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 신뢰

에스라 1:1~4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요즘 우리나라 청년들이 취업 문제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어떤 여자 청년이 한국인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 동남아 어떤 나라에서 관광객들 대상으로 사업하는 한국인 업체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겁니다. 이 청년은 한국에서 준비하고 있던 일들도 있었지만, 많은 고민 끝에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그 한국인 사장의 말을 믿기로 하고 한국 생활을 정리한 뒤 그 나라로 떠난 겁니다.

하지만, 단 몇 주 만에 안색을 바꾼 사장은 갑자기 이 청년을 해고했고, 그 사장 말만 믿고 온 여자 청년은 억울하게도 타국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겁니다. 억울한 취업 사기를 당한 청년은 그나마 괜찮은 편일 겁니다. 진짜 사기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사람, 가장 가까웠던 사람, 어쩌면 내 형제보다 더 친밀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 일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과 동업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거의 없을 겁니다. ‘정말 저 사람만큼은 내가 믿을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과 동업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본 바로는 결국 끝이 다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 믿고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 세상 살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이 일반적이 되어 버린 거 같아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하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사람은 우리가 믿고 의지할 만한 존재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전적으로 신뢰해야 할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첫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세상 사람의 말은 믿었다가도 그 신뢰가 실망으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가리키는 수식어 중에 하나가 형용사로 ‘신실한’이란 말입니다. ‘믿을 수 있는,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에스라 1장 1절을 보시면,
“바사와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타락할 대로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은 BC.586년에 완전히 멸망했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모두 파괴되었고, 모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것을 당시 활동하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미 예언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25장 11절을 보시면,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그리고

예레미야 29장 1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들이 바벨론에게 멸망해, 포로로 끌려가 70년간 비참한 노예로 전락해 살아가다가 70년이 차면, 그들을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는 예언인 것입니다.

식민지의 식민정책은 정복한 민족들이 뭉치도록 두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빼앗겼던 나라를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을 막을 수 없고, 여기저기 그런 쿠데타와 독립운동이 일어나면 대제국의 통치가 위태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본토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언약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재정적인 부담과 두려움에 눌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 밤에 기도할 때 주님께서 “김목사야, 내가 너 돈 걱정하지 않게 해 줄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저는 이 말씀을 100% 믿고 있고,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둘째, 시작부터 끝까지 도우신다.

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오늘 본문 에스라 1장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이어서 4절을 보시면,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는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지금 이 말은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했던 말입니다. 불신자 이방인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포로되었던 유대인들 중에 누구든 본토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 돌아가도 좋고, 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할 예물을 드리고, 포로들에게도 은과 금과 각종 물품과 가축들까지 선물로 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미션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예로 살던 이들에게 무슨 재산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모두 다 준비해 주시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주님께서 끝까지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면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내년에 성전을 이전해야 할 큰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형편과 재정구조와 성도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라면 이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도와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일이라면 걱정마세요. 하나님께서 끝까지 도우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둘째, 시작부터 끝까지 도우신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라면 이루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도와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전적으로 신뢰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