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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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 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5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사역하던 교회에 어떤 사람이 ‘POZ’라고 하는 PDA폰을 팔러 왔습니다. 전화도 되고, 메모 같은 워드 작업도 할 수 있고, 네비게이션도 되고, 음악이나 동영상도 재생할 수 있고…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기계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역하던 순진한 목사님들은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할부로 구매했습니다. 그래도 초기엔 그 첨단 IT기기를 유용하게 쓰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2007년에 아이폰이란 것을 발표하면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해 그런 종류의 기기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그때 비싼 돈 주고 할부로산 PDA폰은 있으나 마나 한 퇴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스마트폰은 더 얇고 , 반으로 접기도 하고, 더 성능도 좋은 모델들 이 매년 계속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은 2~3년 쓰면 낡은 구닥다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과 2~3년 전에 이 스마트폰을 처음 샀을 때만 해도 며칠 동안 이리 저리 만져보며 새로운 기능들에 놀라 면서 좋아라 했었는데, 금세 싫증이 나면서 이번에 새로 나 온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은 겁니다. 왜 그럴까요?

판타지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이면서, 20세기 가 장 위대한 변증가 중 한 사람인 ‘C. S. 루이스(C. S. Lewis, 1898~1963)’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욕구 가 내 안에 있다면…, 그건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순전한 기독교』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 저런 것도 해보고, 최신 스마트폰으로도 바꿔보고, 비싼 옷도 크게 성공도 입어보고, 맛있는 것도 해 보고, 많은 돈도 먹어고, 벌어보지만… 우리는 여전히 채울 수 없는 깨진 항아리에 물 붓듯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C.S.루이스의 말과 같이 우리에게 맞는 그 다른 세상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 에게도 우리와 비슷한 그런 결핍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삶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는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갔을까요?

1.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가시기 위해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여리고’를 거쳐 지나가시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2절에 보시면,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라는 사람은 오늘날의 국세청과 같은 세관원의 그 지역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꽤 큰 부자였던 것 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살던 사람 중에 글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그런 시대에 삭개오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고, 심지어 수의 계산까지 할 수 있었던 상위 1%에 속한 엘리트였고, 부자였던 겁니다.

그리고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청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부모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을 것으로 보이고, 아들을 낳고 그 자식이 하나 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청결하고 의로운 아들로 살아가 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 과외 선생님도 붙여서 열심히 글도 배우게 했을 것입니다. 삭개오도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성장해서 무슨 일을 할까 하다가 당시에 무조건 부자가 될 수 있는 ‘세리’라는 직업을 택했던 겁니다.

로마 정부로부터 막강한 공권력을 등에 업은 세리들은 백 성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였고, 그 차액을 착복하는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사람들로부터는 ‘죄인과 세리와 창기’가 동급으로 여겨질 정도로 당시 그리 좋은 평판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이름의 뜻인 ‘청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니, 그 모든 세리들보다 얼마 나 더 불법적이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악착같이 재산을 모으며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겠습니까?

수년 전에 OTT서비스로 개봉해 전 세계에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오징어 게임』이란 드라마를 기억하실 겁니다. 456명의 사람들 이 456억의 돈을 얻기 위해서 어린 시절 했던 딱지치기, 구슬치기, 뽑기… 오징어 게임까지 통과하는 마지막 1인이 456억을 독차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시나리오는 그 마지막 1인이 되기 위해서는 455인이 죽어야 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어쨌든 주인공이 마지막 1인이 되어 456억원의 상금을 탔지만, 그 돈은 사람들의 목숨값이란 것을 깨닫고 나니 쉽게 그 돈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큰 분노와 회의감에 빠진 주인 공이 암으로 죽어가던 그 게임의 주최자인 오일남 할아버지한 테 찾아가 ‘얼마나 돈이 많길래,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왜 이런 잔인한 게임을 만들었냐’고 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그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 이기도 합니다. 그때 암으로 죽어가던 오일남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보게, 삶은 짧아. 돈이 너무 많으면, 아무리 뭘 사고 먹고 마셔도 결국엔 다 시시해져 버려.”

많은 사람들이 큰돈을 벌고 싶어 하고, 크게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그 끝에는 허무함만 남게 되는 겁니다. 사고 싶고, 갖고 싶은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정작 모든 걸 다 사고, 다 가질 수 있으면 그때부터 재밌는 게 없고 , 모든 것이 다 시시해지는 망감인 것입니다. 겁니다. 그것이 허무함과 절

북미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 중에 “별장과 요트와 애인은 처음 생길 때는 즐겁고, 처분할 때 는 만족한다” 라는 말을 한답니다.

별장과 요트와 같은 물질적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경제적 여유와 로망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처음에는 즐겁고 좋은데, 맨날 별장에 가 있고, 맨날 요트만 타고 돌아 다니겠습니까? 나중엔 그게 관리도 어렵고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처분하면 홀가분하고 좋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삭개오는 겉으로 보기에 그는 남 부러울 것이 없는 큰 부자 였지만, 그 재산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형성된 것 이기 때문에 늘 마음에 찜찜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고, 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다 갖고 누릴 수 있었지만,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처럼 늘 공허함이 밀려왔던 것 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의 고민이 있고, 적으면 적 은 대로의 고민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종류의 경우 가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종류만 다를 뿐이지 우리 인생은 항상 힘들고 어려운 일 이 있습니다.

얼마나 크게 성공했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고, 얼마나 유명해졌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고 옳은 길로 왔느냐?’라는 겁니다. 삭개오가 큰 부자가 되었지만 , 그 마음에 공허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 은 바른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 이었기도 했던 겁니다. 나 스 스로에게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을 했을 때, 하나 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 믿으세요!

그 마을의 가장 큰 부자 중에 한 사람 이었던 삭개오는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고, 갖고 싶고, 사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들을 누려봐도 그 마음에 있는 깊은 공허함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그의 부모님은 ‘청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그의 이름을 ‘삭개오’라고 지어줬지만, 그는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순수함을 다시 회복하고 싶었고, 지금 이런 삶을 더 이상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사렛 예수께서 그가 살고 있었던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겁니다. 구름 떼와 같이 몰려든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렬을 둘러싸고 따랐습니다. 삭개오 도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그는 키가 작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꼭 예수님을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서 그 행렬의 방향을 따 라 앞서 달려가서 급히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행렬이 점점 이쪽 방향으로 오는 게 보였습니다.

5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예수 님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사인 하나만 해 달라고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며칠 전,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고 계신 우리 남자 성도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분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2024년 에 세부에서 크게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여러 차례의 대수술을 하셨는데, 1년이 넘도록 병원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또 수술이 잡혀 있었습니다. 수술 전에 기도해 드리려고 저도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향해 차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으로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오늘은 그 형제에게 이 찬양을 불러주라.’는 특별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들 심방을 다녔었지만, 특송을 하듯이 제가 병원에서 환자에게 찬 양을 불러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라 어두컴컴한 병실에 형제가 홀로 쓸쓸히 누워 우리 있었고, 병실의 공기마저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제가 우리 형제와 인사를 나누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 찬양을 형제에게 불러주라고 해서 지금 그 노래를 불러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쑥스럽지만 유일한 청중인 그 형제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 주시네
놀라지 말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내 맘이 힘에 겨워 지칠지라도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세상의 험한 풍파 몰아칠 때도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주님은 나의 산성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이 찬양을 부르면서 저도 울고, 그 찬양의 유일한 청중 이었던 우리 형제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날의 그 병실에서의 눈물과 감격은 여전히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며칠 전 전화를 준 형제님이 “목사님, 그 찬양은 제 찬양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있고, 엊그제도 그 찬양 부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라고 그러시는 겁니다. 지금은 우리 형제님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이 자기가 믿고 의지할 신을 찾아 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서 삭개오를 찾아가셨듯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오늘도 여러분이 스스로 교회까지 나오신 것 같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돌무화과 나무 앞으로 찾아 가시고 계신 것입니다.

2017년 췌장암 선고를 받고, 2022년에 소천하신 ‘우리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던 이어령 교수님(1934~2022)은 74세에 뒤 늦게 예수님을 영접한 분 이십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예수님을 믿게된 과정이 있습니다. 딸인 이민아 씨는 미국에서 법조인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CTS 방송에서 간증을 하시는데, 본인 은 아빠로서 딸 민아가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게 했고, 학교도 데려다 주고, 후회 없을 만큼 잘 돌봤다는 겁니다. 그런데 딸이 병에 걸려 아파하고 외로웠을 때 , 민아가 어릴 때 늘 그랬던 것처럼 또 아버지 이름을 불렀을 거라고… 하지만, 자신은 딸의 불행이나 아픔이 있을 때 옆에 같이 있어 주지 못했는데, 그때 같이 있어 준 아버지가 육신의 아버지 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셨다. 내가 못 하는 걸 하나 님이 해 주셨다. 하나님이 딸아이를 위로해 주셨다.”라는 겁니 다.

죽어가던 딸에게 이어령 교수님이 “민아야, 네 소원이 무 엇이냐’라고 물었더니, 맑게 웃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소원이예요. 나만 천국에 가고 아버지 없는 천국 에 내가 어떻게 쓸쓸하게 있겠어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더도 고민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74세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던 겁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그 마을에서 평판이 좋지 않던 사람 이었습니다. 죄도 많았습니다. 아무도 그와 교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어령 교수님을 찾아가시고, 예수님께서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 형제를 찾아가셨고 그리고 죄 많은 저에게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이 무슨 죄가 있든, 무슨 실수를 했든, 무슨 비난 받을 일을 했든…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 회개하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 님의 자녀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구원’이란 뜻이고, 그리스도는 ‘메시야(구원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구세주이심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