 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평가 받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분들의 그런 놀라운 업적 이전에 이들의 인생 히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언제나 잘 나갔던 장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진족을 토벌할 때에 모든 보직에서 해임되어 일반병으로 백의종군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동료의 모함을 받아 투옥되어 사형까지 당할 뻔했었지만, 재신임을 얻어 소수의 조선수군으로 큰 승리를 이뤘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분으로 독학으로 변호사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생 속에 순탄함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치에 뛰어 들어 수많은 실패와 실패를 거듭하다가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까지 올라 분열 위기의 미국의 남북전쟁을 종식하고, 노예를 해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위인들의 인생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그들은 분명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 시련과 고난의 날들을 새로운 역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전 세계가 공포 속에 있습니다. 전 세계의 경제가 마비되고, 위기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나라들은 이 시련의 때를 새로운 역사로 만들어갈 나라들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어렵고, 성도들도 모두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시련의 날을 새로운 역사로, 인생의 전환점으로, 새로운 변곡점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1. 절박함은 역사를 바꾼다
예수님께서 유대 땅을 떠나 지중해변에 위치한 페니키아 즉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평행본문인 마가복음 7장 24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 유대 땅을 떠나서 이방의 땅으로 가셨고 또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라고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신 이유는 사역에 지친 제자들과 잠시 휴식을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땅에 은밀하게 들어가셔서 한 곳에 숙소를 잡아 쉬고 계셨었는데, 그 소문이 이방의 땅 두로 지방에도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시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가복음에 보면 이 여인은 헬라인으로서 수로보니게 족속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말하며, 사랑하는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시기를 간구하며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23절을 보시면,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 의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 쫓으셨던 분이 이 여인에게는 너무나도 싸늘하신 것입니다. 그 여인이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지르며 부르짖을지라도 예수님께서 어떤 반응도 없으시자 제자들이 ‘예수님, 우리가 여기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니 저 이방 여인을 어서 보내소서.’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왔노라.’라고 말하고 있는 중에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와 엎드려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가 나옵니다.
26절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러자 27절에서 여인은 예수님께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러분은 이 여인에게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저는 ‘절박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귀신들려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사랑하는 딸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깝고 괴로웠겠습니까? 귀신들린 딸은 원래 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어떤 악한 영이 사랑하는 딸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절박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번에 신종코로나19 사태 때 이단의 정체가 폭로된 신천지교회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한 번 빠지면 가족을 버리고, 집도 가출하고, 이혼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부모님들은 신천지에 빠져 가출한 딸을 찾으려 5년, 7년 동안이나 계속 그 교회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이번에 방송을 통해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딸을 빼앗기고, 아들을 빼앗기고, 아내를 빼앗긴 가족들의 절박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절박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향해 ‘개들’이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여인의 자존심을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거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절박함’이었던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 땅에 이 여인에게만 시련과 고난이 있었겠습니까? 또 다른 시련과 고난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처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의 절박함의 크기가 더 컸던 것입니다. 절박하니깐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더라도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개그맨 유재석은 세월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국민MC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일들이 다 잘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팬미팅 자리에서 소감을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자신에게도 일거리가 전혀 없고, 자신이 실패자처럼 느껴졌었던 7년간의 무명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그는 그 무명시절을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참 많이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 전에, 방송이 너무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어긋나고 그랬을 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단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간절하고 절박하게 매달렸던 7년간의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절박함이 그의 인생의 역사를 바꾸었던 것입니다.
‘기도의 선지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E.M.바운즈(E.M.Bounds, 1835~1913)목사님에 대해 지난주에 말씀 드렸었는데, 이 분께서 기도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연약함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득 채워준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할 지라도 기도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의 인생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어떤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역사는 바뀌는 것입니다.
2. 믿음의 크기만큼 이룬다
여러분 앞에 있는 어떤 시련과 고난의 크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련과 고난의 크기보다 여러분의 절박함의 크기가 더 크면 그 시련과 고난은 새로운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크기가 얼마큼 되는가에 따라서 그 역사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시는 장면입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말의 NIV 영어번역에서는 ‘you have great faith!’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의 상황은 처절하고 비참합니다. 이 여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여인아, 너는 이미 큰 믿음을 갖고 있구나.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사회격리기간이라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자유롭게 밖을 다닐 수 없어서 불편하지만 강제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참 복이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과 무엇을 할까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바빠서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가정 예배도 매일같이 드리고, 함께 성경도 읽고, 함께 성경쓰기도 하고, 함께 요리도 만들고, 앞마당에 나가서 간단히 운동도 하고, 이 얘기 저 얘기도 참 많이 나누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 속에 이렇게 오롯이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까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너무 감사한 기간인 거 같습니다.
어제는 함께 점심 식사를 하다가 제가 ‘언젠가 우리교회도 건축도 해야 하는데… 여기 땅 값이 너무 비싸서 쉽지 않을거 같아…’라고 하니깐, 듣고 있던 우리 딸이 하는 말이 ‘아빠, 믿음을 가져 그렇게 될 거야’ 이러는 겁니다. 순간적으로 아빠이면서 목사인 제 믿음이 너무 없는 거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이 ‘안 된다.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힘들다. 어렵다. 나는 못한다.…’ 이러고 있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가능하다. 나는 승리할 것이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말하며 살면 그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8장에 보면 로마의 군대 장교인 백부장이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병들어 괴로워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예수님께 오셔서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집에 가신다 했는데, 백부장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먼저 그 거룩하신 분이 자신처럼 죄인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이 감당할 수 없다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만 하셔도 하인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8장 13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니 그 순간 집에 있던 하인이 즉시 낫게 된 것입니다. 어떤 믿음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수기도 해 주셔야만 나을 수 있는 믿음이기도 하고, 어떤 믿음은 뭔가 또 다른 성스러운 예식을 해 주셔야 나을 수 있는 믿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믿음은 옷자락만 잡아도 병이 낫고, 말씀만 하셔도 병이 낫고, 오늘 본문의 여인처럼 마음의 절박한 소원 그대로도 이루어지기도 하고, 마태복음 8장의 백부장과 같이 그가 갖고 있는 믿음대로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단 우리의 믿음의 크기가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들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81편 10절에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입을 작게 열면 적은 것이, 그러나 크게 열면 크게 연 만큼 더 많은 것들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크기만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두로와 시돈’은 역사에서는 ‘페니키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로와 시돈은 오늘 날의 ‘레바논’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나라 오늘 날의 레바논은 중동지역에 위치해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중동에 11개 나라가 있는데 대부분의 나라의 국교가 이슬람입니다. 그런데 레바논만큼은 다종교국가입니다.
레바논은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번성해 왔는데, 이슬람의 공격적 선교로 인해 중동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슬람화 되었을 때에도 레바논은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지금은 그 비율이 좀 떨어졌지만 1943년 레바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될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 비율이 59%에 이르렀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 레바논의 정치를 보면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데, 기독교와 이슬람에게 국회의원 수를 각각 64명씩 할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기독교계에서 뽑았습니다. 레바논은 아랍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슬람화 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수로보니게 여인이 살던 그 나라인 것입니다. 귀신들린 딸아이를 둔 절박한 한 여인의 그 믿음은 그 후손들에게 믿음의 거룩한 유산으로 남아 오늘날 레바논의 역사를 바꿔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은 레바논을 가리켜 “가시 속에 핀 장미”의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랍지역을 집중적으로 선교하고 있는 GAP Movement라는 선교단체에서는 레바논을 “아랍의 천국열쇠”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을 통해 아랍의 복음화의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귀신들린 딸을 둔 절박한 한 여인의 믿음이 2천 년이 지난 오늘의 역사를 바꿔놓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련의 날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인생 역사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과 그의 나라와 민족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절박함을 이길 것은 없습니다. 절박함은 역사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역사의 변혁은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