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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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1~9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우리 사람의 ‘뇌’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앞쪽에 위치한
‘전두엽(Frontal lobe)’은 실행력, 계획력, 사고력, 통제력 등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를 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뒤쪽으로는 ‘두정엽(Parietal Lobe)’과 ‘후두
엽(Occipital Lobe)’이 위치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주로 감상적이고, 감각적인 활동을 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앞쪽 뇌를 사용하길 좋아하고 그 뇌가 발달한 사람은 어떤 상황과 문제를 합리적으로, 창의적 방식으로 바라보고 해결해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감정에 대한
통제 역시 비교적 잘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거나 그 일이 맡겨질 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뒤쪽 뇌를 사용하길 좋아하고 그 부위가 발달한 사람은 감상적, 감각적으로 그 상황과 문제를 접근하기 때문 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 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합리적 사고 능력을 상실한 채 때론 그 감정 조절이 잘 안되기도 합니다. 뇌가 감상과 감각적 기능을 즐기기 때문에 TV나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는 즐거움에 깊이 빠지기도 합니다. 뒤쪽 뇌를 사용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외부의 자극으로 반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앞쪽 뇌가 발달한 사람은 ‘능동형 인간’ 즉, 어떤 상황과 문제 앞에서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기 때문에 ‘생산자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뒤쪽 뇌를 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외부의 자극 에 웃고 우는 삶을 살기 때문에 ‘수동형 인간’ 즉, ‘소비자의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앞쪽 뇌든, 뒤쪽 뇌든 또는 측면의 뇌든… 골고루 균형 잡힌것이 가장 좋겠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앞쪽 뇌가 발달하고, 즐겨 쓰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능동적, 창의적 사고 방식으로 이렇게 사는 이들이 많더라는 겁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성공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 리더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 주인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 잘 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 잘 되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 면, 애굽에서 오랜 세월 동안 종으로 살다보니 뼛속 깊숙이 박힌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 종이 아닌 주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노예근성에 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런 사람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우리가 종의 자리 에서 벗어나, 주권을 가진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변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

오늘 본문인 민수기 2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지 40년이 되던 첫째 달 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1절에 의하면 그들은 ‘신 광야’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 광야는 ‘크고 두려운 광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겐 어렵고 힘든 환경 이었습니다. 그 신 광야의 ‘가데스바네 아’에 도착했고, 미리암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 였고, 이 당시 모세가 120세였으니, 미리암은 그보다 적어도 열 살은 더 많았을 것으로 보 입니다. 미리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영적 어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도 가나안 땅에도 못 들어간 상태로 죽었고 , 광야의 오아시스 중에 하나인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지만 그곳에 가뭄으로 물이 말라 백성들이 물을 얻을 수 없어 화가나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온 상황입니다.

3절을 보시면,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이 구절에 보면, ‘모세와 다투어’라는 표현이 있는데,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에 적의를 품고 대항하는(against)’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백성들이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 입니다. 영적인 어머니 같은 존재인 미리암 조차도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었고, 오아시스에 도착했지만 물이 말라서 마실 물이 없자 그 감정이 폭발한 겁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열악한 광야에서 약 60만 명의 성인 남자들 이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뻔 하였도다”라고 성내며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면,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백성들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고, 이렇게 된 것은 38년 전 오늘 본문과 같은 장소인 ‘가데스 바네아’ 에서 있었던, <열두 정탐꾼의 정탐 보고 사건> 때문이었습니 다. 열 명의 부정적인 정탐 보고에 온 백성들이 불신앙에 빠졌던 사건 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절과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 우리가 애 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 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이 구절은 38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과 38년 뒤에 있었던 오늘 본문의 3절과 4절 은 거의 비슷한 내용입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 겠다.’라고 하는 극단적인 말이 있고, ‘왜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해서 죽게 만드는 거냐’라는 원망도 똑같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니,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음 을 맞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말을 많이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 그대로 된다 는 것을 항상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원망과 불평 그리고 남 탓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와 어려움의 원인을 자꾸 다른 사람에게 돌 리는 남 탓을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니 정작 자신의 문제점 은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니 어찌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와 축복의 열매가 맺혀지겠습니까?

여러분, 의지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리고 억지로라도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긍정의 말을 하십시오. 소망의 말을 하십시오. 그 말대로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단지 마인드 컨트롤 같은 정신 승리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의 말을,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40절에서
“…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마태복음 8장 13절에선 로마의 백부장에게
“…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 에 이르느니라”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믿기만 해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데,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 하고, 입으로 선포할 때 그 믿음 대로 되고, 그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 2년이 되었을 때 , 민수기 14장의 가데스바네아 사건과 그 이후 38년이 지난 오늘 본문인 민수기 20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니, 그 말대로 된 겁니다. 그렇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인 말을하니 그 입술의 열매를 맺은 겁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인 모든 말의 습관을 오. 받은 은혜를 말로 까먹지 끊으십시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믿음의 말로 열매 맺어 증명되게 하십시오.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는 매 일 일기를 썼는데, 일기의 첫 문장을 언제나 “오늘도 나는 살아있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런 신앙과 삶의 자세 때문에 오늘날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죽는다. 죽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결코 선한 열매가 맺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2년 차의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신앙과 말과 모습 그리고 출애굽 40년 차의 가데스바네아에서 의 신앙과 말과 모습이 전혀 변한 게 없었던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이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어떤 희망도 없는 것 입니다. 제가 세부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하고 있으면서 언제나 두 부류의 교인들을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 믿음이 없던 분들 이 여기서 새롭게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하고, 말씀의 은혜와 기도의 능력과 찬양의 은혜를 잃어버렸던 분들 이 믿음을 새롭게 회복하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더 큰 믿음의 사람 이 되어 교회 앞에 충성된 성도들로 봉사하며, 교회의 큰 기둥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란 사자성어와 같이 전혀 변화가 없는 분들 이 있습니다. 그의 인격과 신앙 과 습관과 태도와 가치와 같은 것들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열심히 돕지만… 여전히 똑 같은 모습이 반복될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괜찮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신앙 우리의 그리고 교회 생활과 세상에서의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거 같습니까? 만약, 여러분 스스로가 보기에도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진단이 있다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변해야 삽니다. 변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노예근성’에 절어 사는 사람과 ‘주인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은 삶의 자세 와 일을 대하는 자세 에 있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5절에 보시면,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 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때로부터 늘 애굽인들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근성에 푹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어떤 상황 속에서 ‘할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 힘들고 어려운 것’을 찾는데 선수들입니다. 이 구절을 보시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단어들 이 계 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쁜 곳으로,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 도 없도다’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말이 사실이 아 니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열악한 광야’였기 때 문에 그들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런 것들을 부정하며 정신 승 리하라는 게 아닙니다.

어떤 책에 보니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행은 이미 가진 열 개보다 갖지 못한 하나에 더 집착하 면서부터 시작된다” – 『인문학을 하나님께(4)』

어떤 사람들은 ‘나는 돈도 없고, 좋은 가정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배경도 없고, 없고, 없고…’ 라고 말하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고 집착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며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린 누군가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것을 이미 갖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꽃자리(구상)』 라는 시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우리가 수년 간의 <코비드 19 팬데믹 시대>를 겪지 않았습니까? 그때 필리핀은 아예 외출 자체가 금지되고, 교회도 모두 폐쇄되어 누구든 자유롭게 예배도 드릴 수 없는 비상 상황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카페에서 맘 편히 커피 한잔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조금 상황이 나아져 외출할 때는 일년 내내 더운 이 나라 에서도 마스크를 두개씩 겹쳐 낀 적도 있고, ‘페이스 쉴드’라는 것까지 하고, 비닐장갑까지 끼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코비드 팬데믹이 한창일 때,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가 자유롭게 누리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그리웠습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황은 지금 하늘에서 폭탄이 쏟아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에 비 하면 ‘꽃자리’였던 겁니다.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 사는 주민들에 비하면 우린 꽃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당장이라도 모세와 아론을 향해 돌을 들어 내리치려는 성난 백성들 앞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게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게 있습니다. 그래도 모세와 아론처럼 기도하고 또 기도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아무 소망도 없는 것 같은 그 상황에 있는 여러분에게 영광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불과 수년 전에, 우리 집사님들 몇 분은 직업도 잃고, 돈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던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할게 없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 밖에 없으니 남자분들임에도 매일 같이 새벽에 교회 나오셔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 세 부에서 멋진 사업장을 갖고, 각각 꽤 알려진 사업가들이 되어 계십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기도의 자리는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우리 교회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이곳에 살던 90% 의 교민과 우리 성도들이 모두 철수 했습니다. 세부에 남아 계신 성도가 얼마 없었고, 팬데믹 기간이니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없으니 교회도 못 오시고, 정말 담임목사여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몇 명 남아 있는 성도들 그리고 우리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하 자!’라는 믿음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교회 유튜브 채널도 제대로 된게 없었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우리 교회 유튜브채널이 탄생 했고, 온라인 사역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 교회를 잘 모르시는 분은 구독자 수만 보고(일단 필리핀에서 한인교회 중에 가장 구독자가 많으니), 우리 교회가 엄청 큰 교회라고 생각하시는거 같습니다. 그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몇몇의 소수 정예화된 헌신자들 이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인터넷으로 독학 해 가면서 그 수고로 이루어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이 플랫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도 받고,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등록해 출석도 하시게 되고, 신앙생활도 다시 시작하시기도 하고, 말씀을 통해 위로도 받고, 영적으로 잘 성장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되던 시기 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를 하자’라고 하며, 순종 했더니, 이런 은혜도 경험하는 겁니다.

8절을 보시면,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있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그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새로운 기적이 시작되는 것 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없고, 없고,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만 하지 마시고, 할 수 있는 것을 시작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돌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설교 서론에서 <수동적인 사람>과 <능동적인 사람>에 대 한 말씀을 잠시 드렸었는데, <수동적인 사람 : 종이 될 수밖에 없는 노예근성에 젖은 사람>은 누가 시키는 것만 합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에 꾸지람을 들어야지만 겨우 책상에 앉는 학생은 절대 공부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잔소리를 듣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라도 하면 다행일 겁니다.

직장에서도 직장 상사가 시키는 것만 딱 하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은 그 직장에서 크게 성공을 경험해 보기는 힘들 겁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내게 권한 이 없다’고 핑계만 대면서 어떤 일도 창의적으로 능동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상사도 그 부하직원이 어떤 사람 인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능동적인 사람 : 창의적, 적극적인 사람>은 누가 일을 시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방법을 찾고, 새로운 변화를 찾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자세와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주인 노릇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입니다.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이 있고,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 들이본 기적들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때문에 그들이 기적이 없어서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자기 고집을 꺽지 못하고, 마음에 완악함이 가득하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그들은 가나안 땅의 주 인이 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이제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근성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간증하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1. 변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
  2.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