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5:1~14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2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있는 너희여
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5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 보다 위대하시도다
6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7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8 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9 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표적들과 징조들을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보내셨도다
10 그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11 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
12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13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찬양을 담당하는 레위인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 리더들은 성전에 딸린 골방에서 작사, 작곡을 하며 찬양을 전담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편은 바로 성전에서 찬양하는 이들에게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운 이름을 찬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주님의 특별한 소유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 곧 이스라엘을’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고, 평생을 인간적인 잔꾀를 갖고 살아갔던 죄인이며, 자연인이었던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인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로 선택하셨다는 것에는 단지 선언이 아니라,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할 때에는 그것에 대한 책임 또는 의무가 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8~12절을 보시면,
“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표적들과 징조들을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보내셨도다. 그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애굽이란 나라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당시 최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이라는 부족을 위해서 그들을 벌하시고, 각종 기적과 징조들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가나안과 아모리의 왕들을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14절을 [쉬운성경]의 번역으로 보시면,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대신 변호하시고, 주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법적인 소송과 재판을 할 때, 일반적으로 전문 변호사가 없이 혼자서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변호사는 우리가 잘했건 잘못했건 우리 옆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변호해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호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마땅히 찬양을 받기 합당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을 보시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하겠지만, 혹여 우리가 연약하여 범죄하고 넘어지고 자빠진다 할지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언자(곧 변호사)’가 되어 죄인인 우리를 위해 변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억울한 누명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그런 일을 겪으니깐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았습니다. 모두 다 저를 오해하는 거 같고, 그 상황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저는 불명예스럽게 그 교회를 사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 가서 사역을 한다고 해도 그런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제 이름에 항상 붙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제 편은 아무도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까지 그런 상황에 괜히 저를 가까이했다가 혹여라도 피해를 입을까 해서 좀 거리를 두는 거 같았습니다. 이때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하루 이틀 사이에 그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저는 그 모든 누명을 뒤집어 쓴 채로 사임해야 하는 시기에, 저와 그리 가깝지 않았던 한 분이 갑자기 제게 오셔서 아주 중요한 제보를 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분이 앞에 나서서 저를 위해 변호까지 해 준 건 아니었지만, 그 제보가 저에겐 그 문제를 풀 실마리가 되었고, 물론 시간이 조금은 필요했지만 저의 모든 누명이 하나씩 벗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편이 아무도 없던 그 시기에 저에게 찾아오셔서 그 정보를 주신 분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수군거리고 손 가락질 할 수 있지만, 주님은 나의 대언자가 되어 나를 대신하여 변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고, 나를 멀리할지라도 주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내 손을 잡아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고, 나를 멀리할지라도 주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내 손을 잡아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나를 위로하시고 손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