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4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우리가 어제까지 지난 두 주간 동안은 [에스라서] 말씀을 살펴봤는데, 에스라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1차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 성전 재건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성전 재건 후 60년 뒤 제사장 겸 율법 학자였던 에스라 선지자가 [바벨론 2차 포로 귀환]을 이끌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도착해 일으킨 영적 부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에스라서에 이어지는 [느헤미야서]를 함께 공부해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가 영적 부흥을 일으킨 해로부터 약 13년 정도가 흐른 시점에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에스라서가 ‘성전 재건과 영적 부흥’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영적 부흥’을 다루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되시겠습니다.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할 때, 유대인 출신의 왕의 신하 중, 한 사람은 에스라였고, 한 사람은 느헤미야였습니다. 둘 다 왕의 고위 관직이었고, 매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었던 신하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느헤미야는 ‘왕의 술관원’이었는데, 언제든 암살자들이 술과 음료를 통해 왕을 독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왕의 술관원이었다는 것은 얼마나 왕이 그를 신임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측근 중의 측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느헤미야 1장 2절을 보시면,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느헤미야의 형제 중에 ‘하나니’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페르시아의 궁까지 느헤미야를 만나러 찾아온 겁니다. 느헤미야의 형제 하나니는 13년 전, 선지자 에스라의 인도로 [바벨론 2차 포로 귀환]의 대열에 합류해 유다로 귀환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던 느헤미야도 13년 전에 그 귀환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고 그래서 왕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그 직을 그만둘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훗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란 특별한 사명을 받고 3차 포로 귀환을 이끌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서 그때는 허락하지 않으셨던 거 같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역사를 읽으면서 살짝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1차에서 3차까지 진행된 포로 귀환자들은 총인원이 5만 명이 조금 넘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나머지 이스라엘 포로들은 왜 고국으로 귀환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에스라 2차에, 느헤미야는 3차에 귀환했지만, 다니엘이나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사람들도 귀환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페르시아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사명이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그 이방 땅에서 그들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3절을 보시면,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의 형제 하나니를 통해 듣게 된 예루살렘과 유다에 귀환한 동족들의 상황은 매우 큰 환난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성전과 함께 왕궁뿐만 아니라 영광스런 예루살렘 성벽도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고 있었지만, 성벽 재건에 대한 페르시아 왕의 공식적인 허락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약탈자들과 대적들에게 동족들은 늘 공격의 대상으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동족들의 처참한 상황을 듣게 된 느헤미야는 마음에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고위 관직자로 있긴 했었지만,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 여러 날 동안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최측근이었고, 왕이 가장 신뢰하는 신하였던 고위 관직자였습니다. 그는 왕의 신임 가운데 별다른 염려와 걱정 없이 평안하게 일하며 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동족의 고통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매달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3차 포로 귀환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하는 과정이 된 것입니다.
고난이란 것은 당시에는 슬퍼 보이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고난은 하나님의 개입을 부릅니다. 우리는 고난이 없을 땐 하나님을 잘 찾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절하지도 절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조차 고난은 그 믿음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크게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의 간증자가 되게 하십니다.
제 개인의 신앙 여정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나고, 가장 큰 은혜를 경험하고, 가장 큰 역사들을 경험했을 때는 항상 제 삶에 큰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 고난으로 인해 저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기도자가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처럼 간절하고 절박하게 간구하는 저를 붙들어 주시고,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되고, 그 중간중간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을 때가 있었는데 주님은 그때마다 <특별 기도회>같은 거룩한 성회를 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개입하셔서 우리가 생각하고, 기도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는 갑작스럽게 성전 이전에 대한 이슈가 생겼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40일 특별기도회>에 대한 감동을 주셨고, 우리 교회는 40일간 거룩한 성회를 열고 온 성도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 문제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분명 개입하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찾아온 어떤 고난은 반드시 하나님의 개입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삶에 새로운 간증 거리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고난이란 것은 당시에는 슬퍼 보이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고난은 하나님의 개입을 부릅니다.
오늘의 묵상: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원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