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19~20절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셀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우리나라에 입국한 탈북민의 수가 2025년 현재까지 약 34,352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국정원에서의 조사 이후에 탈북민 정착 교육 기관인 하나원 등에서 남한 정착 교육 등을 거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되게 됩니다. 그러면 주민등록증도 발급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권도 신청이 가능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여권으로는 무비자로 전 세계 199개국을 여행할 수 있어 세계 여권 파워 최상위에 속합니다. 하지만, 북한 여권은 전 세계 최하위의 여권 지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입국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탈북민들이 과거 북한 주민이었던 때에는 여권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겠고, 여권이 있어도 비자 없이는 외국에 입국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후로는 불과 얼마 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모두 가능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여권만 갖고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프리패스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모두 누리게 되고, 경찰과 법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젠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분이 무엇이냐? 우리가 누구냐?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가? 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아이덴티티(Identity : 정체성)’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때, ‘나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어야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시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새로운 총독으로 파견된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는 대적들은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로서 느헤미야의 계획과 예루살렘 백성들의 시도를 조롱하고 협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은 ‘언어(말)’입니다. 말에는 놀라운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logos)으로만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말은 무엇이든 창조하고 세울 수 있는 능력도 있고, 반대로 무엇인가를 허물고 부서뜨릴 수도 있는 능력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쳐가던 한 사람이 격려와 칭찬과 인정과 위로의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기도 하고, 반대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 한 마디 때문에 절망과 낙심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느헤미아와 예루살렘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업신여기고, 비웃고, 무시하고, 조롱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사실이 아니어도, 그 사람의 말 때문에 얼마나 기분이 나쁘고, 감정이 상합니까? 그 사람의 인신공격적인 말 때문에 내가 형편없는 사람, 아주 나쁜 사람, 쓰레기 같은 쓸모없는 인생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겁니다.
사람의 말은 누군가를 보듬는 부드러운 손길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해하는 날카로운 칼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말을 할 수 있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대적들이 말하는 또 다른 공격은 ‘협박’이었습니다. 19절의 하반절에서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여러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였고, 왕의 허락과 조서를 받아서 예루살렘에 온 겁니다. 대적들의 말은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지어 내고, ‘너희가 왕을 대적하고, 독립을 하려고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가짜뉴스를 계속 퍼뜨리면, 진실이 아니어도 데미지가 없는 게 아닙니다.
20절을 보시면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와 백성들을 업신여기고,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적들이 아무리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비웃고, 조롱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으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그 일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어떻게 말하든, 그들의 말에서 우리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우리를 무시하고, 비웃고, 업신여기고, 조롱하고, 온갖 악한 말을 할지라도 우린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자녀고,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신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왕의 종이지만, 그 이전에 그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의 종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값비싼 옷을 입었는지, 유명한 사람하고 친분이 있는지…와 같은 것이 나의 존재, 나의 정체성, 나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그의 백성이고, 그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는 사랑받는 자녀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서 여러분의 아이덴티티를 찾지 마시고,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존재와 아이덴티티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서 여러분의 아이덴티티를 찾지 마시고,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존재와 아이덴티티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 안에서 나는 누구인지를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