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께 쓰임 받는가?

에스라 7:23~28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두 달 전에 우리나라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고, 대통령은 정부를 이끌어갈 각 행정부의 장관들과 기관장들을 임명하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장관과 기관장에 대한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임명하면, 국회의 비준(批准)을 거쳐 장관도 되고, 기관장도 될 수 있는 겁니다. ‘비준(批准)’이란 말의 한자어는 ‘때릴 비, 비평할 비(批)’ 자에, ‘승인할 준(准)’자를 쓰고 있습니다. 때문에 후보자는 도덕성과 능력을 검증하는 국회 청문회의 혹독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고위 공직에 앉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어떤 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때, 그 사람의 행정적 능력과 도덕성을 보겠지만… 다른 한 가지는 ‘이 사람이 친(親)정부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가?’도 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을 대신해서 해당 부처와 기관을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따라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한 마디로 ‘대통령 마음에 맞아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골라 임명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 가지 비판 여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무리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도 그의 선택에는 실수도 있고, 많은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온전하지 않은 이 땅의 지도자와 달리,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당신께서 쓰실 사람을 선택하시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난폭한 불한당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 ‘저 사람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나?’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인간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까지도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겁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시면,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자신의 충성된 신하였으며, 율법학자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 선지자를 예루살렘에 파견하면서 내린 <왕의 조서> 내용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과거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누구든 에스라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귀환해도 좋다는 조서를 쓰면서, 왕궁에서 정성껏 준비한 은금의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돈으로 성전에 번제로 드릴 제물들을 사고, 필요에 따라 그 돈을 사용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서쪽 지역 창고지기에게 명령하여, 에스라가 필요로 하는 것이 은이든, 곡식이든, 소금이든 달라는 대로 다 주라는 겁니다.

이런 파격적인 명령을 내린 이유가 23절의 내용을 보니깐,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대인들을 위해서 이런 엄청난 조서를 내릴 수 있었을까요? 아닥사스다 왕의 선대 왕은 아하수에로 왕이었고, 그가 왕비로 맞은 사람은 유대인이었던 에스더였던 겁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더의 아들은 아닐지라도, 선대 왕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전에 다니엘 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신실한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직간접적으로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인 에스라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그가 왕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허락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던 아닥사스다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둘째, 하나님께 힘을 얻는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이 깊이 신뢰하고 있는 고위급 신하였습니다. 필리핀에 와서 지내다 보니 어떤 분이 ‘필리핀 일꾼들의 특징’ 하나를 말씀해 주시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돈 주는 사람 말을 듣더라”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필리핀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누구든 속된 말로 자기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엄청난 특혜와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겁니다. 24절에서는 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일을 하는 레위인들과 찬양자들, 문지기들, 성전 일꾼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줍니다. 25절에서는 에스라에게 사법권을 주고, 26절에서는 그에게 범죄한 사람들을 징벌할 수 있는 형법에 관한 권한까지 줍니다. 이 모든 것을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해 준 일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시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너무 고맙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할 마음을 넣어 주셨다는 사실을 에스라는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28절도 보시면,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과 모든 방백들의 호의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이어서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에스라의 힘과 용기와 믿음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교회를 개척해서 지금까지 사역하면서 가장 많이 훈련받았던 중에 하나가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꾸 나와 좋은 관계 속에 있는 사람, 내게 호의적인 사람, 나를 도와 줄 만한 사람, 힘과 재력과 능력이 되는 사람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배후에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시편 84편 5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오늘 누가 주께 쓰임 받는지에 대해서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둘째, 하나님께 힘을 얻는 사람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사람은 우리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배후에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오로지 주께로부터 힘을 얻고 사는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