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1~3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편]의 시제는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한 신앙공동체이면서, 선민 이스라엘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이 시를 쓰기 직전까지 그러니깐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까지 이스라엘은 ‘사울 왕가를 따르는 이들’과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 이렇게 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뒤,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지만 나머지 지파는 사울 왕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왕이 되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다윗도 하루 속히 통일이 되길 원했지만, 전쟁과 무력에 의한 강제적 통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한 가족이며 공동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려 7년이란 세월을 묵묵히 기도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통일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무력으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다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정하는 왕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시는 이유 중에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통령 하나쯤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다윗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연합하여, 하나님의 집의 그늘 아래에서 동거하는 모습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 왕가를 선대했고, 그 왕가를 돕던 군대 장관까지도 선대했습니다. 다윗이 힘이 있었지만 직접 칼을 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개입을 7년간이나 기다렸던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하나의 비유를 들고 있는데, 아론의 대제사장 임직식 장면을 소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에봇이란 의복의 가슴 부분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으로 된 흉패라는 것이 붙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임직식 때 머리에 하나님께서 위임하신다는 상징으로 보배로운 기름을 붓게 되는데, 그것이 얼굴과 수염을 타고 가슴에 붙은 12개의 보석 흉패에도 흘러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축복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3절도 보시면,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또 다른 비유를 더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영토 북쪽 끝에는 해발 2,800미터의 ‘헐몬산’이 있었고, 정상 부근에는 눈이 덮여 있었고, 거기서 녹아내리는 물이 요단강으로 흘러 이스라엘의 생명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요단강은 가나안 땅의 북쪽부터 남쪽까지 흐르고 있어, 식수와 농경수로서 가나안 땅의 생명의 젖줄기 같은 강이었던 것입니다. 2절과 3절의 비유를 통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이렇게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39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 형제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형제와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제가 30대의 젊은 목사 시절에 어떤 분에게 엄청 크게 실망하고, 그분을 미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제가 재정적으로 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즈음에 교회 리더들 수련회에서 저는 찬양 인도를 했고, 담임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라’는 설교를 하셨는데, 갑자기 제가 미워하던 그분이 생각이 나서 얼마나 울면서 회개하고, 그분을 용서하기로 했는지 모릅니다.
2박 3일의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까지 저에겐 몇백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저에게 꽤 큰 액수의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저에겐 한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통장에 얼마나 있는지 보려고 온라인으로 들어가 봤는데, 제가 미워하던 그 분이 저에게 몇백만 원을 입금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입금한 시각을 보니, 제가 울면서 미워했던 것을 회개하고, 용서했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 보니, 자녀들이 서로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게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고 좋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관계가 나빠지고 자꾸 투닥 투닥거리면 그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 잘 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연합하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은 우리를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 잘 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연합하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은 우리를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