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깨진 그릇”

<시편 31:9~12>

 

[Audio 말씀]

 

실수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으로
– 깨진 그릇은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깨진 그릇에는 담을 수가 없습니다.
– 깨진 그릇은 쓸모없어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됩니다.

시편 31편을 기록한 다윗은 자신의 인생과 처지가 ‘깨진 그릇과 같다(12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울 왕의 칼을 피해 도망 다니는데 다윗은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사울 왕의 명령으로 다윗을 잡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질병으로 고통 속에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를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는 이 하나 없었고, 상황은 쉽게 변할 거 같지 않았으며, 그 시련과 고난의 날은 오래되어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의 불꽃은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그 고난을 헤쳐 나갈 텐데 이젠 건강까지도 너무 나빠져 일어날 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깨진 그릇’과 같이 자신은 그렇게 버려질 것 같은 불안함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나라를 위해, 왕을 위해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싸워왔는데 그렇게 이용만 당하다 버려진 것 같았습니다. 다윗은 상처입고 깨진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깨지고 상처 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그 깨진 날카로운 부분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 깨지고 상처 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깨진 그릇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합니다.
– 그렇게 깨지고 상처 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 깨진 그릇과 같이 깨지고 상처 난 영혼들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외면당하고, 버림받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깨지고 상처 난 부분을 어루만지셔서 치유하시고 건강한 사람들도 해내지 못하는 일에 그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여러분의 성장기가 순탄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지금 여러분은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실패하고 깨지고 부서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이 강점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1. 시련 속에서 강해져 간다

시편 150편중에 다윗의 시는 약 74편 이상입니다. 다윗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시적 재능이 탁월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통과 환난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그것을 성령의 감동에 따라 시로 기록해 놓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것에 음을 붙여 노래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은 74편의 시들 중에 상당수가 ‘탄식의 시’라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31편 역시 그 탄식시 중에 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다윗은 지금 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는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윗이 그렇게 많이 아프게 된 것은 ‘내가 근심 때문에’라는 말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고대 위대한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인 플라톤은 “육체의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의학자들 역시 대부분의 병이 스트레스와 같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이론을 지지합니다.

 

성경 잠언 18장 14절에서도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병이 심해지기도 하고, 그 병을 치유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상하고 깨져 버리면 병도 생기고, 그 병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 믿음의 마음, 소망의 생각들로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 채우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의지로 여러분의 영에게 명령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플 것도 안 아프게 되고, 설사 어떤 바이러스가 들어와 병에 걸릴 사람도 이런 마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10절 말씀도 보시면,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지금 다윗의 상황이 어떤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라는 표현으로 보아 다윗의 고난의 기간이 매우 길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어 다윗의 기력은 점점 약하여져가며, 그의 뼈가 쇠하여 가고 있다고,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이제는 병들어 일어날 기력과 힘조차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에서도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그 뿐만 아니라 다윗은 대적들로 인해서 수치와 조롱과 모욕을 당해야 했고,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배신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겪어야 할 스트레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몸까지 아플 정도였던 것입니다.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으로 온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던 다윗은 한 순간에 그 모든 영광의 지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집에서 몰래 빠져 나와 도망가야 했고, 그 사이에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모든 재산을 잃었고 전국에 수배령이 떨어진 범죄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동굴과 저 동굴로 그리고 이 광야와 저 광야로 피해 가며 생명을 부지해야 했습니다. 그 기간이 며칠도, 몇 달도 아닌 수년간 이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어디 맘 편히 쉴 곳조차 없어 신발을 벗지 못하고, 칼을 쥔 상태로 늘 여기저기에서 노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10절에서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젊은 날들이 슬픔과 탄식의 연속임을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젊은 날 그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다윗의 믿음은 더 크고 강해져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의지할 수도 없고, 그 무엇도 어떤 환경도 의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처음 한 두 달이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는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급히 짐을 싸서 한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직장을 잃고, 사업장 문을 닫고, 1년 동안 수입 없이 생계조차 막막한 상황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교회에도 ‘예배 중단, 교회 폐쇄’라는 긴급행정명령들이 떨어지고,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겪는 상황들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와 모임과 사역은 중단이 되거나, 비대면 온라인 사역이라고 하는 낯선 방법으로 최소화해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예배뿐만 아니라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또는 기도회조차도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있고, 무엇보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얼굴을 보며 교제할 수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입니다. 각 교회마다 예배 인원이 줄고, 헌금이 줄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이 중단이 되는 거 같아 염려되는 마음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백 투 예루살렘(홍성사)』라는 책에는 중국의 빌리 그레이엄이라고 불리는 ‘수 융쩌 형제’라는 분의 간증이 나옵니다.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수십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생활했던 분이 많은데, 이 분도 그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1949년 공산주의자들은 대부분의 교회 건물을 파괴했고, 그들은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빼앗아 버리면 기독교를 말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도들은 2~3명으로 이루어진 소그룹들이 비밀리에 사람들이 잠든 새벽 3시쯤에 모였다고 합니다. 성도들을 돌봐 줄 목자도, 성경도, 찬송가도 없어서 설교도 찬송도 없이 서로 격려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예배를 마치기도 했습니다.

수 형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신앙의 형식을 잃었다고 해서 약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만큼 더 순수해져서 오히려 더욱 강해졌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대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우리는 계속 운영해야 할 프로그램이나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얼굴만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 도움이 될 만한 돈 벌 기회가 없었기에 제자 삼는 것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였던 것이다!”

교회 건물도, 예배도, 목사도, 신앙의 자유도 없었지만 그들의 신앙과 믿음은 더 순수해졌고, 겉모양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얼굴만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날의 중국교회는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계속 부흥하여 약 1억 명의 가정교회, 지하교회 성도들이 생명을 건 순수한 신앙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23, 24절에서 다윗은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코로나로 인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진짜 크리스천과 겉모양만 크리스천이 구분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이들이 진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시련과 환난은 우리가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1년 가까이 우리는 교회를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호와를 바라는 이들의 믿음과 심령은 더 강해져 갈 것입니다. 시련 속에서 다윗은 더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단련되어졌던 것입니다.

 

2. 깨진 그릇이 쓰임 받는다

 

세라믹 그릇들 중에 이가 나간 커피 잔이나, 밥그릇이 있으면 되도록 그런 것들은 식탁에 안 올려놓고 싶어 합니다. 하물며 완전히 깨지고 부서진 그릇을 누가 사용하려고 하겠습니까? 쓰고 싶어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12절 말씀에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사람이 잘나갈 때면 주변에 사람이 많게 되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와 밥 한 번 같이 먹고, 인사라도 하려고 하고, 좀 알고 지내다 보면 뭐라도 도움 받을 게 있을 거 같아서 그를 가까이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하지만, 크게 실패하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깨지고 부서진 사람 주변에는 그 전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남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친구는 어려울 때 확인된다고 하는 겁니다.

다윗이 왕의 표적이 되고 쫓길 때, 다윗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과거 골리앗을 죽여 민족을 구원한 영웅 다윗이 잊혀 져 갔습니다. 그가 초기에 왕의 신임을 얻어 군대 장관의 자리에 있었을 때, 그 앞에 나와 굽실대며 아부하던 많은 이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왕의 최측근이라 생각하며, 다윗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다윗은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라고 탄식하며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잊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다윗에게 등을 돌려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생명을 취해 사울 왕의 신임을 차지하려했던 것입니다(13절).

 

그런데 시편 31편 14절, 15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My times are in your hands)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다윗의 사방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대적들이 있었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윗의 건강은 심각하게 나빠져 그는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이 계속되고 있지만 ‘자신의 앞날이 주님의 손에 있다(My times are in your hands)’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나를 죽이려 달려드는 이들에 의해 당장이라도 끝장날 것 같은 위기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지만, 내 인생의 시간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은 산산이 부서진 것만 같았습니다. 한 때 민족의 영웅이 반역자로 수배되어 쫓기고 있습니다.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다윗의 목을 베어 왕에게 바쳐 공을 세우려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 그 어디에도 다윗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추격자들로 인해 죽임을 당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과 인생 그리고 미래와 앞날이 다윗의 생명을 찾는 원수들의 손에 달린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다윗은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들이 당장이라도 나의 모든 것을 끝장낼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으십시오. 산산 조각 난 다윗의 인생은 소망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버려져 실패자로 끝날 거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깨진 그릇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역사상 위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깨어진 그릇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요셉은 사랑 받던 귀한 아들에서 노예와 죄수가 되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도망 나와 80세 때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다윗은 민족의 영웅에서 반역자로 수배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조국의 멸망을 보며 어린 시절 바벨론에 전쟁 포로로 잡혀갔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말구유에서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하고 깨지고 부서진 영혼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도, 든든한 환경도 없기에 그 심령이 가난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심령이 그렇게 가난해져 있는 이들은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손을 내미실 때 그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인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던 『백투예루살렘』이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좋은 방법과 더 강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만, 하나님은 자신들의 능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약한 그릇을 찾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며, 모든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 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자매는 대학 4학년 때 음주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로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30번이 넘는 피부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으면 무슨 대책이 있으실 거 아니냐’고, 그렇게 하나님께 따지고 싶어서 교회를 갔는데, 성가대의 찬양도 목사님의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랍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께서 오시더니 ‘사랑하는 딸아!,’로 시작되는 기도를 해 주셨는데, 그 때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씀에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두 가지 약속을 주셨는데,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다시 세우겠다. (그리고) 힘들고, 병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거야!”

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생각되었지만, 성경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 분이라면 내게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한동대학교에서 대학생들에게 상담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세상에서 힘들고 병든 이들의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지선 자매가 이런 말을 합니다.
“한 때 깨어져서 산산조각이 났던 그릇이지만, 예수님께서 그 조각을 다시 주어서 저라는 그릇을 만들어 주셨어요.”

더 이상 윤이 나지 않지만, 예수님이라는 보배를 자신 안에 담아 주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 중 저녁에 자전거를 끌고 집 앞에서 간단히 운동하다가 이 자매님의 짧은 간증을 유튜브로 듣다가 저의 상황과 우리 성도들이 생각나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에게도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환아, 네 인생이 깨지고 부서진 것 같지만 내가 너를 고쳐 줄 것이다. 네가 많은 죄로 더러워졌지만 내가 너를 깨끗하게 씻어 줄 것이다. 네가 실패한 것 같지만 내가 너를 들어 쓸 것이다. 네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것 같지만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깨진 그릇을 고쳐서 사용한단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산산조각으로 깨지고 부서졌더라도 우리 주님께서 그 조각들을 다시 붙여 사용하실 것입니다. 상처 난 마음들과 인생들을 치료하여, 주님의 선한 도구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깨지고 부서진 그릇과 같은 우리의 인생을 다윗과 같이 아름답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