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면 잘 사나?

시편 128: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질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 한글은 가장 배우기 쉬운 말과 단어이면서도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이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쓰는 말과 단어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잘 살다 & 잘살다>는 말일 거 같습니다. 보통 많이 쓰는 표현 중에 “저 사람은 잘살아”라고 하면, ‘저 사람은 부자야’라고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띄어쓰기를 해서 ‘저 사람은 잘 살아’라고 하면, 부자라고 이해하면 틀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띄어쓰기 없이 ‘잘살아’라고 하면, 이것은 그 사람이 ‘부자’라는 뜻이지만, 띄어쓰기하고 ‘잘 살아’라고 할 때 영어로는 ‘Well-being’ 그리고 ‘옳고, 바르고, 훌륭하게, 의미있게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지만 그것이 그가 옳고, 바르고, 훌륭하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입니다. 큰 재물이 없어도, 대단한 능력이 없어도, 건강이 약해도 그의 삶의 자리에서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이웃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기독교 신앙은 ‘기복신앙(祈福信仰)’을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 믿는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은 무조건 가난하고, 시련과 고난만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돈이 하나님보다, 믿음보다 더 위에 있고, 더 크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기복신앙이고, 물질을 섬기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보다 결코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것도 죄가 아니고,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앉는 것도, 큰 성공을 거두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의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가 돈을 우상으로 여기며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긴 물질의 청지기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 물질은 그에게 결코 위험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관과 신앙관이 바르게 정립되지 않은 사람에게 과도한 물질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물질적 가치로 사람을 판단하고 멸시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8편 1절을 보시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오늘 본문에는 물질적인 복과 가정적인 복, 인생의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의 복, 가정의 복, 인생의 복의 전제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함’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 중에 하나가 ‘인격적이니 않은 사람, 불의한 사람이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고 옳은 사람에게는 큰 권력이 주어질 때, 그는 그 힘으로 바른 일을 하고, 이웃을 위해, 약한 자를 위해 그 힘을 쓸 것입니다. 하지만, 인격적이지 않고, 불의한 사람의 본질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그들이 피해를 입든, 그들이 고통을 받든… ‘나만 잘되면 그만’이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의한 사람이 거머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때문에 1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늘이 무서운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힘과 부와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나는 그것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시는 복을 나열하고 있는데,

2절을 보시면,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고생은 고생대로 실컷 했는데 그 수고한 대로, 땀 흘린 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그는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우리가 수고한 대로 소득을 얻고, 복을 누리는 것은 큰 복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당시 농경시대에 살던 이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비유를 들고 있는데, 추수할 때가 이른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 그리고 신선한 올리브 열매가 가득한 감람나무와 같은 둘러앉은 자식들은 보기만 해도 배고프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이런 행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을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즉, 그 복이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이 오듯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 믿음으로 살아가면 잘 살 수 있을까요? 대답은 ‘그렇습니다’입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단지 종교생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바르게 의롭게 살아가니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복을 주시는 교회 다니면 ‘잘사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자손 그리고 그 가문에 베푸신 은혜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단지 종교생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바르게 의롭게 살아가니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복을 주시는 교회 다니면 ‘잘사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어떻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