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5~23
15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패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16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제가 한국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같은 교회에서 동역하는 목사님들이 있었습니다. 부목사님들끼리 가끔 단합대회 같은 거를 하는데, 맛있는 것도 먹고, 족구나 축구나 볼링 같은 운동도 같이 즐깁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이 취향이 다르니깐 어떤 게임을 하게 될 때, 어떤 목사님은 ‘축구하자’하고, 어떤 목사님은 ‘농구하자’하고, 어떤 목사님은 ‘탁구 치자’하고… 각각 하고 싶은 게 다른 겁니다.
목사님들인데 마음이 하나 되지 않아서일까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게 재밌고 즐거운 겁니다. 재밌으니깐 그게 운동이든, 뭐든 그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재미없다는 것은 내가 그걸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없는 겁니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잘 하지 않은 학생은 시험이 다가올수록 부담이 클 겁니다. 하지만, 시험 준비를 철저히 대비 해온 학생은 빨리 그 결과물을 보고 싶어 할 겁니다.
우리가 어떤 큰일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문제들이 일어나면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일이 잘될 거라고,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이제 곧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도망가고 싶겠습니까? 불안한 겁니다. 실패할 거 같고, 조롱과 수치를 겪게 될 거 같고, 큰 손해를 볼 거 같으니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겁니다. 그런 불안감과 확신이 흔들릴 때, 우리가 준비하고,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의 무너진 부분 전체를 다 연결하고, 높이는 절반까지 쌓아 올렸다(6절)’는 소식이 대적들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그 소식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잔뜩 난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과 도비아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8절에 보니깐, 군대를 동원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 사람들을 죽이고, 성벽 공사에 일대 혼란에 빠뜨릴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시면,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대적들은 은밀한 밤에 기습을 해서 살육을 하고, 백성들을 절망케 해서, 모든 공사를 중단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시면,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그 대적들의 근처에 거주하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계략을 엿듣게 되었고, 이게 단지 말뿐이 아니라 점점 상황이 거칠어지고, 일촉즉발의 상황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유다 사람들은 열 번이나 예루살렘에 달려와 ‘공사를 중단하고 빨리 성을 빠져나오라. 빨리 대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16절부터 18절을 보시면,
“그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절)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절)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느헤미야는 물러서지 않고 ‘결사항전(決死抗戰)’의 각오로 성벽 재건과 적들의 침공을 대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33절에서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선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대군을 이끌고 오던 왜군을 맞서던 병사들을 향해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則死 必死則生)’ 즉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 목숨을 내걸고 하면 못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생명을 담보로 하고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졌고, 그 일을 위해 느헤미야는 최선을 다해 성벽 재건과 군사적 방어에 철저하고, 꼼꼼하게 대비를 시켰습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허리에 칼을 찬 상태로 일을 했고,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병기를 놓치 않았고,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옷을 벗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걱정되는 이유는 ‘최선(Best)’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우리는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후회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다가 점점 그 D-day가 다가오면 불안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되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나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최선의 나를 주님이 도우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들어 놓으신 원리와 질서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에 중력이 작용해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와 질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셨습니다. 많이 심은 사람은 많이 거두게 될 것이고, 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땀과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시면,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긴급 소집 신호로 나팔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모이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둘레는 약 3km 내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벽 남쪽부터 북쪽까지 길쭉한 모양이었던 예루살렘의 어떤 곳에서 기습 침투가 있을지 모르니, 그것을 대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의지하며, 최선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교회에서만 살고, 교회 일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공부도 잘하게 해 주시고, 사업도 잘 하게 해 주시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위에 은혜를 더하시는 것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도망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둘째, 최선의 나를 주님이 도우신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위에 은혜를 더하시는 것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해야 할 최선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