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실패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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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10~13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3년 전에 있었던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롤러스케이트 남자 3,000미터 계주 결승전’에서 정말 허무한 순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결승전에 우리나라도 3명의 선수가 참여해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금메달이 유력했는데, 선두를 달리던 우리 선수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금메달 세레머니를 하면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계주에 함께 달렸던 다른 동료들과 함께 트랙을 돌
면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우승 세레머니를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 후 심판진들이 영상으로 결승선 통과 장면을 정밀 분석 했는데, 2등으로 달리던 대만 선수가 발을 쭉 내밀면서 들어온 겁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우승 세레머니하는 동안 대만 선수가 0.01초 차로 ‘역전’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만이 금메달 을 가져갔고, 우리나라는 은메달에 머물게 된 것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수 3명 중에 2명은 금메달을 통해 군대 면제 특혜도 그 자리에서 날아간 겁니다. 그래서 이 선 수는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국민 앞에 너무 죄 송해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사과문도 올리고

이 안타까운 뉴스를 전하는 영상 클립 그랬습니다. 에서 미국 프로 야구(MLB)의 레전드 중 한 사람인 ‘요기 베라(Yogi Berra, 1925~2015)’가 남긴 명언으로 이 뉴스를 마무리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금메달 세레머니부터 했던 것이 큰 패착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꿈과 비전을 향 해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기도 하고, 우리에게 맡겨지고 주어 진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려고 최선을 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성공을 앞두고, 결승선을 앞두고 방심하거나, 교만하거나, 잘못된 욕망으로 실수를 하게 될 때… 우리 앞에는 크게 후회할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는 지상에 살았던 인물 중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모세의 말년에 있었던 실수와 실패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 해 왜 우리가 마지막에 실패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감정과 말을 통제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한 지 40년째 되던 첫째 달에 그들은 신광야의 ‘가데스바네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가나안 땅의 남부 네게브(Negev)라는 광야 지역으로 저 멀리 북쪽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 바라다보이는 곳 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데스바네아는 오아시스가 있는 곳이었는데, 가뭄으로 오아시스가 말라버려서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었고, 백성들은 그 상황을 불평 하면서 지도자였던 모세와 아론을 원망 했는데, 험악한 그 상황을 피해 모세와 아론은 성막 문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민수기 20장 8절을 보시면,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막 문 앞에 엎드려 있었던 모세에게 ‘백성 들을 모아 놓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반석이 물을 내게 해서 백 성들과 가축들이 그 물을 마시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있었던 ‘르비딤의 기적’과 비슷한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출애굽 초기에 있었던 사건이고, 오늘 본문의 사건은 광야 40년 생활을 마쳐가던 시기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들은 똑같이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 하고 똑같이 누군가를 탓하며 원망 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6년에 방영한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가 있었 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1분짜리 짧은 영상 클립에서 주인공인 한석규 배우가 후배 수련생을 꾸짖 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공감이 갔습니다. (참고로 영상에서는 욕이 좀 섞여 있습니다.)

“노력도 안 하는 주제에 세상 불공평하다고 떠드는 새O 들! 실력도 하나 없으면서 의사 가운 하나 달랑 걸쳐 입었다고 잘난 척하는 새O들! 지 할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새O들!”

뭐하나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밖에 없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이유가 겁니다. 정말 잘 안될 수 있는데, 이 주인공이 말 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대접은 받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하고, 늘 세상 불공평하다고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기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이미 3,400년 전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보여주시고 , 가르쳐 주셨습니다.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있다는 것은 경고와 경계를 받고 ‘그런 삶을 중단하라!’ 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너 그렇게 살면 망한다! 실패한다!’라는 것을 알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되지 않는 이런 모습을 40년 동안 지켜본 사람이 모세였던 겁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그들이 한심해 보였을까요?

10절을 보시면,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 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는 민수기 12장 3절에 의하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모세는 정 말 온유하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온유하고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인 모세가 이 구절을 보면, 백성들을 모아놓고,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 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말하며, 크게 혈기를 부리고, 화를 내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40년 동안 참고 참았던 모세의 감정이 폭발 했던 것입니다.

11절도 보시면,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감정이 폭발한 모세는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세게 두 번 내려쳤고, 그 순간 반석에서는 많은 물이 솟아 나와 백성들과 가축들이 마시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께서 모세에게 8절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말로서 명령한 게 아니라 팡이로 반석을 두 번 지 내리쳤습니다. 그 지팡이로 백성을 때 려주고 싶은 그 감정이 폭발해서 반석을 내리쳤던 겁니다.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어른이 되고 , 성숙해지는 게 아닙니다. 마흔 살이 되고, 쉰 살이 되어도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은 자기 나이에 맞는 생각과 말과 태도 와 자세가 있을 때 가장 멋진 것입니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진짜 어른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 시기 적절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는 들었는데 자신의 감정도, 말도 통제하지 못한다 면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성숙한 아이와 같은 겁니다. 결국 그 감정과 말을 통제하지 못해 물컵의 물이 쏟아 지듯이 마지막에 모든 걸 망치고 실패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초간’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쓰레기차의 법칙(THE LAW OF THE GARBAGE TRUCK)』이란 책을 쓴 데이비드 폴레이(David Pollay)라는 사람이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실제로 겪은 일 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이 시작됩니다.

어느 날 데이비드가 택시를 타고 가던 중에 어떤 난폭한 운전자로 인해서 크게 사고가 날 뻔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적반하장 겪으로 택시 기사를 향해 심한 욕을 퍼붓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택시 기사는 그 사람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그 상황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면서 다시 운전대를 잡고 운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승객인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쓰레기차 같아요. 절망감, 분노, 짜증, 우울함 같은 쓰레기 감정을 가득 담고 돌아다니거든요. 쓰레기가 쌓이면 자연히 그것을 쏟아버릴 장소를 물색하게 되지요. 아마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들은 당신에게 쓰레기를 버릴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가 얼토당토않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더라도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 세요. 그냥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고는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 세요. 제 말을 믿으세요. 틀림없이 전보다 더 행복해지실 겁니다.”

‘쓰레기차’라는 것은 ‘쓰레기 같은 감정’을 말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부정적인 마음, 불쾌하고, 우울 하고, 슬프게 만드는 감정을 말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부정적 인 감정을 누군가에게 쏟아낼 때 ,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악취 나는 쓰레기차가 되는 겁니다.

요즘 차량과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져서, 세부에서는 운전 하며 출퇴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너무 막히니깐 서로 먼저 가려고 차들도, 특히나 오토바이들은 너무 난 폭하기까지 한 거 같습니다. 차량이 오토바이랑 사고가 나도 ‘보험도 없다’ 하고, ‘돈도 없다’ 하니… 차량 운전자들은 불 쌍해서 그냥 보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차량 양옆으로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오토바이들 이 곡예를 하듯 지나가는 지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나쁜 감정이 막 올라올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출퇴근 시간에 곡예 하듯 운전하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또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그냥 축복하자’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하나님, 저 오토바이 운전자 가 안전 운전하게 해 주세요. 어서 돈 많이 벌어서 시원하게 에어컨 나오는 차도 사게 해 주세요. 이 필리핀 도로도 더 넓 어지고 깨끗해지게 해 주세요.…’ 제가 막 이런 축복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악취 나는 쓰레기차로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감정을 쓰레기로 가득가득 채우지 마십시오. 그 감정 때문에 결국 나도 고통스럽고 , 내 감정의 쓰레기를 담 아내야 하는 또 다른 누군가도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온유하던 모세도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 해 버렸던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감정과 말을 통제할 것을 교훈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2. 끝까지 믿음으로 살라

오늘 본문의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 게 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출애굽의 소명과 사명을 받아서 지난 40년 동안 그 불평과 불만과 원망만 가득하고, 전혀 변화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지만, 개척해서 3년 목회를 하고, 5년 목 회를 하고, 10년 목회를 해왔는데… 전혀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과 함께 목회를 하고 있다면 정말 힘 빠지는 일일 것입니다. 목회가 재미도 없고, 어차피 성도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뭐 하러 이 목회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은혜받는 성도가 보이고, 변화되는 성도가 보이고, 점점 더 충성하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보이니 목회에 보람도 느끼고, 감사함도 있고… 그래서 제가 잠을 좀 줄여도, 체력의 한계를 좀 느껴도, 때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참아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의 모세를 보면, 참 안돼 보입니다. 그렇게 지난 40년을 고생하며 , 조금도 변하지 않는 백성들을 이끌며 가나안 땅 바로 앞까지 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모세에게는 절망적인 선고가 내려지게 된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불허’하시게 됩니다. 불순종과 불신앙의 이스라 엘 백성들은 그렇다 할 지라도, 모세와 아론만큼은 그 가나안 땅에 입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와 아론은 얼마나 그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 싶어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8절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모세는 혈기를 부리며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마치 자기들의 힘과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것처럼 10절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혈기를 부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부 분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그래도 너무 하신 거 아닌가’라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정말 많이 아쉬웠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모세와 아론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징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버림받거나, 구원받지 못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가나안 땅은 ‘천국과 영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가나안 땅은 ‘참된 천 국도, 영생도, 구원도’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이 비록 이 땅의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들은 참된 천국과 영 생과 구원에는 들어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이 끝 까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다닐 때 열심히 예배도 드리고, 활동도 열심히 했는 데 청년이 되어서, 어른이 되어서 교회를 떠났다면 그에겐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청년 때 회장도 하고, 선교 여행도 다녀오고, 매일 교회에서 봉사하고 그랬어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직장 다니면서는 교회를 떠나 있다면 그 역시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교회 다닌 게 적금처럼 내 통장에 남 아 있는 게 아닙니다.

창세기 3장 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 신앙의 현주소, 내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 주간에는 중년의 나이에 필리핀에 오셔서 되도록 필리핀 영혼들을 섬기시다가 환갑이 이른 나이에 순교하신 한 선교사님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제가 다섯 시간 배를 타고, 차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그 산골 오지에 세워진 작은 교회당에 도착해서, 선교사님의 숨지시던 마지막 모습이 어땠 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선교사님은 건강이 좋지 않으셨는데, 약간 회복되니깐 그 산골 교회를 찾아오셔서 두 주간 동안 교회당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다가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눈을 뜬 상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뼈를 그 선교지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기셨기 때문에, 교회 근처 묘지에 선교사님을 안장했습니다.

어제는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구출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던 우리 스테반 선교사님의 아드님과 잠시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과 사모님은 3년 형, 2년 형을 선고받고 중국 교도소에 수감 중에 계십니다. 어렵게 아드님 과 전화가 연결되어서 근황을 물었는데, 이번 주 수요일에 처음으로 면회가 허락되어 중국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제가 무슨 말로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라서, ‘형제님, 아빠와 엄마는 죄가 있어 감옥에 가신 게 아니라 복음 전하시다가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니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우리 형제는 눈물 나는 걸 참으면서 “목사님, 부모님이 중국에서 사역하실 때 저희에게 늘 이
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빠하고 엄마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거든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그리고 우리 천국에서 만나도록 하자…’라고 하셨어요. 저는 우리 부모님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담담히 대답하는 겁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친구에 대해 나는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의 마음이 변하면 그에게 얼마나 섭섭한 마음이 듭니까?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사랑한다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하지만, 말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끝까지 변하지 말아
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1. 감정과 말을 통제하라
  2. 끝까지 믿음으로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