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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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4:26~35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14: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사는 필리핀에는 태풍 영향으로 한 주 내내 많은 비가 내렸는데, 저지대에 사는 주민들이나, 배수 시설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주민들 집에 물이 들이쳐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전남 광주, 나주 그리고 충남 서산 일대와 경남 산청, 합천 등등에 100년, 200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내렸습니다. 광주의 한 시민은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차를 버리고, 옆에 있었던 스타벅스로 대피를 했는데, 그 카페 1층에도 이미 물이 들이닥치고 있었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2층에는 이미 스타벅스 직원들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대피해 있었고, 그 스타벅스 2층에서 폭우 피해 현장을 동영상을 찍어 방송국에 제보했던 겁니다.

어떤 분이랑 한국의 집중 호우와 폭우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분이 “지구가 아픈 거 같아요”라고 하셨는데, 정 말 그 말과 같이 지구 곳곳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자연 재해들 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탄소 배출과 같은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의 온난화 가 진행되고 그로 인한 기후 변화를 경고했었습니다. 그 당 시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어느새 그 경고의 상황들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거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 아닙니다. 마치 씨를 뿌리면 그 열매를 거두듯, 사람들이 이런 나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고, 지구는 그때부터 이미 그 재앙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아직 더 강력한 것 그리고 절망적인 끝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구상에 살아가 는 인간들이 아프도록 화가 나 있는 자연과 화해하면서, 더불 어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복을 내리시기도 와 재앙을 내리시기도 하고, 저주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충동조 절장애’ 또는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처럼, 감정 조절이 어려워서 화가 난다고 갑자기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 기도하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서 ‘옛다!’ 하면서 어떤 복을 주시는 분이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명기 30장 15절을 보시면,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고, 사망과 화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해서 경 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과 재앙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복이라는 것 또는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복 받을 그릇을 이미 준비해 나가는 사람 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재앙의 길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미래가 생명과 축복 가운데 있기를 원하지, 사망과 화와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기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망과 화와 저주와 재앙은 피하면서도, 생명과 축복과 은혜와 평강과 승리와 기쁨 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 가는데 꼭 필요한 교훈을 깨닫는 귀한 시간 되시길 축복합니다.

1. 생명의 말을 하라

우리가 첫 번째로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 이 ‘말’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과 생명체 중에 오직 유일하게 인간만 이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동물들도 그들 나름의 소통 방식 이 있지만, 우리가 동물들이 ‘말한다. 대화한다’라 고 말하지 않고, ‘개가 짓는다. 새가 운다. 사자가 으르렁 거린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는데, 하나님을 닮 은 그 형상 중에 하나가 ‘인간이 언어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창조의 역사’를 하셨던 것처럼, ‘언어와 말’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문명도 이렇게 놀랍도록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어가 없었다면 우린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민수기 14장 27절을 보시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1년 여의 광야 여정을 통해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해 12명의 정탐꾼을 보냈고, 그들은 40일 간의 가나안 정탐을 마친 후 정탐 보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 비관적, 불신앙적 보고를 들었던 모든 백성들이 대성통곡하며 절망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에 ‘원망’이란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원망이란 것 은 지금 벌어진 이 상황에 대해서 못마땅히 여기고 , 누군가를 탓하고 , 불평하고, 미워하고 , 싫어하는 감정들과 말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한 이후로 모 홍해 앞에서부터 시작해서 광야 생활을 하던 지난 1년 여의 시간 동안 수시로 불평하고, 원망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도록 기다리시고 기다려 주셨지만,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신 분들이 신부가 예뻐서 반해서 결혼했고, 신랑의 외모에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깐 아내가 입만 열면 불평과 불만과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얘기만 계속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남편이 입만 열면 상스러운 말 이 나오고, 누군 가를 저주하고, 불평과 불만의 말만 나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남자랑 사는 거, 그런 여자랑 사는 거 행복하겠습니까?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잘생겨도 그런 사람이랑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인데, 마치 인격적 인 사람과 같이 말하는 자신뿐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말과 언어는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자주 접하는 사람, 좋은 설교를 자주 접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변화되고, 인격이 성숙해 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잠언 18장 20절과 21절을 보시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 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의 DNA』라는 책에 나와 있는 얘기입니다. 어느 날, 이 책의 저자가 한 시골 교회를 방문 했는데, 교회 마당 에 성인 남자 키의 5~6배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있더랍니다. 그런데 한 나무는 잎이 무성한데, 다른 나무는 바싹 말라 있어서 ‘비슷한 조건의 나무 같은데 왜 한 나무는 이렇게 잎이 풍성하고, 다른 나무는 이렇게 바싹 말라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하며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시골 교회 목사님 이 “목사님, 제가 미안해 죽겠어요.” 그래서 저자가 “왜 그러시는데요?”라고 묻자, “원래는 두 나무 모두 잎이 무성했던 나무였어요. 그런데 왼쪽 나무가 잎이 자라면서 자꾸 교회 앞을 가리길래 왼쪽 나무 앞을 지날 때마다 ‘저 나무 좀 없었으면 좋겠다. 저 나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죠. 그런데 진짜 시들어버린 거예요.” 목사님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한 마디를 덧붙이셨는데, “말이 참 무섭네요.”라고 하시더랍니다.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무조차도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되는 겁니다. 그러니 말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잠언 18 장의 말씀처럼, 사람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됩니다. 그 입술의 열매를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4장 28절을 보시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 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인 말을 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은 ‘우리가 광야에서 죽겠다. 망하겠다’라고 말했는데, 주님께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 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자녀들에겐 어 떤 말을 해야겠습니까? “넌 잘 될 거다. 넌 성공할 거다. 넌 크게 될 거다…” 이런 축복의 말을 많이 하면, 그대로 될 것 입니다.

여러분의 일과 미래와 진로와 사업장을 향해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니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지금은 어려워도 난 반드시 잘 될 것이다.…” 이렇게 계속 선포 해 보십시오. 그대로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주일 조금 아프고 앓으면 나을 수 있는 감기에 걸렸는데, ‘혹시 큰 병에 걸렸으면 어떻게 하지? 난 죽을지도 몰라. …’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자꾸 마음을 주고, 힘을 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의 말과 감정과 생각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왕 여러분이 힘을 실어주려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난 치료될 수 있다. 난 회복될 수 있다. 난 이전보다 더 건강해 질 것이 다.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해 보십시오. 그대로 될 것입니다.

말에는 생명의 말이 있고, 사망의 말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한 입으로 이왕 말하되 생명의 말을 하십시오. 뭐하러 사망과 화와 재앙과 저주와 절망과 실패의 말을 합니까? 내가 말할 때, 내 영혼도 듣고, 주님께서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 께서는 불평과 불만과 원망 그리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인 말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생명의 말을 하십시오. 축복의 말을 하십시오. 승리의 말을 하십시오. 회복의 말을 하십시오. 능력의 말을 하십시오. 은혜의 말을 하십시오. 그 말대로 되고, 그 믿음대로 될 것 입니다.

2. 후회할 일을 말라

‘복과 재앙’ 중에 우리가 ‘복된 삶의 자리’에 있기를 원한 다면, 첫 번째로는 ‘생명의 말을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하는 대로 가고, 말하는 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두 번째 교훈은 ‘후회할 일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와 상황들 앞에서 부정적이고, 비관적 인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그냥 생각에서만 머물렀다면 다행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입술의 말로 뱉어지게 되면 그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일이 시작 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이 행동으로 연결된다면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민수기 14장 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열 명의 부정적 보고를 믿기로 한 , 불신앙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 면서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했 습니다. 그들은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어버리고 싶다’라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3절도 보시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 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 구절을 통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리 처자식이 사로잡혀 가나안 사람의 종이 될 거 같으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게 낫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자, 이들이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32절, 33절을 보시면,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 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 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아까 2절에서 ‘차라리 광야에서 죽어버리고 싶다’라고 말 한 것처럼, 32절에서 는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 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 하다가 가나안의 영광을 맛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져 시체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들의 말 그대로 된 겁니다.

그리고 3절에서 는 ‘우리 처자식이 사로잡히겠다’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20세 이하의 자녀들에겐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은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지만, 33절에 보니 깐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 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 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은 가나안에는 들어가게 되겠지만, 부모의 죄로 인해 그 자녀들까지 고생을 하게 된다 는 겁니 다. 부모의 불신앙이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그리고 34절을 보시면,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 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며,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 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도 못 들어 가 보고, 모두 광야에서 그 죄의 벌을 받으며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하반절에서 “…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 건이 있기 전인 지난 1년 여의 시간 동안에도 그들은 동일 한 죄와 실수를 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복적으로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40년이란 형벌의 날을 정하셨습니다. 왜 40년이라는 길고 길 세월이었을까요? 40일 정탐 기간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한 것도 있지만, 용서해 주면 또 범죄하고, 또 용서해 주면 또 범죄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는데, 사람은 쉽게 용서받으면 또 쉽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0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긴 세월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 하고, 변화되어… 적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들의 후손 만이라도 제대로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내일부터 40일간 <특별기도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특별기도회 40일은 너무 길어요’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할 겁니다.

사회학자들은 ‘사람이 21일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면 습관 이 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말처럼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때론 꼭 그렇지 만은 않더라구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된 습관과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21일 해서 안 되면, 또 21일을 하면 어떨까요? 적어도 첫 번째 21일 보다는 한 번 더 한다면 새로운 변화에 조금 더 가까이 가 있지 않겠습니까?

『인문학을 하나님께(3)』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수준으로 사는 사람이고, 기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 사는 사람이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우리가 20일씩 연속해서 두 번을 하 면 40일이 됩니다. 새로운 거룩한 습관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반복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 40일을 통해서 자기 수준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아가는 멋진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1. 생명의 말을 하라
  2. 후회할 일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