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멋진 사람으로 살기

제공

민수기 16:1~1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라엘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 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5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6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8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10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11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흔히들 ‘태어난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인생의 길이는 각자마다 짧거나 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시인인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7~406)’는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과 인생을 단 하루라도 헛되이 보낸다는 것은… 더 간절히 살고 싶었지만 그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던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단어 중에 ‘Present(오늘, 현재의)=Present(선물)’이란 말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우리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 고, 지나간 과거를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의 생일이었는데, 우리 성도님들이 케잌과 생 일 노래도 불러주시고, 제게 선물도 주셨습니다. 제가 아무 리 그런 거에 관심이 없는 목사여도, 누구든 선물을 받게 될 때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 는 시간을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린 누군가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그 ‘선물’과 같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일과 가정과 교회… 그 모든 것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이 정말 의미있는 삶 이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 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이롭게 는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누구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정말 멋지게 살고 하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르쳐주시고 있는 ‘멋진 인생’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멋진 인생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람은 그의 지나간 흔적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나간 자리에 ‘정말 멋진 사람이었 다’는 흔적이 남기를 바랍니다.

1.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

정말 멋진 사람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다가 우리의 지 나간 자리에 ‘정말 멋진 사람으로 살았다’는 흔적이 남게되는 첫 번째 교훈은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나눈 ‘열두 정탐꾼을 보낸 가데스 바 네아 사건’은 출애굽 한지 2년 되었을 시기 에 있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불순종과 불신앙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은 40년 뒤로 늦춰졌고, 불신앙의 출애굽 1세대 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징벌에 관한 예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민수기 16장의 사건은 출애굽 한지 38년째 되었을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러니깐 가데스 바네아부터 오늘 본문의 사건이 있기까지 무려 36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모세오경에 그 36년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 그들이 큰 깨달음을 받아서 변화된 삶을 살았을까요? 이 질문엔 ‘글세…’라는 부정적 답변이 맞을 겁니다. 왜냐하면 36년 뒤에 있었던 오늘 본문의 사건을 미뤄볼 때, 그들은 한 세대가 다 지나도록 그 마음과 태도 그리고 믿음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민수기 16장 1절을 보시면,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 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이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 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리더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며 반란을 일으켰던 겁니다. 그 중심 인물이 ‘고라’라는 사람인데, 모세와 아론과는 사촌지간이었고, 그 사람 역시 레위지파로서 성막을 관리하고, 백성들에게 율법교육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라는 ‘르우벤 자손의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온’이란 사람과 함께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지휘관 250명도 이 반란에 합류케 했습니다.

3절을 보시면,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반란을 일으킨 고라 일당 이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라는 말을 하는데, 히브리어의 문자적 의미는 ‘너희가 너무 많이 소유하였다’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최고 지도자는 ‘모세’였고, 종교 적인 부분의 수장 은 ‘대제사장인 아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장은 그 아론의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깐 반란의 주동자 인 ‘고라’를 비롯한 그 일당의 불만은 ‘왜 모세와 아론 너희만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을 독차지하느냐?’라는 겁니다.

일단, 주동자인 고라는 모세와 아론과는 사촌지간 이고, 같은 레위 지파 사람 이었고, 그 레위 지파는 성막과 제사에 관한 종교적 소명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선택되고 구별된 지파였습니다. 때문에 이것은 모세와 아론의 뜻과 욕심과 야망에 따라 결정된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각자에게 정해 주신 부르심과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고라는 자신도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싶었지만, ‘아론의 가문에서만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율법 때문에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그는 종교적 야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라와 손잡고 반란에 합류한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이 있는데, 르우벤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에 장자인 르우벤의 후손들입니다. 야곱 즉 이스라엘의 장자권은 원래 르우벤에게 있었는데,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서 장자권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2

그 후손들도 그 조상 르우벤의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알고 는 있지만, ‘원래 우리가 장자 지파인데, 대제사장은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을 이끌 리더가 우리 지파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의 모세가 정치적 지도자인 것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라와 반란을 꾀했던 것입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제외하고 레위 지파에서 가장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고,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 역시 그 지파의 가장 우두머리였고, 반란에 동참한 250명의 지도자도 각 지파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고라를 비롯한 반란자들의 문제는 ‘더 높아지고 자 하는 마음의 교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3절에서 ‘회중도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데 왜 너희만 스스로 높은 자리 차지하고 있느냐?’라고 그럴듯한 말로 반란을 선동 하고있는 겁니다. 그럴듯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습니까?

하지만, 그 안에는 주동자인 ‘고라’라고 하는 자의 악한 욕망과 야망이라는 교만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잠언 16장 18절을 보시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 라”

<교만>이란 것은 ‘자만심과 함께 잘난 체하고, 남을 무시 하는 태도’라 할 수 있고, <거만(오만)>이란 것은 ‘교만의 태도와 함께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거들먹거리는 나쁜 태도’를 말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잠언의 말씀은 이 두 가지 사실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말씀을 100% 믿으십시오. 내 안에 교만이란게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것은 내가 패망 의 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거만한 마음이 자꾸 생긴다는 것은 남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이 커지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자 하는 마음 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이 역시 ‘악한 병’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거만, 오만)’이란 것은 ‘내 인생을 망치게 하는 가장 잘못된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것은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이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자꾸 높여 보십시오. 사람들 앞에서 자꾸 잘난체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무시 하고 업신여기면서 거들먹거려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거 같습니까? 사람들이 점점 여러분 주변에 머물길 힘들어할 겁니다. 앞에서야 별말 없겠지만, 뒤돌아서 가장 욕을 먹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여기 세부에 오시는 분들 중에 간혹 한국에서 꽤 큰 사업을 하시고 , 어느 정도 재력이 있으신 분들이 오시는거 같은데… 그거야 별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이분들이 ‘한국에 어떤 사업체가 있으며, 재산이 얼마나 있으며, 값비싼 외제 차 가 몇 대 있으며…’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가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자기 자신한테 얼마나 자 신이 없으면 자꾸 저런 걸 말할까…’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있는 사람 은 그런 거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거 자랑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말과 태도와 인격과 생각에서 진짜 여러분의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늘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히려 사람들 사 이에서 점점 높아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높아지려고 애쓰고 발버둥치는 사람은 오히려 점점 인정받지도 못하고, 그러니 높아지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늘 자기 자신을 낮 추고, 겸손하게 먼저 섬기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말없이 섬기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하고, 그는 점점 더 높아지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반말’을 하면, 서로 친해지기 쉽고 또는 자 기가 더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슬쩍 슬쩍 반말을 섞어 가며 말하는게 습관이 되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목회하시고 계시지만, 여기 세부에 종종 오셔서 선교하시는 교단의 어른이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저와 같은 교단은 아니시지만, 그 교단의 총회장까지 역임하셨고, 일흔 이 넘으셔도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선교 사역을 지금도 왕 성하게 하고 계십니다.

종종 세부에 오시면 제게 연락을 주시기도 국에 나가게 되면 찾아뵙고 인사를 하고, 저도 한 드리기도 합니다. 제가 배울 게 참 많은 분이십니다. 저보다 연배가 훨씬 어른이시고, 저는 새까만 후배 목사임에도 이 어르신은 ‘아이구 목사 님 오셨어요’ 이러시면서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제게 깍듯 하게 존대를 하십니다. 벌써 이분을 알고 지낸 지가 십 수년이 넘었는데 이 목사님께서 제게 함부로 말을 섞어가며 하대 말씀하시거나, 반 하시거나… 그런 일이 전혀 없습니다.

정말 늘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고, 먼저 잘 섬기시고 그러십 니다. 만약 그 어르신이 교만하고 거만 하셨다면, 제가 한국에 나가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연락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너무 겸손하시고 좋으신 분이니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려 찾아뵙기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도 늘 존경하고, 닮고 싶은 목사님 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이란 자세와 태도는 절대 손해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에서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낮아진 마 음은 하나님 앞에서 복된 마음인 것입니다. 겸손하고 또 겸손 하게 사십시오. 그런 사람이 정말 멋진 사람인 것입니다.

2. 맡겨진 것에 감사하라

정말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 자세 는 ‘맡겨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 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 의식’과 우리에게 맡기신 감’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반란의 주동자인 ‘사명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백성의 지휘관들이 모세와 아론을 인정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상황 이었습니다.

4절에 보면,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그런데 이 말씀은 36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 의 부정적 보고 이후에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슬렀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14장 5절에 보시면,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런데 위기 때마다 모세와 아론은 엎드렸는데, 그 이후에 상황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백성들이 원성과 원망과 불평에서 반란의 조짐이 있을 때마다 모세와 아론은 기도의 무릎을 꿇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반전이 일어 나게 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왕궁 경호대에 체포되어 구금되어있었을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과 3절에 보시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기도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엎드릴 때, 그 긴박한 위기의 상황에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부르짖는 기도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 크고 놀라운 반 전의 역사를 주실 것입니다.

모세가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긴박한 위기의 상황을 돌파할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민수기 16장 8절과 9절을 보시면,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고라가 속한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으로 그 들은 ‘성막에서 봉사하고, 모든 백성들을 대신하여 섬기는 자들로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레위 자손은 그 사실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반란의 주동자인 고라가 3절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하 기를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라고 말했는데, 7절에서는 모 세가 그들에게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혼난 거북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는데, 하나님께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거북이를 책망하시면서, “거북아, 너는 왜 토끼와 경주를 했니? 땅에 사는 토끼가 부러웠니? 너는 바다에서 누구보다 우아하게 헤엄칠 수 있잖니, 너는 토끼가 아닌 거북이일 때 가장 멋지단다.” 그리곤 하나님께서 걱정되는 게 하나 더 있다고 말씀하시길, “거북아, 땅에서 토끼보다 빠르게 뛰는 거북이를 보면, 사람들이 말세라고 하면서 총으로 쏠지 도 모른단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우스갯소리지만, 토끼가 토끼답고, 거북이가 거북이 다울 때가 가장 멋진 겁니다. 크리스천들이 예수 믿는 사람답고, 집사가 집사답고, 목사가 목사답고, 어른이 어른답고, 아이가 아이답고, 교사가 교사답고, 판사가 법관답고,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고, 대통령이 대통령다울 때 가장 멋진 겁니다.

요즘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 ‘남자답다’ 혹은 ‘여자답다’라는 말이 ‘성차별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일리가 없는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답게, 여자답게 지으 셨기 때문에 우리가 본능적으로 남자답다고, 여자답다고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인 것입니다. 남자답다는 말을, 여자답다는 말이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거고, 이상한 겁니다.

성경에서도 남자가 여자 옷 입고 성적으로 다니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좋아하는 걸 큰 죄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병들어 있고,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가 병들어 있는 겁니다.

정말 멋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맡기셨든지 , 그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자리에 부르셨는지, 그것을 깨닫는 것이 ‘소명의식’이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그 자리에 부르셨는지를 깨닫는 것이 ‘사명감’인 것입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집주인을 보면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고, 위협될 만한 사람이라 생각하면 마구 짖어댑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한 물건들도, 집 안에 있는 반려견도 자신이 그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말로 ‘소명과 사명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아빠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그런데 그 아빠가 맡겨진 것에 감사하지 않고, 맨날 밖으로만 돈다면… 아빠다운게 아닙니다.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저버리고 사는 겁니다. 만약, 그런 아빠가 있다면 여러분 마음에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아빠뿐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의식)과 맡기신 사명(사명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인 것입니다. 진짜 멋진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책 에서 두 종류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Driven life : 충동에 이끌리는 삶’이고, 또 다른 하나는 ‘Called life : 소명에 이끌리는 삶’인 것입니다.

세상의 감각적인 욕망과 충동에 따라 성공만을 추구 살아가는 삶, 돈과 하는 삶을 ‘충동에 이끌리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난 목적과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소명과 비전을 좇아사는 삶은 ‘소명에 이끌리는 삶’인 것 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내면의 질서가 조화를 이룬 삶 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처럼, 왜 자꾸 다른 사람 것만 부러워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 자리에서 꽃 피우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의 자리에서 감사하며,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 갈 때, 반드시 거기서 꽃피고 열매 맺게 될 줄 믿습니다.

  1.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
  2. 맡겨진 것에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