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목사가 필요한가?

느헤미야 13:10~14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3: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제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1980년대는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때였습니다. 신학교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고 하는 청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성도들은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목사는 ‘성직자’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한국교회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일부 목사들의 물질적, 성적 스캔들로 인해 한국교회는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되어, ‘교회와 목사가 필요 없다’고 하는 ‘무용론(無用論)’이 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몇 주 동안 [느헤미야서]를 공부하면서 느끼셨겠지만, 느헤미야 시대에도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비롯한 이들이 대적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교묘하게 방해를 놨던 겁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목사들이 돈을 밝히고,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지극히 세속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도 대제사장으로 비롯한 종교적 기득권자들에 의해서였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2~3천 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겁니다. 인간은 악하고, 목사도 그 원죄를 갖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렇다고 목사도 필요 없고, 교회도 필요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 목사는 나를 대신하여 섬긴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아가 왕의 술관원으로 직무에 복귀해서 일하다가 예루살렘이 걱정이 되어 왕에게 허락을 받고 다시 돌아와 보니, 성전의 제사와 예배가 잘 진행이 되지 않는 겁니다. 분명,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 예배를 돕는 레위인들에게 역할과 담당자를 정해 매일, 매주, 매달 예배와 절기가 드려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페르시아 왕궁으로 돌아갔는데 그가 공석이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 지경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10절을 보시면,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성전 일을 돕던 레위인들이 사례비(생활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위해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던 겁니다. 당시 성전이 매일, 매주, 매달마다 정해진 제사가 올려지기 위해서는 성전을 위해서만 일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3장 12절을 보시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신해 레위 지파(레위인)을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고,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를 통해 생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살던 레위인들은 그 마을 주민들의 율법교육 등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물론 구약 성경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오늘 날의 교회를 책임지고 섬기는 목사의 직은 레위인과 제사장과 같은 역할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대신해서 풀타임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양육하고, 영적으로 돕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은 목사님들이 지속적으로 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봉사의 일들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하지만, 만약 모든 교회에서 십일조라는 게 사라진다면 교회는 더 이상 풀타임 사역자를 둘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도 점점 힘을 잃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말라. 11절, 1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느헤미야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전을 버려둔 것’이라고 말하면서 백성들의 십일조 생활이 다시 시작되게 했고,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서 성전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고, 예배하는 일을 돕도록 역할을 맡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을 보시면,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백성들의 십일조를 보관하던 커다란 창고가 텅텅 비었을 때, 거기에 성벽 재건을 반대하고, 느헤미야를 괴롭혔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그 창고를 방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악의 축이며, 암적 존재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방에 있던 도비야의 모든 살림살이를 밖으로 내던지고, 그곳에 백성들의 십일조를 채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하난’이란 사람은 ‘버금(assistance)’으로 세워둔 겁니다. 그들의 역할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통해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생활비(사례비)가 제대로 잘 분배되어 그들이 성전의 제사를 지속적으로 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목사가 되려면, 적어도 대학-대학원까지를 졸업하고, 또 몇 차례의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합니다.(물론, 작은 몇몇 교단들 중에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몇 개월 만에 혹은 그보다도 더 낮은 기준으로 자체적으로 자격을 주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목사 후보생들이 ‘높은 연봉과 사회적 대우를 위해 목사가 되려고 한다면’ 절대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목사 후보생이 있다면 목사 되려는 걸 막아야 합니다. 일찌감치 다른 직업을 찾는 게 좋습니다. 95%이상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그런 재정구조가 아닙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쿠팡 같은 물류회사에서 단순노동을 하는 게 연봉이 더 높을 겁니다.

며칠 전, 세부에 잠시 다녀가셨던 한국의 어떤 집사님께서 제게 카톡으로 “이민 사회가 쉽지 않을 텐데 오랫동안 신실하게 자리 지키고 예배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는 잘 먹고 잘 살 장소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이 있는 곳에 살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저는 저를 부르신 소명과 사명의 자리에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답장을 드렸습니다.

느헤미야 시대 백성들이 십일조 생활이 중단되고, 성전의 레위인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 하나님의 성전이 버려졌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목사님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면 교회도 문을 닫고, 나와 우리의 자녀들 대대로 복음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목사가 필요합니까? 두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목사는 나를 대신하여 섬긴다

둘째,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말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느헤미야 시대 백성들이 십일조 생활이 중단되고, 성전의 레위인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 하나님의 성전이 버려졌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목사님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면 교회도 문을 닫고, 나와 우리의 자녀들 대대로 복음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주신 교회와 목회자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