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19~20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셀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어제에 이어 <비전, 이렇게 성취해 나가라>는 주제로 오늘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도 ‘나 혼자 다 한다’는 생각은 ‘매우 어리석거나 혹은 교만한 생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자기 혼자 하는 것 같아도 직간접적으로 나를 돕고, 나와 동역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나’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첫째, 비전의 동역자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축구의 본고장인 EPL(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10년간 맹활약하고, ‘EPL의 레전드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손흥민 선수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팀을 이적했습니다. 분명, 손흥민이란 선수가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 노력형 선수였기 때문에 축구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겁니다. 그런데 축구는 11명이 뛰는 겁니다. 나와 함께 뛰는 선수들이 함께 잘해 줄 때, 나도 잘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도 혼자 이뤄낼 수는 없는 겁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인 <둘째, 부정적 말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전을 성취해 가는데 있어서 분명 여러 장애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그런 말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좋은 능력을 갖고 있고, 좋은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가 유대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총독 부임을 불쾌해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2장 10절을 보시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애굽의 남부 지역인 ‘엘레판틴(Elephantine)’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문서에 의하면, ‘호론 사람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종(신하, 부하)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라는 사람이 느헤미야의 유다와 예루살렘 총독 부임을 못마땅히 생각하며, 심히 근심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와 유다는 원래 하나의 통일 이스라엘의 영토였고,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 종교적으로도 많이 혼합된 지역이었습니다. 마치 남북한이 비록 75년간 갈라져 있지만, 같은 한글을 쓰고, 한국어를 하는 단일 민족이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남한도, 북한도 결국은 통일을 원하고 있는데, 사마리아의 총독인 산발랏은 이 동일 문화권 안에서 자기의 영향력과 세력을 확장해 가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와서 예루살렘 성벽이 건축되고, 유다 민족의 부흥이 시작되면 산발랏의 꿈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9절을 보시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앞에서 읽었던 10절에는 ‘산발랏과 도비야’ 두 사람이 나왔는데, 19절에서 또 다른 방해꾼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란 사람은 아람어 비문에는 ‘게달의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페르시아 왕의 휘하에서 꽤 오랫동안 요단 동쪽 및 남쪽 즉, 유다 지역의 요단강 동편 지역을 다스렸던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아라비아 사람 게셈도 유다 민족의 중흥이 기쁠 리가 없었기 때문에, 산발랏과 동맹하여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게셈이란 대적들이 성벽 재건 시도를 방해하여 중단시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두 가지 무기가 나오는데, 본문 중에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라는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는 ‘업신여기고 비웃는’ ‘조롱’이고, 또 다른 하나는 ‘페르시아 왕을 거역해 반란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협박’입니다.

‘조롱’이란 것은 ‘비웃고, 말로서 희롱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인격과 능력과 하는 일에 대해서 비웃고, 깔보고, 희롱한다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협박’이란 것은 ‘사람에게 겁을 줘서 꼬꾸라지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너, 내 말 안 듣고 그 일 계속하면 내가 가만 안 둬!’라고 말한다면, 무슨 일을 하다가도 움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전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 ‘부정적인 말’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의지를 꺽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부정적인 말들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들리더라도 흔들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듣고 흔들리는 이유는 그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첫 번째는 ‘그들이 말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철석같이 믿고 그 말처럼 두려워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말했다고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말을 무시하라(Ignoring)’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이 죽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 딸을 고치러 가던 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의 치유 사건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사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죽었고,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던 야이로가 그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크게 절망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5:36)”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NIV 영어성경에 보니깐 ‘Ignoring what they said(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무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다른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인 말들을 Ignoring 무시하십시오. 귀담아듣고, 그 말을 묵상하고, 불안과 염려 가운데 있지 마시고, 그런 말들은 무시하고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전을 향해 나아갈 때, 부정적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비전, 이렇게 성취해 나가라> 이틀에 걸쳐 나눈 말씀의 두 가지 소주제를 꼭 기억하십시오.
첫째, 비전의 동역자를 만들라
둘째, 부정적 말에 흔들리지 말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다른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불신앙적인 말들을 Ignoring 무시하십시오.
오늘의 묵상: 내가 무시하고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