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잊으면 안 되는 것”

<신명기 8:11~20> 
– 2020 맥추감사주일 –

 

 

[Audio 말씀]

 

여러분은 매년 3월 첫째 주가 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너무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3월 첫째 주일은 우리교회 설립 기념일입니다. 그래서 매년 3월 첫째 주일에는 항상 우리교회 설립기념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번 주에 있는 7월 10일에는 뭐가 떠오르십니까? 여러분에게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하실 겁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특별한 날이 아니시겠지만 저에게는 결혼 27주년 기념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기념일을 지키는 것은 ‘그 때를 기억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의 그 마음과 열정과 사랑과 꿈과 비전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기념일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지켜야 하는 ‘구약의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정월 14일에 있는 ‘유월절’과 그 뒤 50일째 되는 날 ‘맥추절(3.6)’이 있고, 7월15일에는 ‘장막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날짜들은 지금 세계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태양력과는 다릅니다. 이 날짜들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유월절을 신약시대에는 우리가 부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유월절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노예들을 풀어주지 않으려고 했던 강퍅한 바로 왕과 애굽 땅에 모든 장자들이 하루 밤 사이에 진멸되는 재앙이 내렸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가정 당 양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그 양의 고기를 먹고 잠을 잡니다. 그 밤에 그 양의 피를 바르고 그 양의 고기를 먹은 가정에는 그 재앙이 넘어갔고 그래서 이것을 ‘넘어간다’는 뜻의 유월절(Passover)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월절이 있었던 달은 이스라엘의 정월이 된 것입니다.

그 유월절 양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념하는 성찬식은 예수님의 피를 포도주로, 예수님의 육신을 빵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 보혈과 십자가의 희생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의 벌과 재앙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가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 금요일 해가 지기 전이셨습니다. 유월절의 진정한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부활하셨기에, 그 유월절의 완성은 부활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부활절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이후 7일을 7번을 하면 7×7=49일 다음 날인 50일째 되는 날을 ‘맥추절’이라고 하는데, 보리와 밀의 첫 추수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1년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50일째 된다고 해서 칠칠절 혹은 오순절이라는 말로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보내시다가 승천하시고, 남겨진 제자들은 약 열흘 동안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오순절(칠칠절, 맥추절)날이 이를 때에 성령의 강림이 나타나고, 3천 명이 회개하며 최초의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때문에 신약에서의 맥추절은 수많은 사람이 구원 받으면서 탄생한 교회 즉 영적 첫추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막절(수장절 7.15)’은 1년의 추수를 마치고 곡물을 저장한 뒤에 감사축제를 올리는 오늘 날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향해 ‘추수꾼’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이것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고 구원 받을 모든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는 ‘유월절’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은 ‘구원과 감사’입니다.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2020년의 상반기를 마감하고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초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그 어떤 해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부에서 3월 28일부터 시작된 ECQ(지역사회봉쇄)는 4개월째 지속되고 있고, 언제 일상의 삶이 회복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조기유학을 왔던 가정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2월, 3월부터 철수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사업장을 갖고 있는 분들도 계속해서 사업장 정리하고 철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학교 캠퍼스로 돌아가길 원하는 우리 자녀들도 언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2020년의 상반기 대부분을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이 상반기 추수감사절인 맥추절을 맞아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욥기 1장 21절에서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감사의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감사할 것이 있어 감사하는 것도 귀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계획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풍요가 독이 될 수 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40년 동안 그들의 지도자로 있었던 모세가 요단강 건너편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2절부터 13절 말씀을 보시면,
(12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절)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아무것도 없이 살았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바라고 바라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분명 광야와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풍요로움이 그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단순한 메뉴로 40년을 살았다면, 가나안 땅에는 각종 곡식과 과일과 채소와 육류 등 다양한 음식으로 배부르게 되고, 광야는 40년 동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텐트를 치고 생활했는데, 이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할 아늑한 집도 짓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밭과 들에 나가 열심히 일하다 보면 가축도 늘어나고, 돈도 점점 더 불어나는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고대하고 꿈꾸던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보다 더 나은 풍요로운 삶을 소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일 것입니다. 누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질 삶을 소망하시겠습니까? 누구나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안락하고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기다리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3절 하반절에서 14절 상반절을 보시면,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소유가 많아지고 풍요로워질 때, 그들의 마음에 교만이 싹터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만이겠습니까?

 

17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사람이 실패하고 갖고 있던 것들을 다 잃게 되면 마음도 낮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도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니다. 그 동안 갖고 있었던 오만함과 교만함과 이기적인 마음들까지도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께서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은혜를 주신다면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좋은 일 하며 살겠다고, 믿음 생활도 열심히 하겠다고… 그렇게 결단하고 서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실패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높여주시고 승리와 영광을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변합니다. 일이 잘 안되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인생의 실패를 깊이 맛볼 때에는 사람이 겸손해 집니다. 하지만 일이 잘 된다 싶으면 어느새 자신이 잘나서, 능력이 뛰어나서, 자기 힘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교만해 지는 게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 교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에게는 회복과 축복과 승리와 성공과 부와 명예와 영광과 풍요가 절대 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자리에 올라가고, 원하던 것을 쥐게 되었는데, 그 풍요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스포츠 채널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과의 예전 인터뷰 영상을 올렸습니다. 기자가 손 감독에게 ‘손흥민 선수는 이제 월드클래스라고 해도 누구하나 토를 달 사람이 없을 거 같다…’라고 말을 꺼냈는데, 손 감독이 “그런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라고 기자의 말을 끊으면서,

“(흥민이는) 절대 월드 클래스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손흥민 선수에게는 ‘이것은 젊은 시절 하늘이 너한테 주신 기적 같은 기회이기 때문에 늘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해준다고 합니다.

손웅정 감독의 이런 정신 때문에 오늘 날 손흥민 선수가 오래토록 사랑받는 세계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풍요가 독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음과 겸손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는 그 풍요는 진정한 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부터 16절까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의 노예였던 너희를 출애굽 시키셨고, 광야에서 40년간 너희를 보호하시고, 먹이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함께 40년간 광야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씨 뿌릴 경작지도 없고, 한 낯의 뜨거운 태양을 피할 그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광야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셨습니다. 4일도 아닌, 4년도 아닌, 40년간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돌봄과 공급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요즘 세부에 살고 있는 분들은 4개월째 ECQ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 가정 당 1장 혹은 2~3 가정 당 1장 꼴로 지급되는 통행증이 없이는 외출을 할 수가 없고, 그것도 월·수·금, 화·목·토 요일제로 3시간 이내에 필수적인 필요가 있을 때만 잠시 외출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주일날도 차를 끌고 교회조차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도 갈 수 없고, 우리 성도들도 여기서 뭘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거나,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16절을 보시면,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들은 씨를 뿌리거나 농사를 지을 경작지 하나 없는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매일같이 내리는 만나를 먹으며 4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동물원에서 곰이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어미 곰에게서 젖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새끼 곰이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육사가 새끼 곰을 데려다가 매일 젖을 먹이며 정성껏 돌봤습니다. 그랬더니 새끼 곰은 그 사육사가 자기 어미인 줄 아는 겁니다. 맨날 사육사만 따라 다니고, 놀아 달라 하고, 밥 달라고 하는 겁니다. 사육사가 어미 곰을 보면 좀 달라질까 하여 어미가 있는 곳에 데리고 가 봐도 어미 곰과 새끼 곰이 데면데면 한 겁니다.

광야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심을 경험할 수 있는 영적훈련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광야가 아니면 430년 동안 애굽의 문화와 우상 속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찌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살 수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 의지할 존재가 없는 형편에 처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날그날 일용할 양식이 공급되는 겁니다. 모아 둔 돈 하나 없는 상황에서 오늘까지 지출해야 할 비용이 있었는데 그 돈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듯이, 반석에서 물이 터지듯이 그 필요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도 그런 인생의 광야를 경험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광야가 인생의 그 어떤 때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 중 한 분도 오랫동안 주님을 떠나 세상 사람처럼 그렇게 사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에 나와 다시 신앙을 회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회사가 망하더니 1년 내내 집에 돈 한 푼 갖다 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디 불러 주는데도 없고,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는 곳도 없고 또 이제는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니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집사님은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매일 교회 나와서 기도하는 것뿐이었고, 교회에 할 일이 있어 내가 부르면 교회 나와서 봉사하고, 집에 돌아가면 신학교 갈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성경 읽는 게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이 그 때 그 인생의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은 ‘나와 가족을 먹이시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였던 것입니다. 집에 돈 한 푼 갖다 주지 않는데 냉장고가 비워진 적이 없었고, 쌀이 떨어져 밥을 굶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1년 동안 하늘의 만나를 매일같이 경험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믿음이 준비되니 오늘 본문 16절 하반절의 말씀을 경험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지금 우리는 인생의 광야를 걷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만나와 메추리기, 반석의 샘물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내 인생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언젠가 우연히 이런 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적어두었던 것입니다.

 

(내가) ‘불가능합니다’라고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하십니다(눅18:27).

 

(내가) ‘너무 지쳤어요’라고 하면,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십니다(마11:28~30).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하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요13:1,15:9).

 

‘앞이 캄캄해요’라고 하면,
‘내가 너의 발을 인도하리라’고 하십니다(잠3:5~6).

 

‘제 자신을 용서 못해요’라고 하면,
‘내가 너를 용서하리라’고 하십니다(요일1:9, 롬8:1).

 

‘너무 힘들어 헤쳐 나갈 수 없어요’라고 하면,
‘네 모든 필요를 채우마’라고 하십니다(빌4:19).

 

‘항상 걱정이 많고 좌절해요’라고 하면,
‘너의 염려를 내게 맡기라’고 하십니다(벧전5:7).

 

‘너무 외로워요’라고 하면,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리라’고 하십니다(히13:5).

 

오늘 우리는 상반기의 추수를 결산하고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반기를 돌아보면 코로나로 인해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광야에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풍요는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인생의 광야는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영적인 축복기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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