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

에스라 7:1~10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에스라서]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6장까지는 ‘성전 재건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7~10장까지는 ‘영적 부흥과 신앙 재건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장에서 7장 사이의 연대는 약 60~80년 정도의 간격이 있습니다. 6장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완공되고, 제사와 예배와 절기가 회복된 내용까지가 기록됩니다. 에스라 7장부터는 그로부터 약 60년 뒤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1차 귀환한 백성들은 약 80년을 조상들의 땅에서 정착해 살고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이후부터는 약 60년 동안 매일, 매주 성전 예배가 드려졌고, 백성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안식일과 절기에 똑같이 제사를 올려 드렸을 것입니다.

저도 교회를 개척해서 한 교회를 십수 년 동안 목회하고 있지만, 늘 경계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종교적 타성에 젖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익숙해 지면 감동도, 감사도, 은혜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너리즘과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려면, 영적으로 늘 깨어 기도해야 하고, 봉사와 사역을 계속 찾아서 해야 합니다.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기도제목은 우리로 하여금 늘 깨어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60~80년을 지나는 동안 영적 매너리즘과 타성에 젖은 종교 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점 영적으로는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이 페르시아에 살고 있었던 선지자 에스라였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입니다. 비록 전쟁 포로로 끌려온 자의 후손으로 성장했지만, 거기서도 제사장 가문으로서의 정체성은 지켜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학자 겸 제사장으로 소개되고 있고,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던 왕국의 고위 관직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2차 포로 귀환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 6절과 9절에서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6절에서는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라고 되어 있고, 9절에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래서 에스라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란 별명을 붙여 줄 수 있겠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을 하나님께서 도우실까요?

첫째,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바벨론 제국이 남유다 왕국을 BC.605년, BC.597년, BC.586년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침공했는데, 그때마다 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지식층이었던 제사장들을 포로로 끌고 갔던 겁니다.

그러니깐 제사장들이 고국을 떠나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살던 기간이 에스라 시대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무려 130년~150년 정도 전에 포로로 끌려왔던 겁니다.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신앙 생활하기가 절대적으로 어려운 이방 땅에서 하나님 말씀 붙들고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영적 순수함이 유지되고, 그 믿음의 유산을 잘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그의 신앙과 인격은 아닥사스다 왕을 감동시켰고, 에스라가 왕에게 무엇을 구하든 다 허락할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의 수식구에 보면,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도우실까요? 둘째, 선한 뜻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이 구절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2차 포로 귀환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10절 말씀에서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우리 한글 성경에는 빠졌지만, 이 구절의 시작을 히브리어 ‘키(כי)’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는데, ‘왜냐하면(For)’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깐 9절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10절의 시작을 ‘왜냐하면… 에스라가 페르시아의 고위 관직의 부와 영광을 버리고,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으로 돕기 위해서 선한 뜻으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 계산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give and take’란 말과 같이, 뭔가를 주면서 받을 것을 계산합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아무 것도 받을 게 없을 거 같으면 나도 도우려는 마음을 접어버립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뭔가 돌아올 게 있을 거 같으면, 그 사람에게 뭔가를 자꾸 심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8절에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하셨습니다. 계산하지 마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선한 마음으로 거저 주십시오. 내게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내게 갚을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거저 주라 하셨으니, 그냥 거저 주는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했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선한 뜻으로 사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반드시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실 그 은혜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꼭 기억하십시오.

첫째, 믿음으로 사는 사람

둘째, 선한 뜻으로 사는 사람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는 주님께서 거저 주라 하셨으니, 그냥 거저 주는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했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선한 뜻으로 사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반드시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말씀을 통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