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 두번째

느헤미야 7:3~4

3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공동체(共同體 : community)’는 ‘공통의 관심사나 가치와 정체성을 공유하며, 특정 공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학교와 교회 그리고 넓은 의미로 사회와 국가까지도 여기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한 몸’이라고 한다면, ‘머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몸의 각 지체’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머리와 몸의 지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잘 지켜 나가기 위해서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첫째, 고결(高潔)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가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그 가장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익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이 잘못된 가치를 갖고, 인생과 세상을 향한 잘못된 시각과 관점을 갖고 있다면,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 세대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대대로 그 부정적인 영향이 흘러 그 가문의 부정적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뿐이겠습니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들의 머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으니, 그 선생님이 건강한 가치와 교육관과 인격을 갖고 있지 못할 때 그 학교의 학생들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선생님이 바르고 건강한 인격과 가치와 교육관을 갖고 있다면 그 학생들은 그 선생님의 훌륭한 제자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의 역할이 가장 크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은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도들을 목회해야 하겠습니까?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그런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잘못된 가치를 갖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그 나라의 모든 영역에 악영향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머리 역할을 하는 지도자와 함께 몸의 지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과 의무가 있듯이 지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만 잘 한다고 해서 그 공동체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백성들만 잘 한다고 해서 그 나라가 잘 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결국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자신의 역할과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건강한 사회와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잘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둘째, 자신의 위치에서 소명과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소명(calling)’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릴 부르셨다면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소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구원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던 죄의 종으로 있었을 때, 우리를 부르셔서 죄를 씻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백성으로,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구원에로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명에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니깐 우리의 소명에는 언제나 ‘사명(Mission)’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명은 사명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우릴 부르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기고 싶은 것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어떤 환경과 능력과 같은 것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냥 그런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들었을 때, 그 물건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기능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쓰지 않는다면, 그 물건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물건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사람을 부르셨을 때, 그냥 부르셨겠습니까? 내게 주신 은혜, 재능, 능력, 환경…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어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시면,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느헤미야는 성벽을 지키는 자와 성문을 지키는 자들을 세웠고, 예루살렘의 행정적인 리더로 하나니를 그리고 성의 안보와 방위 부분을 위해서는 하나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3km 정도에 이르는 성벽 둘레를 지키되, 각 사람이 사는 곳 근처의 성벽과 성문을 지키도록 명령했던 것입니다. 즉, 자신의 위치에서 그 소명과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한집에 사는 가족들이 막연하게 ‘누가 밥 주겠지…, 누가 청소하겠지…, 누가 돈 벌어다 주겠지…’라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그 가족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겁니다. 가족들마다 각자가 해야 할 역할들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에서도 우리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사명이 각각 다릅니다. 교회에서 누가 해 주는 섬김만 받으려고 하면, 그런 교회는 은혜롭지도 않고, 부흥하지도 않고, 빨리 망하게 될 겁니다. 누군가가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해 주시니깐 교회 공동체가 은혜롭게 부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음식을 자유롭게 조리할 수 있는 큰 주방이 없습니다. 상가에 있다 보니, 화제 위험이 있는 화력이 센 화구를 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난 13년 동안 주일 점심 식사는 소그룹별로 돌아가면서 준비해 왔습니다. 교회에서는 쌀과 김치만 사드리고, 담당 목장의 성도들이 반찬 하나씩 준비해 오시는 겁니다. 초창기에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찬 한 가지를 해온다고 해도 그 양이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일마다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교제할 수 있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여러 곳에서 귀하게 섬기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위치에서 그 소명과 사명을 다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공동체가 은혜롭게 부흥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해 주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 ‘공동체를 지켜 나가기 위한 나의 소명과 사명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귀한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이틀에 걸쳐서 나눴던 ‘공동체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합시다.

첫째, 고결(高潔)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라

둘째, 자신의 위치에서 소명과 사명을 다하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누가 해 주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 ‘공동체를 지켜 나가기 위한 나의 소명과 사명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귀한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공동체에서 나의 소명과 사명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