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악인들이 더 잘 사나

시편 140:6~8

6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7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8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 (셀라)

인류사의 오랜 풀리지 않는 질문 중에 하나가 ‘왜 악인들이 더 잘 사나?’라는 것일 겁니다. 특히 나름 바르게 살고, 정직하게, 진실하게, 남에게 큰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 회의감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특히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은 질문들이 있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들에게는 선을 행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40편]의 저자인 다윗에게도 이 문제는 때때로 그의 믿음을 흔들만한 주제였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그가 대적에게 쫓기며 극심한 환난 가운데 기록된 시였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루 빨리 그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은 20대 시절 내내 그 환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왜? 왜? 하나님 왜요? 왜 저예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해왔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미래의 이스라엘 왕으로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 기름 붓게 하셨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살던 그였기에 잘못한 것이 없이 왜 그런 고난 속에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다윗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가 그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언제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시편과 역사서의 기록을 보면, 그는 고난 중에 있었을 때 다른 방법이 아닌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그 문제를 견뎌내기도 하고, 해결해 나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에 다윗이 고난이 있을 때마다 기도했던 두 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주는 나의 하나님’이란 믿음입니다. 대적들이 공격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싸워주신다면 이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6절에서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기도를 응답하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오늘 본문 시편 140편 7절을 보시면,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군인이었습니다. ‘지휘통제실’같은 곳에 앉아서 부하들만 최전방에 밀어 넣는 게 아니라, 다윗은 언제나 최전방에서 싸웠었고, 셀 수 없는 위험에도 처했었지만, 그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주셨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그 위기의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8절을 [쉬운성경]으로 보시면,
“악한 자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것들을 주지 마소서. 여호와여! 그들의 계획들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교만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터에서도 자신을 보호하시고 건져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큰 위기 앞에 있지만, 다윗은 그 악한 자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도 않고,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런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즉시 그 기도를 응답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다윗을 괴롭히던 악인이 어느 날 갑자기 천벌을 받아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고, 중한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믿고 기도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마저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엔 ‘의인들은 점점 더 잘 되고, 악인들은 속히 벌하시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시각과 우리의 일반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들만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에 보시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잘못했는데도 그에 대한 훈육이 없다? 징계가 없다? 그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 사생자다’라는 말입니다. 범죄한 악인들에게 어려움이 없이 일이 점점 잘되기만 하면… 그는 죽을 때까지 새사람이 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점점 더 교만해져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람을 멸시하다가 죄인과 악인으로 죽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인들은 고난도 없이 계속 잘되기만 하는 거 같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오늘 밤이 될지, 1주일 뒤가 될지…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할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처럼 고난의 현장에 있다 할 지라도, 언제가 그를 다시 일으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던 것처럼, 당장의 현실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지금 다윗처럼 고난의 현장에 있다 할 지라도, 언제가 그를 다시 일으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던 것처럼, 당장의 현실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묵상해 봅시다.