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6

우리 국민들이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 선수, 1990’는 대한민국의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최초로 조국에 금메달을 안긴 스포츠 영웅입니다. 2010 뱅쿠버 동계올림픽의 금메달 결정전 마지막 무대에서 김연아 선수는 당시 2위였던 일본의 ‘아사다마오’보다 무려 23점이 높은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내게 됩니다. 우리 온 국민이 TV를 통해 그 마지막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고 계셨을 겁니다.
파란색 피겨 드레스를 입은 김연아 선수가 단 한 번의 작은 실수도 없이 음악과 함께 피날레를 마쳤을 때, 관중석으로부터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고, 김연아 선수도 감격해서 빙판 위에서 펑펑 울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원래 김연아 선수가 ‘강심장’이란 별명이 있어서 잘 울지 않는데, 이날은 빙상 위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15년 전, 그때 일을 물었더니 김연아 선수가 “울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경기를 마치자 해냈다는 생각에 속이 시원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 같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무 살 소녀가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의 염원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담을 이겨내고 ‘월드 피겨퀸’의 자리에 오른 겁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과 같이 꿈과 비전이 크면 클수록 왕관의 무게가 더 크고, 견뎌내야 하고 극복해야 과제와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 저항도 없고, 아무 어려움도 없이 모든 일이 순탄하게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버리십시오. 크고 작은 저항이 있을 것이고, 그 중엔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의 짐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저항을 돌파할 수 있을까요?

첫째, 기도로 저항을 돌파하라. 운동선수는 자기의 의지로 어떤 부담과 저항을 견뎌내겠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때론 그것으로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기도’라는 무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우리의 꿈과 비전을 가로 막고, 방해하는 세력의 저항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6. 느헤미야 3장은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의 각 부분 별로 어떤 사람들이 건축에 참여하였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4장이 시작되고 있는데, ✓ 1절을 보시면,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사마리아의 총독이었던 산발랏은 성벽 재건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다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142년 전, 남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의 멸망 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모든 성과 궁궐과 성전과 집들을 모두 파괴하고, 불태웠고, 그 이후로 예루살렘은 불탄 돌무더기와 잡초가 무성한 폐허였습니다.
물론, 지난 90년 전에 1차 포로귀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정착해 살면서 성전도 건축하고, 집들도 짓고 많이 좋아졌지만, 끊임없는 대적들의 공격과 약탈과 방화로 인해 예루살렘은 성할 날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깔보고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산발랏의 부하인 ‘도비야’란 사람은 산발랏의 조롱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 한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이나 또는 나에 대해서 평가절하하거나, 부정적으로 혹은 무시하는 듯 악의적으로 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감정이 흔들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감정이 조절이 안 되어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따지고 싶거나, 뭐라도 되갚아 주고 싶은 복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를 공격하면 ‘이상한 사람 다 보네’라고 넘겨도 될 텐데, 또 다른 누군가도 그런 식으로 나를 공격하고, 말하고 다니면… 그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해 본 적도 없고, 그다지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고, 크게 나쁜 짓을 해보지도 않고, 나름 성실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선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도 아닌 여럿에게 그런 취급을 받으면 속이 뒤집어 지고, 속에서 ‘저 나쁜 놈들! 하나님은 저런 악한 자들을 왜 가만히 두시지?’ 하는 감정이 저절로 올라옵니다.
느헤미야의 꿈을 꺽어 버리려는 대적들의 말들 앞에 느헤미야가 선택했던 것은 ‘기도’였던 것입니다.
4절과 5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왜 느헤미야가 기도를 선택했습니까? 기도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구하고 찾을 때, 우리를 대신해 친히 싸워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장애물과 저항들을 돌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기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특별 기도회>가 연중에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회를 교회 행사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할 제목이 생길 때마다 저는 ‘거룩한 성회’인 ‘특별 기도회’를 교회 앞에 선포하고, 성도들과 기도에 집중합니다. 지금도 특별기도회 기간인데, 며칠 전에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기도 제목이 우리 교회 공동체에 생긴 게 너무 감사한 겁니다. 평안하고 아무 걱정 없는 것도 좋겠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로 깨어 있게 하시고, 이런 기도회를 통해 또 다른 문제를 돌파해 나가게 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간증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어떤 문제와 저항을 돌파하는 첫 번째 방법을 기억하십시오.
첫째, 기도로 저항을 돌파하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왜 느헤미야가 기도를 선택했습니까? 기도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 앞에 있는 문제와 저항을 돌파할 기도 전략을 작정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